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를 한 번이라도 읽어본 사람치고 적벽대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오나라 장수 주유가 조조를 속이는 결정적인 계략이라 할 수 있는 고육지계(苦肉之計)를 대할 때는 책에서 눈을 뗄수가 없다. 주유는 화공작전의 성공을 위해 황개가 거짓 항복하는 사항계(詐降計)를 쓰기로 하고 연극을 하는데, 황개가 “조조군을 도저히 이길수 없다”며 “항복하는게 좋다”고 말하자 주유는 벽력같은 호통 소리와 함께 노장 황개에게 곤장을 치는데 그 모습은 살갗이 터져 유혈이 낭자한 그야말로 처절한 체형이었다. 이 모습을 전해들은 촉나라의 제갈량은 “자신의 몸에 고통을 가하는 고육의 계책을 쓰지 않고는 조조를 속일 수 없겠지”라고 했다는 이야기다. 뜬금없이 웬 삼국지 이야기냐고 할 지 모르겠지만 요즘 유업체들의 우유 감아팔기를 보면 자꾸 삼국지의 이 장면이 떠오른다. 우유 값을 제값에 받고 팔아도 남을까 말까한데 930ml나 960ml 큰 팩 하나에 180ml 작은 팩 두개를 감아서 팔고 있으니 저러고도 어떻게 견딜 수 있는가 싶다. 만약에 저러고도 견딜 수 있다면, 그동안 유업체가 폭리를 취했다는 말인가. 그러나 그것이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최근 1천톤 이상의 재고를 안고 있는 한 유업체 관계자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영업담당이사인 A씨는 “원유는 매일 집유해야하고, 유대는 보름마다 한 번씩 꼭꼭 지불해야 하는데 원유는 판매되지 않으니 어쩝니까. 안팔린다고 그냥 둘 수도 없어, 분유로 가공하면 그 값이 반값으로 떨어지니 차라리 감아팔기라도 해서 손해를 줄여야 하지요”라며, 어쩔수 없이 감아팔기라도 해야 하는 유업체 입장을 누가 알아주기라도 하느냐는 하소연이다. 그야말로 고육지계다. 이어서 그는 “요즘 축산업계가 소비자 시대를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는데, 낙농현장에서는 그런 인식이 없는 것 같다”며 소비자 시대에 둔감한 낙농 농가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피력했다. 우유 시장에서는 경기 침체로 우유 소비가 줄어들고,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백색우유가 싫어서 우유를 먹으려 하지 않는데, 생산 현장에서는 아직도 우유를 생산만 해놓으면 무조건 유업체가 처리해야 하고, 정부가 나서서 대책을 세워줘야 한다며 우유시장에서 겪는 그런 고통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유업체 관계자의 이 같은 푸념에 낙농가들은 어떤 대답을 할 지 모르겠다. 80년대 초 젖소를 수입해서 낙농가들에게 분양해주며 이익을 챙기던 때를 상기하며, “유업체의 존재는 낙농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강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익을 생명으로 하는 기업이 언제까지나 손해를 감수하면서 시유를 취급할 수는 없을 것이란 점이다. 그렇다고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아닌 조합원의 이익을 강조하는 협동조합 또한 언제까지 손해를 감수하면서 시유를 취급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고민중에도 분유 재고는 쌓이고 있다. 올 연말이면 분유 재고가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며 분유 재고 대란의 우려 목소리가 적지 않다. 유업체의 감아팔기 고육책도 한계에 도달했다. 급기야 유업체는 낙농가들의 쿼터를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쿼터를 줄이지 않고는 분유 재고 대란을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 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 같은 유업체의 움직임에 대해 낙농가들은 순순히 쿼터 감축에 응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삼국지에서 오나라 주유는 노장 황개를 통한 고육지계 덕분에 적변전에서 대승을 거두었지만, 낙농 현실에서는 유업체의 고육지계에도 문제가 풀리지 않으니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아무래도 그 해결의 실마리는 낙농가들이 직접 푸는 방법 밖에 없는 것 같다. 두 걸음 나아가기 위해서는 한 걸음 물러서는 자세가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대안 마련을 위한 낙농지도자들의 지도력이 더없이 필요한 요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