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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내가 걸은 60 성상(星霜)의 목장길 <94>해외 우수 축산 과학자 인력 확보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축산시험장 연구원 확보 시급 과제…해외 박사급 4인 유치
농진청 발령 받고 보니 뒷받침 부족 탓 모두 이탈

  • 등록 2017.09.01 10:28:43


김 강 식 고문((사)한국육류유통수출협회)


본인은 1956년 3월 대학 졸업 후 12월부터 1958년까지 경기 도립 안양종축장에서 촉탁직으로 시작해 산란계 5천여수를 관리하는 부책임자로 당시 노용환 장장으로부터 혹독한 현장 산란계 관리에 대한 체험과 기술훈련을 받고 1957년 8월 전후 한국농업 재건과 발전을 담당할 농사원(농촌진흥청의 전신) 시험국 연구조사과 농업연구사로 발령받았다.
1962년 7월 연구관으로 승진, 연구기획과 업무를 담당하면서 당시 축산시험장(현, 축산과학원)은 충남 성환 시골에 있었기에 유능한 연구직의 잦은 이직으로 우수 연구인력 확보가 어려웠다.
그래서 다른 시험장 연구소가 위치한 수원에 있는 축산시험장 화산지장으로 이전하도록 되었다. 당시 담당 연구 및 지도직 해외 연수 파견자를 선발하는 시험결과 경상북도 영주시 농촌지도소에 근무하는 김영길 농촌지도원이 어학(영어)시험에서 100점 만점을 받았다. 학력을 보니 서울 경복고등학교를 나와 건국대학교 축산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인 경북 영주시에서 주간에는 농촌지도소, 저녁에는 영어학원 강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본인은 김영길 농촌지도원에게  편지로 축산연구사로 전직하도록 권유했다. 이에 본인 승낙 후 당시 농촌진흥청 최관식 지도국장님께 축산연구직으로 전직을 건의하니 한마디로 우수한 사람은 연구직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지도직이 되어야 하느냐며 한칼에 거부당했다.
그 후 몇 달 후 연구직 신규 채용시험에서도 최고점수로 또 합격되었다. 동시에 서울대 농대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하도록 하고, 연구직 발령전까지는 서울대 농대 한인규 교수에게 연구비를 지원했다. 그 연구비 중 인건비로 수원에 체재 할 수 있도록 하고 본인은 1967년 10월에 일본 축산시험장 연수를 마치고 1979년 10월 귀국해 보니 농협중앙회 직원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사연인 즉, 축산시험장 사천지장으로 발령받음에 따라 농대 대학원 때문에 사천까지 갈 수 없어 마침 농협중앙회 직원 채용시험이 있어 수석으로 합격해 중앙회 축산과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것이다. 농협 관계자의 양해 하에 축산시험장 연구사로 발령, 본인이 대일 청구권 자금으로 설치한 가축 호흡대사 시험 장치를 운영 가동하는 기술연수를 시켜 박사학위까지 이수토록 해주었다. 그런데 당시 연구사 봉급으로 노조모와 가족의 생계유지가 어렵다는 이유로 동아대학교 농과대학 교수로 이직하고 말았다.
그 후 본인은 1973년 5월 축산시험장 영양생리과장을 떠나 진흥청 연구조정관 농림부 축산국장을 거쳐 1979년 8월에 축산시험장 장장으로 돌아와 보니, 당시 우수했던 최광수 연구관은 경북대학으로, 배동호 연구관은 영남대학교로, 신원직 연구사는 전북대학 농대로, 김영주 과장은 전남대학 농대로, 박창식 연구관은 충남대학으로, 김중계 연구관은 제주대학으로 그 외 우수 엘리트 축산연구직 10여명이 축산시험장을 떠났다.
이에 따라 우수연구원 양성과 확보가 최우선 과제로 대두되어 초지 사료 작물분야는 한독 초지 연구사업을 통해 이 분야의 연구직은 독일의 기술연수를 거친 우수연구원을 확보할 수 있어 이 분야의 연구사업은 활발히 추진되고 있었다.
