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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상생의 원칙’ 고수돼야 유가 연동제가 산다

 

윤성식  교수(연세대학교)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먹어왔던 유즙(乳汁) 중에서 특별히 우유는 유럽인들의 주식으로 자리 잡으면서 마치 기독교가 세계 각국으로 전파되듯이 빠르게 지구촌 식품으로 자리 잡았다.
우유는 요즘도 중국과 같은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그 소비가 크게 신장하고 있으니, 경제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대표적인 상징식품(signature food)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유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유럽 여러 나라들과 미국, 일본 등 경제 대국들도 우유의 소비량이 거의 정체되거나 해를 두고 조금씩 감소하고 있어 낙농업계가 꽤나 골치아파하는 것 같다.
우유는 체중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는 단백질의 공급원이고 각종 대사작용에 필요한 필수아미노산, 비타민이 다량 함유되어 있으며, 고른 필수아미노산 조성 때문에 우유와 같은 동물성식품(animal-based foods)이 식물성 식품보다 영양학적으로 우수하다고 아무리 목청을 높여도 과거의 완전식품이 배부른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요즘에는 동물복지와 친환경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는 소비자를 중심으로 육류 이외에 공급이 용이하고 저렴한 식물성단백질을 섭취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불원간 우리의 식단이 동물성식품을 덜먹는(less-animal food) 행태에서 무동물성(meatless/milkless) 식습관으로 돌아서는 사람들이 많아질 터이니  관련업계는 이에 대한 현명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몇 해 전부터 국내 낙농업계는 생산자와 유가공업체 간에 지리한 협상을 거쳐 해외에서도 그 유래를 찾기 어려운 ‘유가 연동제’를 실시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각고의 노력 끝에 합의된 이 제도가 지난 해 본격적으로 실시되면서 미리 예측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난제들이 앞길을 가로막는 형국이 되어가고 있다. 솔직히 현행 유가연동제로부터 생겨난 애로사항은 국내 낙농가들의 어려움이라기보다는 유가공업계가 떠안아야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연동제 하에서 목장의 원유가격은 생산비 변화의 증감에 따라서 탄력적으로 쉽게 결정되지만, 시장의 유제품 가격은 그렇게 결정할 수 없는 비탄력적 가격결정의 한계 때문이다. 한 달에 두 번씩 유대를 정산해야 하는 유업체를 원유가와 연동하여 유제품가격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제약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중요한 것은 낙농가와 유가공업체, 이 두 이해 당사자 중 어느 한쪽이 파산하면 전체가 허물어질 터이니 양쪽이 공생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현명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비록 국내의 낙농여건은 열악하지만 우리의 낙농산업을 짊어지고 있는 두 수레바퀴가 생산자와 가공업계가 아닌가. 이들이 완벽한 협조와 상생(coexistence)의 정신을 견지하지 않으면 수레는 결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우유는 타 농산물과 그 성격이 완벽하게 판이한 식품이라는 점을 일반인은 잘 모른다. 우유가 남으면 값이 내려가고 부족하면 올라가는 식품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동물의 유즙은 착유 후 미생물에 의해 쉽게 변패하기 때문에 시유나 기타 유제품으로 가공하지 않으면 바로 상품가치를 잃는다. 그러므로 목장에서 생산하는 즉시 누군가가 매입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필자는 미국의 낙농산업 역사를 읽으면서 몇가지 새로운 사실을 파악하게 되었다. 남북전쟁 직후 낙농가들은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는 도시지역 근처에서 우유를 공급하기 시작했는데 종종 원유를 구입한 판매자, 가공업자들이 유대를 정산하지 않거나 심지어 야반도주하는 경우도 있었다. 시쳇말로 ‘먹튀’가 종종 발생하였고 결국 취약한 낙농가들은 목장 경영의 어려움과 극심한 가격변화를 수용하지 못하여 파산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여곡절 끝에 1900년부터 낙농가들은 고정유대를 받기 위하여 협동조합을 설립하였고, 우유판매자들과 협상을 시도하였다.
미국 외에도 여러 선진국의 낙농산업 역사를 살펴보면, 그들도 유대결정에 있어서 상당한 시행착오를 반복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결국 미국 정부는 사회적 약자인 낙농가를 보호하기 위하여 대공황기 이후 농업조정법(Agricultural Adjustment Act)을 제정하는 등 낙농산업에 개입하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낙농산업은 그 성격상 정부의 보호가 없이는 자율적 발전이 어렵다는 뜻이 담겨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우리와 식문화가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은 어떠한가.
일본의 낙농가수는 1만9천여 호, 사육두수는 140만두 정도 된다. 북해도산 원유가격은 킬로그램 당 82.1엔, 전국평균은 90.7엔(약 850원) 정도이니 한국의 원유수취가격보다 상당히 싸다. 전국적으로 8개 지역별 생산자 단체는 원유가격 형성이 시장의 실제 유제품가격을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원유의 수요에 대응한 계획적인 생산 및 공급 조절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요컨대 지정 생산자 단체의 주요 역할은 ‘원유의 위탁집유 위탁판매 형식’인데, 각 지정단체에 가입한 낙농가의 원유를 회원인 단위농협이 직접 집유하여 계약된 유업체에 판매하는 방식이다. 생산자 단체와 유업체는 매년 용도별 즉, 음용유용, 생크림용, 치즈용, 가공용(버터, 분유) 수량 및 가격에 대한 계약을 직접 체결한다. 각 농가에서 출하한 원유의 용도에 관계없이 종합 유가(pooled price)로 유대를 결정하는데, 이는 광역 지정 단체에서 판매된 모든 용도별 유대와 보조금의 총액을 원유 총 생산량으로 나누어 산출한다.
용도별 원유의 기준가격의 결정은 년 1회 유업체와 지정 생산자단체 간의 자율적인 협상을 통해 이루어진다. 일본처럼 자유시장 경제를 채택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모두 이해당사자 간 자유계약을 통해서 상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국내 유가연동제는 자유계약이 아니므로 공정거래를 위반하는 거래의 소지가 있어 부담이 된다. 재화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자유시장 경제에서 국내 낙농가도 보호하는 한편 유업체도 살려야 하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어려운 숙제가 바로 유가연동제에 담겨있는 것이다. 게다가 오늘날과 같은 다자간 FTA 체제하에서는 국가의 농업보조금 지급은 자유무역협정 위반으로 외교적 마찰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국내 유가연동제가 안고 있는 당면한 난제를 풀 수 있는 당사자는 결국 낙농가와 유업체외에는 아무도 없다.
싫든 좋든 평생을 같이 살아가는 자세가 아니라면 결혼의 성공을 보장할 수 없듯이 낙농업계의 양보와 협력이 없다면 양측 모두에게 무슨 희망을 기대할까?
흑백 인종 간의 상생을 호소하던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우리는 서로 다른 배를 타고 온지도 모르죠. 그러나 지금 우리는 한 배를 타고 있습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전년에 비해 올해 우유생산량이 늘어났고 우유소비량이 줄어들면서 잉여우유 처리를 놓고 이런 저런 불협화음이 들린다. 이러다가 자칫하면 유가연동제라는 공든 탑이 무너질지도 모를 일이다. 낙농산업의 주체들이여,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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