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에 살고, 축산에 죽은 사람. 지난 2일 세상을 떠난 고 동송 황영구 선생은 그렇게 축산을 위해 한 평생을 보냈다. 고인이 걸어온 길 그 자체가 축산의 역사였다. 고인은 지난 1915년 3월 27일 강원도 회양군 회양면 이동리에서 태어났으니 올해로 91년의 수를 누렸다. 특히 지난 1985년 한국종축개량협회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원로 축산인으로 불리운지도 만 20년이나 되는 셈이다. 그럼에도 고인은 젊은 축산 지도자들 못지 않은 열정으로 축산의 앞날을 걱정한, 우리 축산업계의 영원한 지도자로서 축산인 들 가슴에 남아있다. 고인의 축산인생을 돌이켜보면 지난 1948년 농사개량원 교도국에 몸담은 이후 지금의 농진청과 축산연구소 전신인 중앙농업기술원 시험국 축산과, 가축과, 농사원축산시험장 대관령지장장, 국립제주목장장등 축산 기술 관련 현장 부서를 두루 거친후 지난 1961년과 1967년 두 차례에 걸쳐 농림부 축산국장을 역임, 우리나라 ‘축산 장관’으로서 오늘날 축산 기술과 행정의 기초를 다지기까지 새운 공로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또한 고인이 1969년 한국낙농유업주식회사(현 매일유업의 전신)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공직을 마감한 이후 걸어온 인생 행로는 고인의 인생이 곧 축산사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한국종축개량협회장과 한국낙농육우협회장직을 수행하면서 한우와 젖소의 개량은 물론 관련 산업의 발전을 위해 쏟은 정열은 국내 어느 원로 축산인과도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독보적이다. 그 중에서도 후배 축산인들이 존경해마지 않는 것은 고인의 축산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다. 고인은 지난 2004년 본지 창간 19주년기념 특별인터뷰에서 “역사적으로 국가적 생존 경쟁에서 육식을 주로하는 민족이 초식을 주로하는 민족을 지배해 왔는데, 이는 육식 동물인 호랑이나 사자가 초식 동물인 양이나 사슴을 지배하는 것과 같다”며 축산이 곧 대한민국을 힘있는 나라로 만드는 원천적인 산업임을 강조했다. 아울러 “행정이 기술을 유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부국의 원천 산업인 축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축산 전문가들의 위상이 제대로 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등 고인이 갖고 있는 철학은 우리가 왜 축산업을 육성 발전시키지 않으면 안되는지에 대해 분명한 깨우침을 줬을 뿐만 아니라 축산전문가들의 자존심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우리 축산이 요즘 대외적으로 FTA, DDA 협상 등 개방 파고를 맞이하고 있는가 하면, 대 내적으로는 축산분뇨 처리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고인이 운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은 유가족은 물론 많은 축산인들에게도 천붕지통(天崩之痛)이 아닐 수 없으며, 더욱 애절한 마음으로 고인의 축산 철학을 회고하게 된다. 그러나, 평생 축산을 위해 살다간 고인을 위해 이제는 편안한 영면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우리 축산인들이 기도해야할 때다. 동시에 고인의 철학을 다시 한 번 되새겨 축산이 강해야 대한민국이 강한 나라가 될 수 있음을 축산인들의 지혜와 땀으로 보여 줄 것을 다짐하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