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신문 이일호 기자]
ASF 발생 대기업 농장 사례 교훈
3회 샤워 · 3주 연속근무 확산돼
“현지 ‘주류’ 편입 다양한 시너지”
동남아시아에 체류하며 그 지역 국가들의 ASF를 직접 경험하고 있는 ‘여행하는 수의사’ 정현규 박사(도드람양돈농협 고문). 2023년 2월 보다 넓은 시각으로 ASF를 바라보고 싶다며 가방을 챙겼던 그에게 지난 1년여의 시간이 가져다 준 교훈과 성과는 무엇일까.
정현규 박사는 가장 먼저 “0.1%의 실수가 100%의 피해로 돌아올 수 있음을 다시한번 새기게 됐다”고 밝혔다.
샤워를 하지 않은 채 농장으로 들어온 직원 1명으로 인해 방역시스템이 뚫리며 ASF가 발생,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었던 현지 대기업 산하 양돈장은 그 대표적 사례다.
민간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 양돈 현장의 방역관리가 더욱 강화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부 대기업 양돈장의 경우 농장 외부에도 철책을 설치, 모두 3번의 샤워 과정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는 정현규 박사는 “지난해 가을부터는 ‘3주 연속 근무’ 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기혼자도 예외없이 적용되고 있는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ASF 발생 이후 현지 정부 차원의 방역대책도 이어지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지역 청정화를 통한 수출길 모색을 위해 소규모 양돈농가의 방역 교육을 대폭 확대하되, 돼지 500두를 넘는 전업규모 이상 양돈장에 대해서는 수의사 계약제 까지 도입했다. 다만 살처분 보상금 등 정부 차원의 실질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태에서 방역 정책들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는 아직 불투명한 실정이라고.
정현규 박사는 “생각과 아이디어는 대책이 아니다. 현장에서 적용되고 훈련이 이뤄져야만 비로서 대책으로서 의미를 지닐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러한 추세는 결과적으로 모든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대기업 주도하의 양돈산업 개편이 가속화되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현규 박사는 “재정 상태가 열악한 개인 농장에서 ASF가 발생하면 복구가 어렵다. 그 피해를 오로지 농가 혼자서 감당해야 할 뿐 만 아니라 의지가 있어도 종돈 확보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반면 자본과 기술, 인력, 정보, 종돈을 모두 확보하고 있는 대기업 양돈장은 농장 신축 및 인수 등을 통해 사육 규모를 크게 늘려가고 있다. 나름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개인 농장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위탁 사육을 선호하면서 대기업 양돈장들의 모돈 농장이 급속히 확대되는 것도 주목할 현상이다.
“동남아시아 양돈산업은 ASF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평가가 굳혀질 정도로 ASF가 가져온 여파가 크다”는 정 박사는 “인접 국가간 ASF 공동 대응이 필요하지만 경제력의 차이로 실현되지 않고 있다. 만성형인지 급성형인지 연구 조차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밝혔다.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우기를 전후로 ASF가 크게 확산되는 양상 역시 후속 연구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현규 박사는 “구제역도 동남아시아 지역의 관심사다. 일부 대기업 양돈장은 구제역 백신으로 인한 이상육 피해를 줄이기 위해 피내접종 무침주사 등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면서 “PRRS 역시 현지 양돈업계의 고민이다. 그 피해와 대응 방법이 다를 수 있어도 양돈현장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질병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전하기도 했다.
특히 PED, PRRS의 경우 일본과 대만 수의업계에서 백신 문의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아시아 지역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다고.
정현규 박사는 이와관련 “사실 동남아시아 양돈 현장의 생생한 정보는 확인이 어려울 뿐 만 아니라 공식적인 데이터와 일치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언제부터인가 현지의 ‘주류’로 편입되고 학계, 산업계와 네트워크가 구축되면서 보다 정확하면서도 다양한 정보 수집이 가능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정현규 박사는 지난 3월 3만9천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는 태국 콘캔대학교 초빙교수로 선임된데 이어 태국에서 7월 중순 개최될 국제수의학회의 강연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정현규 박사는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는 K-축산과 방역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그만큼 진출 가능성도 높다는 의미”라며 “미력하나마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며 지난 1년여의 시간을 되돌아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