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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유불급’…의전을 생각하며

  • 등록 2018.11.02 10:58:36

[축산신문 기자]


윤 여 임 대표(조란목장)


이런 저런 행사에 참여하다보면 협동조합 행사에서 소위 이사나 감사 직함을 가진 이들이 가슴에 꽃을 달고 있는 데도 있고, 내빈중심의 개막식이 긴 곳도 있다. 긴 세월, 우리 사회에서 높은 분들은 우산도 받쳐줘야 했으니 그 정도 의전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도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의례적으로 보아 넘기던 것이 새삼스레 눈에 띄는 건 세월이 변한 탓이다. 대통령의 탈권위주의적인 행보를 시작으로 공공기관의 의전 또한 간소화 되는 추세다. 좌석 지정, 내빈소개 및 축사, 초청장 없는 4무 원칙(울산 중구)을 세우고 시민이 참여하는 행사에선 의전을 생략하기로 했다(춘천시). 수원시 역시 행사의 주인공인 시민들을 소외시키는 좌석 지정제나 축사를 없애 과도한 의전으로 인한 내빈중심의 관행에서 탈피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과잉의전에 대한 우려와 개선의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 한국사회가 오랜 관행의 틀을 과감히 깨나가고 있다는 신호다.
16~17년 전 쯤 모 사료회사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잠시 들른 그 회사 K 회장님의 가방을 직원이 들어 주려하자 “제 가방이니 제가 들겠습니다.” 겸손하게 사양하며 구내식당에 들어섰다. 어떤 의전이나 메뉴차별도 없이 직원과 사양가와 함께 식사를 하며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눴던 일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미국기업의 한국법인 대표임을 감안하더라도 굉장히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역시 그 당시 낙농육우협회 여성분과위원회에서 일을 볼 때였다. 그간의 우유 소비행사라는 것이 양복 입은 분들이 어깨 띠 두르고 길에 서서 팩 우유를 나눠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야심차게 우유축제라는 이름으로 행사를 진행한 적이 있다. 아무것도 모르니 여기저기서 보고 들은 것들을 꿰맞춰 2천500만 원 짜리 축제를 진행했는데 대성공을 거두었다. 어설펐지만 스스로 기획한 여성분과위원회 첫 행사가 성공한데 한껏 고무되어 회원들은 열심히 참여했고 예산이 증액되어 이듬해는 더 크게 축제를 열게 되었다. 농림부 차관이 참석한다니 지역 국회의원도 참석을 한다고 했다. 행사 때문에 안팎으로 뛰어다니기도 바쁜데 양쪽으로부터 참석자 면면을 다 알려 달라는 일부터 의전과 관계 된 전화를 여러 번 받아야 했다. 국회의원 사무실에서는 격이 맞아야 한다며 소위 비중 있는 인사의 참석을 수시로 확인했다. 이런 일로 바쁜 사람을 왜 이렇게 괴롭히나 불평했으니 의전을 챙겨야 하는 농림부나 의원실 사람들이 애를 먹었을 터였다.
드디어 축제날이 되었다. 전년도에 함께 행사를 진행한 사람들과 호흡을 맞췄으니 훨씬 더 잘 될 것이라는 기대가 충만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국민의례를 하는데 태극기가 없었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건너뛰고 애국가 제창을 하려는데 음악 준비도 안 되어 있으니 시작부터 엉망이었다. 당황한 행사진행 요원이 애국가를 튼다고 본부석 중앙에 설치 된 아치풍선의 전원을 빼버리고 녹음기의 코드를 꼽는 바람에 아치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높은 양반들이 두 팔을 들어 풍선을 떠받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사회자인 필자의 임기응변으로 웃음으로 넘길 수 있었지만 등에서는 식은땀이 났다. 행사가 끝난 후 농림부 담당 사무관은 “군대에선 작전 실패는 용서받아도 의전 실패는 용서받지 못합니다.”하며 의미 있는 웃음을 지었다. 죽음으로 이어질지도 모르는 작전 실패보다 의전 실패가 더 중한 죄라니 얼마나 의전을 중히 여기는 사회면 그런 말이 있을까 싶었다.
문화차원이론(cultural dimensions theory)을 연구한  네덜란드의 심리학자 홉스테드(Hofstede)에 의하면 남성성/여성성, 집단주의/개인주의, 불확실성회피성향, 권력거리 이 네 가지  문화 차원은 각 나라마다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이중 권위주의성향과 관련 된 권력거리지수(Power Distance Index:PDI)를 보면 우리나라는 60으로 영국(35), 미국(40)이나 일본(54)보다는 높고 중국(80)보다 낮았다(2001년 조사). 권력을 이양하고 권위를 받아들이는 정도를 나타내는 PDI는 특정문화권에서 위계질서와 권위를 존중하는 정도를 나타낸다. 우리나라가 권위주의 사회라는 걸 홉스테드의 연구결과도 증명한 셈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다. 스마트한 기류가 온 세상을 휩쓴다. 품격 있는 예우를 뜻하는 외교용어인 ‘의전(protocol)’이 윗사람 모시기의 겉치레로 변질된 이 시대에 의전에도 뉴노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허의도의  [의전의 민낯]에서는 “세상의 문법은 다 달라져 4차 산업혁명을 논하는 판에 왜 우리는 주렁주렁 의전을 달고 사는가.” “의전을 해체해야 나라가 산다.”고 일갈한다. 유연하고 산뜻한 사고가 필요한 시대에 우리 농축산 관련 조직들이 앞장서 나가지는 못해도 시대에 뒤처지지는 말아야 할 일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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