이에 본인은 가축개량 및 번식, 가축영양사료 축산가공분야에 대해 우선 해외 유학 박사과정을 이수한 유학생을 유치하겠다는 계획하에 농촌진흥청 청장과 차장의 구두 승인하에 연구공무원 2급 이사관(장장과 동급) 상당의 연구직 4명을 확보하고 해외 축산과학자 유치를 시도했다.
제일 먼저 미국 일리노이 대학에 가축영양학 박사 과정을 마치고 포닥으로 근무하던 신형태 박사(성균관대학교 교수)를 교섭해 귀국전에 영국의 로에트연구소에서 1년동안 가축호흡대사 시험장치를 이용한 가축사양표준제정 연수를 하고 귀국하도록 했다. 일본 나고야 대학에서 가금학을 전공한 고태송 박사(건국대학교 축산대학 교수 역임), 독일 계택갤대학에서 축산물 가공학을 전공한 이영진 박사(축산기업조합 전무)와 미국 나사항공 우주연구소 김운우 박사(화학분석) 4명의 해외 과학자를 계약직 연구관(2급 대우)으로 유치, 연구에 참여토록 했다. 이중 김운우 박사는 자기 전공과 맞지 않는다고 6개월만에 미국으로 다시 돌아갔고, 나머지 3명은 연구에 흥미와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으나 1988년 10월 본인이 농촌진흥청 차장으로 떠난 후 이들에 대한 관심과 뒷받침이 잘 안되는 것을 스스로 감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형대 박사는 성균관대학교 농과대학 낙농학과 교수로, 고태송 박사는 모교인 건국대학교 축산학과 교수로, 축산가공과에서 한국 가축등급제 제정연구를 하던 이영진 박사는 축산물가공처리협회(정육업자조합) 전무로 가서 소 및 돼지고기 유통개선 사업을 주도하다가 퇴직했다.
이상과 같이 축산연구의 선진화를 위해 해외 우수 축산과학자를 축산시험에 유치 활용코자 했으나 본인들이 시험장에서 바라는 연구 성과를 거두는데 자신이 없었고, 외부 유치 유혹에 따라 시험장을 떠나게 되어 해외 축산과학자 유치사업은 나 스스로 실패했다고 반성한다.
그 후 연구 공무원 단일 호봉 제도를 당시 총무부 김용휴 장관님께 건의 드려 이 제도가 시행됨으로써 농촌진흥청 산하 시험장 연구소의 우수 연구원의 이직을 막을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폭염 지나가 돼지 사료섭취량도 회복됐는데… 일교차 벌어지며 온도관리 소홀농장 피해 속출 여름철 면역력 저하 돈군 PRRS 위험성도 높아 양돈현장이 당초 예상보다 폭염의 피해로부터 일찍 벗어난 양상이다. 하지만 호흡기 질병 피해가 확산되며 또다시 비상이 걸렸다. 양돈농가와 현장수의사 등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중순부터 30℃를 훌쩍 넘는 폭염이 한풀 꺾이며 양돈현장의 사료섭취량도 정상수준을 회복한 것으로 전해졌다. 늦더위가 번식성적에 악영향을 미쳤던 지난해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숨 돌리려는 양돈농가들에게 또 다른 고민거리가 생겼다. 일교차가 벌어지며 돈사내 온도관리에 소홀한 농장을 중심으로 호흡기 질병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급성 흉막폐렴의 경우 올들어 특히 두드러지면서 비육구간의 폐사 사례도 빈번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 큰 문제는 여름철 폭염속 돼지의 면역력이 많이 떨어져 있는 만큼 본격적인 환절기로 접어들면서 PRRS의 위험성이 그 어느 때 보다 높은 시기를 맞았다는 점이다. 도드람양돈농협 동물병원 정현규 원장은 “흉막폐렴에 PRRS까지 겹쳐질 경우 큰 피해가 불가피할 것”이라며 “무엇보다 환절기 돈사온도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양돈농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