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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이인형의 ‘황소 발자욱’<39회> / 제3부 내 인생에 승부를 걸었던 사건들(18)

가축계열화·조합 육성 등 정책추진 사활
2000년대 축산업 ‘괄목성장’ 기틀 마련

내 기억에 가장 남는 해인 1987년은 90kg이 되는 돼지 한 마리 값 생산비가 12만원 수준에서 5만원까지 폭락했던 해이다. 또한 12월 17일이 대통령선거의 날이기도 했던 해였다.
그래서 민원사항이 많기도 했지만 양돈업등록·허가제도의 공정한 집행, 돼지고기 수출제도의 도입 및 추진 그리고 가축계열화사업의 추진 등으로 일에 묻혀 헤매고 있는데 그 해 추석이 지나서부터 돼지가격이 더 하락하기 시작하니 수매를 하라는 민원이 봇 물터지 듯이 밀려왔다.
장관께서는 자주 돼지수매를 하라고 말씀을 하셨으나 나는 돼지사육두수가 1986년에 330만두수준에서 1987년에 420만두로 1년 사이에 27%가 증식 돼 수매로는 해결 할 수도 없었다.
또한 12월 1일부터는 연말 수요도 있고, 출하될 돼지두수가 줄어 값이 상승하기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계속해 보고를 드렸다. 이 과정에서 말 못할 정도의 꾸지람도 들었고 양돈관련단체와는 많은 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마지못해 그해 11월 25일 돼지 값이 사상 최저로 하락한 시기에 돼지수매계획을 12월 1일부터 수매를 실시하겠다고 보고서를 올리는 과정에 차관께서 장관이 걱정을 많이 하신다며 수매개시 일자를 12월 1일에서 11월 25로 수정할 것을 제안했다.
나는 장관의 결재를 받아 수매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12월 3일부터 돼지 값이 상승하기 시작해 한 마리도 수매하지 아니하고 고비를 넘기게 됐다.
그런데 내가 그때에 담당과장으로서 옹고집(壅固執)을 부린 이유는 간단하다.
첫째는 돼지수매를 형식적으로 해보아야 양돈 산업의 불황(不況)만 연장하면서 부업규모의 농가에 심각한 피해만 늘려준다는 것과 양돈 산업의 흐름이 항상 추석이 지난 10월 하순부터 11월에는 하락을 하고 12월에는 회복이 된다는 법칙이 있다는 것이다. 그 해 4~5월의 돼지새끼분만 사항을 분석한 결과 수매 등 어떠한 정책수단으로서도 해결이 불가능 하다는 판단과 자연의 순리 즉 양돈 산업의 생리에 맞기면서 앞에서 설명한 몇 가지의 구조조정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자 온 힘을 다했다.
결과는 성공적으로 마무리 됐고 국제규격에 맞는 돼지생산, 가축계열화사업이 축산기간사업으로 정착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기업규모의 양돈업체의 우수한 종돈 공급과 새로운 기술보급에 기여해 양돈 산업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국제경쟁력을 갖춘 산업으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자부(自負)하고 싶다.
그런가 하면 매년 서울에서 하던 양돈인 대회를 속리산 관광호텔로 장소를 변경해 나는 참석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오후 6시가 지나서 양돈인 대회 마지막에 양돈인 300여명이 참석해 중소가축과장 이인형이를 몰아내기로 결의를 했다는 소식을 전화로 전해주는 것이었다. 그 후에 여러 전문지에도 기사화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관심도 갖지 않고 있었다. 어느 날 오후 2~3시경에 양돈단체 부회장 등 5명이 내 앞으로 오기에 어서 오라고 인사를 하는데 부회장이 대뜸 “야! 인형이 네 목을 베러 왔다”라며 목소리를 높이기에 어서 자리에 앉으라고 하니 또 다시 “네 목을 자르러 왔는데 왜 그렇게 태연 하냐”고 묻는 것이었다. 나도 화가 나서 “당신들 내목을 자르려면 지금 장관이 게시니까 빨리 찾아뵈라”고 호통을 치며 “나를 목 자르라고 건의를 하면 나를 당장 축산국장으로 승진을 시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빨리 장관에게 건의를 해 달라고 하니 직원들의 눈치를 살 살 보면서 일어나서 나가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일에 몰입하는 것이 어느 사이에 내 삶의 전부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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