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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동물복지 오디세이 <9>

本末顚倒<본말전도> : 일의 근본은 잊고 사소한 부분에 사로잡힘


전중환 농업연구사(농진청 국립축산과학원, 동물복지연구팀)


1. 프롤로그

2011년 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2012년부터 동물복지 인증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며 산란계부터 우선 적용할 예정인데 인증제도 운영을 위해 기준이 필요하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간의 사정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들은 바로는 구제역 발생과 국내 소비자들의 거센 요구에 의해 전격적으로 동물복지 인증제도 도입이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동물복지 인증기준 마련을 위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국내에서 동물복지와 관련한 연구가 수행된 경우도 많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동물복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부족했던 시기라 시작부터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인증기준이 마련되는 과정은 다음과 같았다. 우선 국내외 연구 자료들을 검색하고 해외의 인증기준들을 비교 분석했다. 자료 분석을 통하여 세계적으로 동물복지 인증기준들이 공통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조건들을 필수 항목으로 선별하고 이외의 조건들은 비(非)필수 항목으로 분류하였다. 비(非)필수 항목의 경우 국제적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국내 사육여건을 반영함으로써 수위를 조절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인증기준의 초안은 국립축산과학원 내부 전문가들의 검토를 거쳐 세부내용을 다듬었다. 이후 ‘농장동물복지연구회’를 개최하여 유관기관 담당자, 학계 전문가, 축종별 생산단체 및 동물보호단체들을 한자리에 모신 후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였다. 지금은 간단하게 몇 줄로 설명이 되지만 당시에는 한 단계 한 단계 넘어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때로는 회의장에서 생산단체 대표와 동물보호단체 대표 사이에 고성이 오가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인증기준이 만들어져 동물복지 인증제도가 시행되었다. 물론 부족한 부분도 있고 지속적인 개정이 필요한 부분이 있지만 해외 어느 인증기준과 비교해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틀이 잘 갖춰져 있다고 생각한다.


2.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은 자발적 참여다.

축산연구를 수행하는데 있어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현장방문이다. 현장에서 듣는 축산농가의 목소리는 축산업이 처해 있는 현실을 나타내는 바로미터라 할 수 있다. 현장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나 향후 나아갈 방향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늘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어느 동물복지 농장을 방문하여 실태조사를 실시했는데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농가답게 주변 정리도 잘 되어 있었고 규모도 꽤 컸다. 사육밀도, 가축관리상태, 축사환경 등의 실태조사를 마친 후 사장님과 이런 저런 대화를 이어갈 때였다. 문득 꺼내는 말씀이 ‘동물복지 인증기준은 현실과 맞지 않다’고 하시는데 순간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긴장감을 가지고 귀를 기울였다. 한참을 말씀하신 내용인즉 일반 축산에서 사육하던 방식이 더 편하고 생산성이 좋기 때문에 동물복지 인증기준이 일반 축산의 가축관리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도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가축의 고통을 줄여주고 동물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해 도입된 제도로 동물복지인증기준에 따라 가축을 사육하는 농장에 대해 국가가 인증하는 제도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동물복지인증을 원하는 농가가 인증을 신청하면 이에 대해 적절한 심사를 거쳐 동물복지인증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자발적인 참여로 동물복지 인증을 받았고 그 노력의 대가로 더 높은 가격에 축산물을 판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편의를 위해 일반 축산의 가축관리 방식을 원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동물복지 인증을 반납하고 일반 축산으로 전환하면 되는 것이나, 동물복지 인증은 유지하면서 일반 축산처럼 편하게 가축을 키우고 싶다는 것이 문제였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도는 일반 축산의 밀집사육이나 감금틀의 사용 등을 개선하고자 시작되었으며 축산농가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 동물복지 인증 심사가 이뤄진다. 이렇게 동물복지 축산농장으로 인증이 되면 여기서 생산되는 축산물은 동물복지 축산물로 표기할 수 있으며 일반 축산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이는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을 획득하는 것이 그만큼 쉽지 않으며 소비자들도 동물복지 인증마크를 신뢰하고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동물복지 축산물을 구매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농가들은 동물복지에 대한 신념과 자부심으로 잘 운영하고 있지만 일부 어려운 현실에서 개인적인 편의가 우선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동물복지 인증에 따르는 의무만큼 충분한 보상이 따르지 못한다는 불만족이나 일반 축산과 동물복지 축산과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발생하는 문제로 동물복지 인증기준의 완화로 해결되는 부분이 아니다.


3. 에필로그

강연이나 회의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 중에도 동물복지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나 개인적인 요구사항 등을 이유로 ‘동물복지 인증기준은 현실과 맞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도의 본질은 제쳐 두고 지엽적인 내용만을 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따라 축사시설과 가축관리의 방법은 계속해서 변화할 것이고 이에 따라 동물복지 인증기준도 지속적으로 개정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도의 근간이 되는 인증기준의 개정은 어느 한 개인의 판단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근거나 국제적 기준을 고려해서 절차에 맞춰 진행되어야 한다.

본말전도(本末顚倒)는 ‘일의 근본 줄기는 잊고 사소한 부분에만 사로잡힌다.’라는 뜻이다. 이는 중요한 것을 미루고 사소한 것을 먼저 한다는 의미도 된다. 즉 가축의 고통을 줄여주고 동물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한 동물복지 인증제도의 취지는 살피지 않고 경제성이나 관리의 편의를 이유로 인증기준의 적합성을 따지는 것은 적절하지않다는 것이다. 물론 축산업이라는 것이 가축을 생산해서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도가 강요가 아닌 자발적인 참여에 의한 것임을 감안한다면 동물복지에 대한 남다른 이해와 실천이 따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동물복지 축산물 시장이 특정 축종에 편협되어 있고 여전히 규모면에서 미흡하며 노력만큼의 충분한 대가가 지불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제도의 취지와 맞지 않는 방향으로 기준을 변경하는 것은 오히려 실타래처럼 뒤엉키는 형국이 된다.

그동안 동물복지 인증농가들을 가까이서 지켜봐 오면서 힘들고 외로운 싸움이란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런 만큼 동물복지 인증농가들의 노력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이뤄질 날이 머지않았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동물복지 인증농가들은 그 의무를 다하여 동물복지 축산물을 생산하고 소비자들은 윤리적 선택에 따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면서 동물복지 축산물을 구매하는 그 날, 모든 국민들이 함께하는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도로 거듭나는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축산신문, CHUKSA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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