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40여 년 동안 축산을 경영하던 원로 축산인이 최근 축산업을 그만둔 배경을 설명했다. 그분 말에 의하면 축산업은 항상 위험 부담이 따르고 부가가치도 낮을 뿐만 아니라 전망도 불투명하다고 했다. 자식들이 축산업에 투자한 자본이나 노력을 다른 산업에 투자하면 고생도 덜하고 기업을 더 빨리 키울 수 있는데 굳이 정부도 장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미래가 불확실한 축산업을 계속할 이유가 있느냐며 반대하는 논리를 꺾지 못하고 축산업을 정리했다는 것이다. 그 원로는 40여 년 동안 일궈온 축산업을 그만두는 것이 못내 아쉬웠단다. 하지만 대를 이어 가야할 자식들이 괄시를 받아가면서 왜 축산업을 해야 하느냐는 식의 항변을 설득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축산업을 경영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으로 규제에 비해 비전이 희박한점을 들었다.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더 잘 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배려가 거의 없고, 먹거리 산업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마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음을 지적했다. “축산업은 이미 전시에 퇴로를 완전히 봉쇄당한 병졸과 같아 안타깝다”고 말하기도 했다. 경영이란 이윤이 보장되어야 하고, 거스를 수 없는 개방시대를 대처하려면 경쟁 구조를 갖추도록 하는 정책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의 사정은 그렇지 못하지 않느냐는 반문이다. 축산의 현실은 각종 규제만이 혼재하는 상황이며 산업을 미래지향적으로 이끌어갈 인프라 구축 등 제도적 장치가 미흡함을 지적하기도 했다. 사실 축산업은 여러 가지 악재를 겪으면서 나름대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룩했다. 미래를 내다보고 서둘러 규모화를 통해 경쟁력을 갖춰왔던 것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투자 한 것도 아니고 축산인들의 고혈로 만들어진 기금을 가지고 스스로 일어선 것이다. 물론 교과서대로 발전하지 못한 단점 때문에 시행착오도 있었는가 하면 급성장 이면에 풀어야할 과제들로 내홍을 겪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무관심과 질시를 받으며 성장해온 축산업이 오늘날 농업 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커졌음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2004년 통계에 의하면 생산액이 10조8천억원으로 1차 산업 가운데 30%를 차지하는 대표산업으로 부상했다. 지난해 통계가 아직 공식 발표되지 않고 있지만 쌀 산업 위축을 감안할 때 축산업 비중은 더욱 커졌지 않았을까 생각 된다. 축산업 비중이 이처럼 커진 것은 축산물 소비가 신장했기 때문이다. 자주 인용되는 통계이지만 70년대 국민 한 사람의 쌀 소비량은 134kg이던 것이 지난해에는 80kg으로 줄었다. 반면 육류는 70년대 8.4kg을 먹던 것이 32kg으로 증가 했는가 하면 유유 64kg과 계란, 가공 축산물 등을 합할 경우 국민 한 사람이 무려 140kg이상을 먹고 있다는 수치가 나온다. 이 같은 통계가 시사하는 것은 동물성 단백질 식량이 쌀 소비를 대체했고, 국민의 생명창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증거다. 전문가들은 우리 국민의 쌀 소비량은 머지않아 일본의 쌀 소비량 수준(국민 1인당 61kg)으로 줄어들 것을 예상하고 있다. 이때가 되면 현재의 농지를 20% 정도 더 감축이 불가피한 반면 축산물 수요는 지금보다 크게 증가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음이 주목된다. 국민들이 선호하는 우유와 육류를 어떻게 안전하고 경쟁력있게 생산해서 소비자들에게 공급하느냐가 축산업계와 농정의 과제임이 틀림없다. 문제는 다원적 현안을 뛰어넘을 수 있는 축산업의 경쟁력있는 인프라 구축이 관건이다. 늘어나는 축산물 수요에 대응하고, 국민들의 경쟁력있는 생명 창고로 발전시키려면 현재의 여건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새판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축산시설들이 체계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각종 질병과 분뇨 처리비 과다를 비롯 비경쟁적인 구조라는 취약점을 개선해야 한다. 이와 함께 땅에 떨어진 축산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인식을 어떻게 바꿀 것이냐도 축산 분야가 풀어야 할 당면 현안이다. 농촌 여기저기에 축산시설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고 인허가를 놓고 농지심의위원들의 거센 반대로 지자체들이 골치를 앓고 있다. 축산은 혐오시설이라는 낙인과 함께 농촌에서도 퇴로가 차단된 채 고립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농촌의 분위기와 부정적인 인식은 도시와 정치권으로 이어져 축산에 대한 발전적인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야말로 일부의 나쁜 선례들이 축산을 헤어나기 힘든 블랙홀에 빠지게 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이라면 축산은 현재의 위치에서 하는 날까지 그럭저럭 명맥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처지임이 분명하다. 축산은 지금까지 걸어온 길도 험난했지만 가야할 길은 더욱 험난하고 멀기만 한 느낌이다. 정말 축산은 유죄(有罪)인가. <尹琫重 본지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