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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동물복지 오디세이 <8>打草驚蛇(타초경사) : 풀을 두드려 뱀을 놀라게 한다


전 중 환 농업연구사(농진청 국립축산과학원 동물복지연구팀)


1. 프롤로그

코로나19로 인하여 야외활동과 여행에 많은 제약이 따르는 요즘에는 비행기를 타고 해외출장을 나갔던 일들이 문뜩문뜩 떠오르곤 한다. 2년 전, 노르웨이에서 개최되는 동물행동학회 참석을 위해 출장을 떠났을 때였다. 동물행동학회는 ‘각인(刻印)’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콘라트 로렌츠 박사를 포함한 많은 동물행동학자들이 활동했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학회이다. 노르웨이로 직항하는 비행기가 없어 네덜란드를 경유해야 했는데 인천에서 암스테르담까지 네덜란드 항공기를 이용하여 이동하였다. 장거리 비행기를 탈 때면 기내음식에 대한 기대로 설레곤 했는데 당시 네덜란드 항공기에서 제공되었던 샌드위치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네덜란드의 동물복지 인증기준(Beter Leven)으로 생산된 계란이 들어간 샌드위치였는데 포장지 겉면에 동물복지와 계란이 생산되는 과정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적혀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많은 승객들이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포장지에 적혀 있는 내용들을 유심히 읽고 있었다. 아마도 다른 승객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지루할 수 있는 장거리 비행에서 재미있는 읽을거리와 더불어 신선한 맛을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항공기의 기내음식을 통해 자국의 동물복지 인증제 홍보와 더불어 국가위상을 높이는 기가 막히는 아이디어라 생각된다.


1. 힘 앞에 정의는 없다(?).

2019년 53회 동물행동학회는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개최되었는데 노르웨이는 스칸디나비아반도 북서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겨울이 길고 여름이 짧으며 거의 매일 비가 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지형적인 영향으로 인하여 농업생산은 미미하나 해운업과 어업이 발달되어 있으며 우리나라는 노르웨이의 주요 어류(연어, 고등어) 수입국 중 하나이다. 노르웨이 생명과학대학이 학회개최를 주관했으며 어업이 발달한 곳인 만큼 어류의 행동과 복지에 대한 내용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어류의 움직임과 집단행동을 통해 어류의 상태와 수중환경을 평가하는 방법 등의 연구들이 소개되었는데 흔하지 않은 연구내용은 나를 포함한 많은 학회 참가자들의 호기심을 유발시켰다.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어류에 대한 연구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뤄지고 있었다. 다만 이런 연구들이 보다 활발하게 수행되어 어류의 건강상태나 혹은 수중환경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냥 재미있는 얘깃거리 정도로 치부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확연한 시각차를 나타내는 분야이기도 하다. 이번 학회에 참석하면서 어류와 관련한 얘기 하나가 떠올랐다. 정확한 사실 유무는 확인하지 못했으나 연어와 관련한 캐나다와 미국의 갈등에 대한 일화이다.

밴쿠버는 캐나다의 서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태평양 연안과 내륙을 잇는 프레이저 강(江)이 있다. 지리적인 영향으로 연어들이 알래스카에서 생활하다 산란을 위해 밴쿠버의 프레이저 강으로 돌아오는데 캐나다 정부는 어족자원 보존을 위해 매년 연어 치어들을 방류하고 관리하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연어의 어획량이 감소하고 회귀하는 연어가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원인을 조사한 결과, 알래스카 인근에서 미국국적 선박들이 연어를 무분별하게 남획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어획량이 줄고 회귀 연어가 줄어든 것으로 밝혀졌다. 즉시 캐나다 정부는 미국 정부에 이를 문제 삼았고 미국은 강하게 부인하였다. 캐나다 정부는 미국의 강한 부인에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물러났으나 이후부터 매년 방류하는 연어 치어의 아가미 부위에 표기를 남겼다. 몇 년 후에 다시 이 문제가 대두되었을 때 캐나다는 연어 아가미의 표기를 근거로 미국의 연어 남획을 문제 삼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증거(?)를 들이대는 캐나다의 행동에 불쾌해진 미국은 캐나다산(産) 목재수입 거부와 자국민들의 캐나다 여행을 제재하는 경제적 보복을 단행하였다. 미국의 강경한 대응과 급격하게 불어나는 경제적 손실에 깜짝 놀란 캐나다는 즉시 미국에 화해의 제스처를 보냈고 단순 해프닝으로 마무리했다고 한다. 어족자원의 보존을 앞세운 캐나다의 패기는 결국 미국의 힘 앞에서 굴복한 형국이 되고 말았다.    


2. 에필로그

동일한 사물을 바라볼 때도 서로의 입장차이나 관심의 차이로 인하여 서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충분한 설명 없이 일방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강요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타초경사(打草驚蛇)는 ‘풀을 두드려 뱀을 놀라게 한다.’라는 뜻이다. 이는 을(乙)을 징계하여 갑(甲)을 깨우침을 비유하거나 변죽을 울려 공연히 문제를 일으켜 화를 자초함을 비유한다. 위의 사례처럼 캐나다도 처음부터 미국과의 대립을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어족자원 보존에 대한 자국의 노력을 대변함과 동시에 남획을 줄이거나 연어 치어관리에 필요한 일정 분담금 정도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판단된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단호했으며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 부족으로 인하여 캐나다는 오히려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면서 굴욕적인 화해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와 유사한 경우를 많이 경험하는데 의도와 달리 방법적인 문제로 혹은 상대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인하여 오해받기도 하고 곤경에 처하기도 한다. 축산에 있어서의 동물복지도 이와 다르지 않다. 좋은 의도로 동물복지를 지향한다고 해서 축산인들의 생각과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규제강화만 주장한다면 오히려 동물복지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고 거센 반발을 유발할 수 있다. 국내외에서 축산분야 동물복지의 향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제도를 강화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는 되지만 동물복지에 대한 축산인들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노력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최근 들어 일반 축산농가를 대상으로 가축사육 기준이 강화되고 있는데 일방적인 기준을 제시하기보다는 축산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선택적으로 적응해 갈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 생각된다. 즉, 우리가 전염병 감염을 막기 위해 예방주사를 맞는 것처럼 축산에서의 동물복지 강화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2021년, ‘하얀 소의 해’인 신축년(辛丑年)은 축산업과 동물복지가 함께 공생하면서 축산인 모두가 건승(健勝)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축산신문, CHUKSA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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