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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2017년 신년특집>붉은 닭의 해 정유년-닭의 유래

닭, 5천년전 인도에서 가축화…‘닭싸움’ 놀이문화서 시작

[축산신문 서혜연 기자]

 

닭이 먼저일까 계란이 먼저일까? 이 질문은 멀리는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21세기인 오늘에 이르는 내내 인류를 괴롭혀왔다. 우리는 아직까지도 뚜렷한 답을 구하지 못했다. 또한 닭은 언제부터 가축화 되었으며, 어떤 역사를 지니고 있을까? ‘치느님’이라고 칭송받는 치킨은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어떻게 발전해왔을까? 2017년 붉은 닭의 해, 정유년(丁酉年)을 맞아 ‘닭’에 대한 모든 것을 파헤쳐봤다.

 

우리나라 닭 기원은 2천년전…선조들 닭 신성시
재앙 쫓기 기원하며 닭 피, 대문·벽에 바르기도
‘덕을 지닌 날짐승’ 이라 불려 한자어로 ‘덕금(德禽)’

 

# 가축화된 닭의 기원
닭은 조류 중에서 가장 빠른 5천여년 전에 가축화됐다. 그 기원은 인도와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알려져 있으며, 널리 퍼져있는 야생 들닭을 시작으로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됐다. 야생 들닭의 종류로는 적색야계, 실론야계, 회색야계 등이 주종을 이루는데, 그 중 적색야계의 분포도가 가장 넓다. 또한 적색야계는 우리가 사육하는 닭과 가장 유사하다. 따라서 오늘날 닭은 적색야계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닭은 인도지방에서 가축화되기 시작해 이집트와 중국으로 가장 빨리 전파됐다. 기원전 1천500년 전후에 ‘이집트에 매일 계란을 낳는 닭이 있다’는 기록이 있고, 중국의 ‘열자유기(列子有紀)’에는 유나라의 선왕이 투계를 길렀다고 적혀있다. 학계에서는 기원전 1천700년 전후부터 중국에 닭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 이와 같이 닭은 민족의 이동과 전쟁 등으로 해상과 육로를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초기에 닭 사육은 오늘날 계란과 닭고기 생산이라는 경제적 목적보다는 태양숭배사상, 시간을 알려주는 시보기능, 놀이문화인 닭싸움이 어우러졌다. 특히 새로운 아침을 알려주는 닭 울음소리는 희망의 전주곡으로 전해지며 농경문화와 직결되고 있다.

 

진귀한 닭이 많은 우리나라, 민간신앙의 대상 되기도
우리나라의 닭의 기원은 약 2천년 전부터 시작된다. 유입경로로는 동남아시아에서 직접 들어왔거나 중국을 거쳐 들어왔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희귀한 닭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최초의 기록인 후한서(後漢書) 한전(韓傳)에는 “마한에 꼬리가 5척이나 되는 ‘장미계(長尾鷄)’가 있다. 진귀한 닭이다”라고 했다.
이러한 닭들은 조선시대에도 나타난다. 성종 때는 일본의 사신에게 흑봉두계 한 쌍과 백미두계 한 쌍을, 연산군때는 가상계 한 쌍을 하사했다. 이는 우리나라가 닭에 대한 사육의 역사가 길고 민간에서도 닭을 많이 사육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당시 닭의 모습을 정확히 알 순 없다.
우리나라 닭은 희귀함과 더불어 특별했다. 중국의 마지(馬志)는 “약으로 쓰는 닭으로는 조선 닭보다 나은 것이 없으며, 장미계는 맛으로나 살이 많기로나 여느 닭보다 뛰어나다”고 기록했다.
또한 닭은 불행과 재해를 막아주는 신통력을 지닌 전통적 민간신앙의 대상이기도 했다. 중국문헌인 ‘황번로’에 의하면 한국에서는 닭을 삶아 먹지 않았는데, 이는 닭을 신성한 짐승으로 여겨 이를 어기면 반드시 집안에 화가 미친다고 여겼다. 우리 선조들은 새벽 닭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귀신도 사라져 버린다고 믿었다. 재앙이 닥치거나 돌림병이 돌면 닭의 피를 대문이나 벽에 발라 악귀를 쫓았다.

 

역사에서 사라진 ‘토종닭’을 복원하다
1900년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닭은 모두 토종닭이었다. 가장 익숙한 우리네 토종닭은 둥글게 불거져 나온 가슴에 목이 긴 편이었고, 깃털 색깔에 따라 백색종, 흑색종, 황갈색종, 적갈색종, 회갈색 종 등이 있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고, 개량종이 들어오면서 점차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이후 30여 년간 토종닭은 사라지다시피 했다.
이에 농촌진흥청 산하 국립축산과학원은 1992년부터 토종닭 복원사업에 착수했다. 축산원은 서울대학교와 공동연구를 수행하여 3개통 1천769수의 토종닭 종자를 수집했다. 연구 과정에서 고문헌에 남아 있는 재래종의 특징은 살려내고 이상형질을 제거했다.
그 결과 2008년 3계통을 100% 복원하는데 성공하고 ‘우리맛닭’이라는 이름으로 보급에 들어갔다. 우리맛닭은 토종닭의 뛰어난 육질을 그대로 살리면서 크기가 1.5~2kg에 달한다.
특히 불포화지방산인 올레인산이 일반닭보다 훨씬 많고, 필수 아미노산이 다량 함유돼 맛과 영양을 함께 갖췄다. 보급된 우리맛닭은 소비자들의 호평을 받아 영남을 중심으로 우리맛닭을 이용하는 삼계탕, 백숙전문 음식점 수십개가 생겨났다. 한편, 축산과학원은 이를 토대로 토종닭의 품종을 유지, 보존하면서 경제성과 육질이 우수한 실용계 개발에 노력하고 있다.

