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농축산물시장이 무차별적으로 개방되면서 전기업단위 축산인이 급속히 늘고 있다. 농업분야 역시 전문화 내지는 특화에 의한 전업화에 눈뜨고 있다. 농축산업의 전기업화추세는 무한경쟁이 펼쳐지는 개방화시대에 비춰볼 때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농축산업의 경영단위가 이처럼 전기업화추세로 흐르면서 좋은 차 타는 농축산인을 가리켜 ‘귀족’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소위 ‘잘나가는’농축산인들을 일컫는 말로서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한건 극히 최근의 일이다. 일부 정책당국자의 입에서도 들을수 있는 귀족이란 표현속에는 사전적 의미와는 전혀 다른 뜻이 내포되어 있다. 다시 말해 ‘도움을 받아야 하는 농민이 무슨 고급승용차에 호사인가’라는 식의 빈정거림과 비웃음이 섞인 표현인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농축산인도 좋은 차타고, 좋은 집 지어 살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삶이 귀족적인 것이라면 귀족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그래야만 농축산인들이 희망을 갖고 경쟁력제고에 나설 것이며, 후계자 또한 배출할수 있기 때문이다. 빚더미에 올라 앉아 분에 넘치는 호사를 부려서는 결코 안되겠지만 뼈를 깎는 노력으로 성공한 농축산인들의 윤택한 삶은 장려할 일이지 비난이나 조소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따라서 농축산업에 대한 정부나 사회일각의 그릇된 인식은 반드시 교정되어야 한다. 농축산업이 수출산업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고, 지속적인 정부지원을 필요로 한다고 해서 그 종사자들을 낮추어 볼수는 없는 것이다. 식량산업은 비교우위개념의 경쟁력만으로 볼수 없는 산업이며, 더욱이 농축산업은 수출위주의 우리 경제를 있게한 원동력이다. 물론 농축산업계의 자기반성적 인식전환도 선행되어야 한다. 농축산인들이 ‘농민은 못사니까, 우리는 농민이니까 당연히 지원해주어야 한다’는 식의 패배주의적 의식을 떨쳐버릴 필요가 있다.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한 시쳇말로 잘나가는 농축산인은 소위‘귀족’이란 비아냥거림에서 자유로울수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어려운 농업현실에서 비롯된 농민운동 역시 뒤를 돌아보는 자세를 필요로 한다. 지금까지의 농민운동이 운동적 측면에만 편향되어 있지는 않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일부 강성노조의 무리한 파업과 한 대기업노조의 채용비리와 같은 어찌보면 지엽적이라고 볼수도 있는 사안이 어려운 경제상황과 맞물리면서 노동운동이 여론으로부터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노동귀족’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사례에서 보듯 농민운동 또한 실사구시(實事求是) 차원의 새로운 틀을 짜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지도자들의 긴 안목과 건전한 성찰이 절실하다. 지도자가 농민이나 농축산업의 갈길은 제시하지 않은채 대안부재의 투쟁만 내세운다면, 그 결과는 결국 농민의 손해로 귀착되고 농축산업은 설땅을 잃게 된다. 농민을 볼모로 한 농민운동이 통제불능의 물리력으로 발전하고, 지도자가 겉으로는 농민을 위한척 하며 뒷전에서는 사리를 채우는 일이 있다면 이 역시 농업의 장래를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이처럼 농민운동의 건전성이 중요하듯 바람직한 지도자상에 대한 농축산업내부의 고민도 있어야 한다. 어려운 산업환경을 감안할 때 농민지도자는 스승처럼 존경받는 인사이거나 아니면 부지런히 발로 뛰는 참신한 인사여야 한다. 농민운동이 노동운동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한 농축산인들의 사려깊은 노력과 고민을 기대한다. 농업과 농민운동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그 어느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