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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개와 늑대의 시간

  • 등록 2017.08.10 10:12:57


윤 여 임 대표(조란목장)


몇 날 며칠을 내리 장맛비가 내리더니 곳곳에 수해가 났다. 비만 내려준다면, 말랐던 수로에 물이 흐르고 바닥이 갈라진 저수지에 물이 차오르기만 한다면 폭우가 쏟아져도 반갑기만 했는데 날씨가 극과 극을 달린다.
파종을 하면 싹이 나서 자라는 것이 당연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에 안달하던 지난 몇 달이었다. 우유의 근원이 물이라는 피할 수 없는 진실 앞에서 밭에서 메말라 가는 작물에 물 한바가지 줄 수가 없었다. 수확한다고 말하기도 민망하게 간신히 한자 남짓 자란 연맥을 랩핑 한 후, 수단그라스를 심는데 먼지구름이 일어나 트랙터가 보이지 않았다. 바로 ‘인터스텔라’의 그 장면이다.
옥수수만이 재배 가능한 식량작물로 남고 먼지, 병충해로 인한 인류의 위기. 2050년대를 배경으로 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역작인 ‘인터스텔라’는 지구를 구해야 하는 다른 영화들의 설정과는 다르게, 구할 수도 없이 망가져 버린 지구를 대체할 다른 행성을 찾아야 한다는 가슴 서늘한 내용이다.
메마르고 달구어진 땅에서 뿜어내는 열기가 더해져 물세례를 받지 못하는 식물들은 고사위기에 내몰리고 있었고, 여기저기 농사를 포기하는 땅이 조금씩 늘어 가고 있을 때 서울 갈 일이 생겼다. 아스팔트 사이의 초목들은 고급스럽게 푸르렀고 빌딩 안에 들어서니 가뭄의 심각성을 몸으로 느낄 수가 없었다. 허드렛물로 해결하던 우리 집 사정과는 다르게 시원하게 빨려 들어가는 화장실의 물줄기, 냉방이 잘 된 건물 안의 쾌적함 속에서 자신이 과연 몇 시간 전까지 가뭄으로 안달하던 그 사람인가를 되돌아 봤다.
그러나 목장의 사정은 확연히 다르다. 몇 년 사이에 우물을 연거푸 파야 했다. 자고 나면 늘어나는 주위 공장들과 가뭄 탓에 물 사정이 급격히 나빠져 3년 전에는 중공을 팠는데, 여전히 물이 부족해 대공관정을 파야 했다. 그러면서도 비어가는 땅속의 일이 두렵기만 하다.
과도하게 지하수를 길어 올리는 일이 땅속의 생명수를 고갈시키는 일이라는 것을 보통 사람들이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요 몇 년 사이에는 드물었던 올해의 장마다운 며칠간의 장마로 물 부족으로 애태우던 시간들을 슬금슬금 잊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제 물의 위기는 국가가 나서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보편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국민 각자의 매우 개별적인 노력이 필요한 총체적인 문제다.
우주선을 쏘아 올린 기술을 압도한다는 현대기술의 집약체인 스마트폰을 누구나 들고 다니는 이 시대! 은행과 쇼핑몰, 텔레비전, 라디오는 물론 카메라와 각종 전자도구, 터치하나로 전 세계가 연결되는 엄청난 영상통화 기술이 손바닥 안에서 가능한 세상임에도 물 생산 기술은 요원하다는 인간의 한계를 몸으로 느껴야 할 때다.
물에 관한 한, 다각도의 모든 정책이 한꺼번에 동원 될 시점이다. 가장 기초적인 물 절약과 효율적 관리, 물의 보존에 관한 정책만으로는 안 되는 시점에 이르렀지만 우리는 그 조차도 미약한 실정이다.
미국의 사회생물학자인 레베카코스카는  ‘지금 경계선에서, watchman’s rattle(2011)’라는 저서에서 물 보존 방식만으로는 단지 시간을 벌 뿐이며, 단기적 증상의 개선은 문제가 치유됐다고 사람들을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에 더욱 위험할 뿐이라고 경고한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물을 생산할 수 있는 보다 강력하고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예전에 몸으로 수고하지 않으면 물을 얻을 수 없을 때, 인간은 물에 대한 겸손함과 경외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터치만 하면 커피 한잔 값도 안 되는 물세만으로도 며칠이라도 펑펑 쓸 수 있는 환경, 즉 물이 돈 몇 푼으로 살 수 있는 소비재라는 인식이 만연한 세태에 그걸 요구하는 것은 무리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안 보이고 깨닫지 못한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축산업에 중수를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의 도입을 제안한다. 몇몇 선진 농가들은 이미 도입해 활용하고 있지만, 보다 정책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효율적인 물 절약 시스템의 도입이 시급하다. 또한 축산인들의 인식개선을 위한 물 관련 교육을 필수 교육과정에 추가 할 것을 제안한다. 에너지는 대체재라도 있지만 물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 할 수 없다는 절박함! 그 절박한 문제에 대한 해법을 당장 행동으로 옮겨야 할 시점이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다가오는 짐승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구분이 안 되는 황혼 무렵 시간대를 일컫는 말이지만, 화자에 따라 선악의 경계구분이 모호한 경우에도 쓰이는 말이다. 넉넉하게 내려주었던 올해 장마기간이 개의 시간이 아니라, 물 부족 사태에 대한 사람들의 경각심을 해이하게 만드는 늑대의 시간이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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