 

닭 계(鷄)의 어원과 토종닭의 덕(德)
닭 계(鷄)는 새 조(鳥) 옆에 큰 배 해(奚)를 덧붙인 글자다.
큰 배 해(奚)는 어른(大)과 손(手)과 실(   )을 합성한 것으로 물레를 돌리는 어른을 뜻하고 있다.
이는 과거 죄수로 하여금 물레를 돌리게 함으로써 마치 닭이 알을 낳는 것처럼 옷감을 얻었다는 뜻이다.
또한 해자는 실 같은 털이 잇따라 엉겨 붙은 큰 배를 나타낸다고 풀이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새 중에서도 유달리 배가 커 보이는 새가 곧 닭이라는 것이다.
예로부터 토종닭은 다섯 가지 덕(德)을 지녔다고 한다. 닭의 볏은 학문(文)을, 발톱은 무(武)를 뜻했다. 또한 적을 앞에 두고 용감히 싸우는 것은 용(勇)을, 먹이를 보고 무리를 부르는 것은 어짐(仁)을, 때를 맞추어 새벽을 알리는 믿음(信)을 상징했다. 닭을 한자어로 ‘덕금(德禽)’, 즉 ‘덕을 지닌 날짐승’이라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 우리나라 프라이드 치킨의 역사

’61년 전기구이 통닭 탄생 ‘큰 반향’
 80년대 치킨집 호황…‘치맥’ 시대 서막
’97년 이후 불변의 외식메뉴 1위

 

‘1인1닭’, ‘치느님’ 등 다양한 별명을 가진 치킨은 온 국민의 별미이자 가장 사랑받는 맥주안주다. 비록 서양에서 건너왔지만 한국 특유의 개성으로 탈바꿈한 치킨은 역수출도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치킨 문화를 접한 외국인들은 다양한 종류와 맛에 반할 정도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닭고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그리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어서 귀한 손님이 오면 백숙을 내오고, 여름에 기력이 달리면 보양식으로 삼계탕을 끓였다. 그러다 1961년, 전기구이 통닭이 탄생했다. 한국 치킨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는 명동영양쎈타의 사장은 해외에서 닭 구이요리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그는 뜨거운 전열기에 기름을 쫙 빼 구워 통으로 한 번 튀겨낸 전기구이 통닭을 국내에 선보였다. 이는 곧 전국적으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당시 통닭은 호사스러운 음식이어서 아버지 월급날, 생일 등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한 1970년대는 육계 생산량이 기존보다 13배 성장했다. 토종닭보다 3~4배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육계는 그만큼 많이 생산할 수 있었다. 거기에 1971년 해표에서 식용유를 출시하면서 전국 시장통에 통닭을 튀기는 고소한 내음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통닭집은 동네 곳곳에 들어섰다.
통닭의 마력은 눈 깜짝할 사이에 온 국민을 사로잡았다. 1980년대 초반에 이르면서 국민 1인당 닭고기 소비량이 10년전에 비해 5배 가까이 뛰었을 정도로 치킨집은 유례없는 호황을 맞았다. 특히 치킨 집이 호프집 형태로 발전하면서 ‘치킨=맥주’라는 공식이 생겨 본격적인 ‘치맥’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프랜차이즈 음식점도 두각을 드러냈다. 롯데리아와 KFC에서는 치킨을 ‘한 마리’가 아닌 ‘조각’으로 먹을 수 있게 됐다. 또한 1981년 대전에 문을 연 페리카나가 고추장에 갖은 양념을 갈아 매콤달콤하게 만든 소스에 치킨을 버무린 ‘양념치킨’을 출시하면서 메가히트를 기록했다. 거기다 동네 골목마다 배달치킨이 생겨나면서 아이들의 생일잔치에 양념치킨은 빠지지 않는 단골메뉴가 됐다. 이후 1990년대 말에는 숯불바비큐가, 2000년대 초반에는 간장치킨과 불닭이, 중반엔 파닭이 인기를 끌더니, 오븐에 구워 칼로리를 줄인 ‘구운닭’이 차례대로 유행했다.
치킨은 1997년 이후 불변의 외식메뉴 1위이며, 우리나라가 1년 동안 소비하는 치킨의 양은 약 8억마리에 달한다. 또한 공정거래위원회에 정보공개서를 등록한 치킨 브랜드 수만 해도 380여개, 등록된 매장 수는 3만8천여 개다. 그러나 업계 전문가들은 “2014년 기준 한국인의 연간 닭고기 소비량이 15.4㎏으로 OECD 국가 평균(27.5㎏)의 56%에 불과하다”며 “앞으로 치킨 시장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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