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9월 28일, 본지는 ‘축산시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올해로 어언간 21년이다. 고고지성을 울린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성년의 나이다. 임직원 일동은 책임있는 축산 전문지로서 깊은 사명감을 통감하며, 그동안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축산인과 함께 땀 흘리며, 축산인과 함께 울고 웃는 전문지로 거듭날 것을 다짐해 본다. 돌이켜 보면 본지가 축산 전문지로서 축산 전문화, 규모화의 기치를 내걸고 축산 현장을 누빌 때만 해도 우리 축산은 축산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농업의 테두리 안에서, 농민들의 부업 소득원의 위치에 머물러 있었다. 때문에 축산이 소득이 된다 싶으면 너도 나도 소를 먹이고, 돼지를 사육하고, 닭을 길러 과잉으로 인한 가격 폭락에 울어야 했으며, 반대로 가격 폭락으로 가축 사육을 포기하면 이번에는 가격이 폭등하여 정부가 외국으로부터 축산물을 부랴부랴 수입하는 일이 반복됐다. 이른바 주기적인 호·불황에 축산인들은 전전긍긍해야 했으며, 축산 당국은 물가 당국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된 축산 정책을 펼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 축산이 변화의 계기를 맞았으니, 그것은 개방이라는 큰 파고였다. 그렇지 않아도 주기적인 호·불황에 시달리던 상당수의 농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던 터에 값싼 외국 축산물의 수입 개방은 청천벽력이었다. 그동안 굳게 닫혀 있던 국내 축산물 시장의 빗장을 풀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이 눈앞에 닥친 것이다. 그러나 그대로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다는 자각이 우리 축산을 새롭게 발전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른바 위기를 기회로 삼아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한 것이다. 그때까지 줄곧 축산 전문화와 규모화를 외쳤던 본지로서도 10년만에 전문지로서 그 위상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전문화, 규모화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함과 동시에 고품질 차별화로 상당한 자신감에 차있던 우리 축산업계에 2000년과 2002년의 ‘구제역’은 폭탄과도 같은 충격이었다. 연이어 2003년에는 미국발 광우병 파동이 닥치자 우리 축산업은 또 다시 변신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변신의 핵심은 위생 안전성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동시에 축산이 지저분하고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등 소비자들의 막연한 인식은 정부의 축산 규제로 이어져 새롭게 도약하려는 축산인의 발목을 잡고 있다. 본지는 이처럼 축산에 대해 소비자들이 막연하게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비자들의 눈에 보이는 축산 현장이 깨끗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며, 깨끗하고 아름다운 농장 가꾸기 운동을 추진해 많은 축산농가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이 갖고 있는 그런 부정적인 인식을 근본적으로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축산인들이 아름답고 깨끗한 환경 속에서 축산을 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농지법 개정 필요성을 끊임없이 강조, 이제 곧 그 성과가 가시화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밖에도 본지는 수시로 축산이 미래 희망이 있는 산업으로 발전하기 위해 풀어야 할 현안을 제기하고 또 그 현안 해결 방안 모색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 온 발자취를 더듬는다. 우리 축산이 넘어야 할 산은 아직도 많다. 한미 FTA, 미산쇠고기 수입재개 등 대외적 현안과 함께 농지법 개정, 축산물 수입 관세의 목적세화 등 대내적인 현안 들이 그야말로 첩첩 산중이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필요한 것은 축산인들이 단합하고 지혜를 모으는 일이다. 본지는 오늘 창간 21주년을 맞아, 당시 걸음마 수준이었던 우리 축산의 길잡이 역할을 다짐했던 처음 마음 그대로 앞으로도 축산인 곁에서 동고동락할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한다. 아울러 그동안 본지를 아끼고 사랑해주신 독자여러분과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준 광고주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