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 싸우지 않고 승리란 없듯이 축산분야는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서 좋은 경험을 했다. 7년여 동안 끌어오던 UR 협상이 1993년 2월15일 마침내 타결된 바 있다. 그 결과는 쌀은 보호받고 축산물은 관세를 적용해 1백% 개방 당했다. 교섭 대상자들은 물론 농업관련 단체들도 쌀 수입 개방을 막는데 관심을 쏟았지 축산에 대한 관심도는 낮았었다. 당시 축산 단체들 역시 쌀 전쟁에는 적극적으로 가담한 반면 축산물에 대해서는 별도의 이렇다할 전략도 세우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다가 전면 개방이란 철퇴를 얻어맞고 망연자실했던 기억을 지울 수 없다. 축산 문제를 해결하는데 농업 분야에서는 물론 축산 내부에서조차 뜻을 모으지도 못했고 범국민적 차원의 관심사로 승화시키는 데는 그야말로 역부족 바로 그것이었다. 혹자는 무력감에 빠진 축산 분야를 가리켜 배가 부르기 때문인지 목소리는 크지만 싸울 줄을 모른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UR 이후 DDA를 거쳐 진행중에 있는 한미 FTA 협상에 이르기까지 무엇이 달라졌을까 되묻는 전문가들이 있다. 한미 FTA 1,2차 협상에서 나타나듯이 농업 문제는 역시 쌀 중심구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의 전략을 제대로 파악치 못하고 막무가내식의 반대 싸움에 휩쓸려가고 있다는 비난도 있다. 그나마 일부 축산단체들만이 참여하고 있을 뿐 역시 UR때와 마찬가지로 어떻게 되겠지하고 수수방관 하는 듯한 인상을 받고 있다. 전쟁은 공격에 앞서 적의 숫자와 위치 그리고 보유하고 있는 화력의 종류를 비롯 정보 전쟁 결과에 따라 실시되는 것이다. 협상 역시 마찬가지다. 상대의 전략이 무엇인가에 대해 면밀한 사전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한미 FTA 협상에 임하거나 이를 엄호하는 시위는 체계적이거나 조직적이지 못하고 전부 아니면 전무와 같이 무차별적이라는 인식을 씻기가 쉽지 않다. 축산분야는 진행 중에 있는 한미 FTA 결과를 예측하며 미국의 전략에 말려드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이번에 역시 쌀 중심으로 흐르는 시위 분위기를 역 이용해 자기내의 비밀 보따리인 쇠고기를 비롯한 중요 축산물과 빅딜을 하지 않을까 경계하고 있다. 그래서 축산분야의 여론은 축산 분야가 이번에야말로 모든 것을 똘똘 한데 뭉쳐 죽기 아니면 살기 자세로 시위다운 시위 즉 투쟁의 목적이 분명한 메시지를 미국 측과 우리 정부에 전달하자는데 공감기류가 흐르고 있다. 이와 함께 우리 국민들에게 축산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불식시킬 수 있도록 중요성을 제대로 알리는 기회로도 삼자는 의견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축산을 이끌고 있는 일부 지도자들의 한미 FTA에 임하는 결연한 의지가 과거와는 다르다. 그 한 예로 축단협이 오는 24일부터 전개하는 결의대회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또한 협동조합을 이끌고 있는 지도자들도 그 어느 때보다 행보가 능동적이라는데 믿음이 간다. 지난 14일 윤상익 축산발전협의회장을 비롯한 일부 조합장들이 김종훈 한미 FTA 수석대표를 만나 축산의 중요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쌀을 지키기 위해 축산이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한다. 김종훈 대표는 ‘한미 FTA 협상과 관련해 몇몇 품목을 협상에서 제외해달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의견을 모아 직접 건의문을 가지고 자신을 찾아온 것은 축산분야가 처음이다’며 ‘축산분야가 규모가 커 걱정이지만 협상에서 최대한 노력을 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축산지도자들의 김종훈 대표 면담은 협상에 임하는 우리 측 대표에게 축산의 중요성을 알리고 협상에서 우위에 설수 있는 예비 지식을 전달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만남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번 한미 FTA 협상을 놓고 축산 분야가 더욱 강렬하게 반대하는 움직임은 문제의 해법을 인식한 지도자들의 리더쉽으로 평가된다. 역시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없다는 인식이 넓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옛말에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길도 있다는 격언과 같이 아무리 상대가 강자라고 하지만 자기 주장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텃밭을 내주고마는 패배주의에서 벗어나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한미 FTA 협상에 임하면서 최선과 차선의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관세를 유지하거나 시간을 버는 것이 우리 뜻대로 이루기가 쉽지 않겠지만 실현이 가능하다해도 이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우리 축산경영 여건이 취약하기 때문에 제2, 제3으로 이어지는 교역 상대국과의 또다른 FTA 협상에서 당당히 겨룰 수 있는 인프라구축을 비롯한 경쟁구조를 근본적으로 확보하는데 지혜와 역량을 모아야 함이 거듭 강조된다. 전쟁에서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없지만, 만약 졌을 때에 대비한 대책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