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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포스트 투루스 시대와 팩트 체크

  • 등록 2018.12.07 09:41:50


윤 여 임 대표(조란목장)


 날도 궂고 몸도 으슬으슬해 중국집에 가서 오랜만에 해물짬뽕을 시켰다. 국물위로 홍합이 수북해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으나 빈 홍합껍질을 덜어내고 나니 국수는 몇 젓가락 되지 않았다. 무심코 카드로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와 영수증을 살펴보니 짬뽕 두 그릇에 1만6천원이라 얼른 되짚어 들어갔다. 계산이 잘못 되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계산대에 서 있던 이가 짬뽕 값 오른 게 언제인데 그것도 모르냐는 투로 가격표를 턱으로 가리켰다. 냉동해물 조금 넣고 빨갛게 국물 낸 국수 한 그릇이 원유 8리터 값에 육박한다(나는 뭐든 원유 값으로 환산하는 버릇이 있다).
가끔 들르는 해장국집에 갔더니 어느 결에 7천원이던 가격표 앞자리에 8자를 오려붙여 놓았다. 슬금슬금 잘도 오른다. 안 오른 게 없는데 우유 값이 비싸서 못 먹겠다는 댓글을 보면 울컥한다. 우유가 탄산과 색소, 설탕에 맹물을 부어 만드는 콜라와 매한가지 대접을 받을 땐 억울해 죽을 지경이지만 이불속에서 활개 치기일 뿐이다. 우유는 쌀처럼 유통기한이 길거나 고기처럼 냉동이 가능한 농축산물이 아니고 공산품도 아니다. 우유 값이 오른다며 기사가 많아지니 냉동은 불가하고 냉장은 필수라 유통기한이 짧기만 한 우유생산자의 입장에서는 이래저래 속을 끓인다.
지난 8월 원유가격이 리터당 4원 인상되자 이어서 우유 값도 오르고  뉴스에 ‘원유가격연동제’라는 말이 등장했다. 논조는 조금씩 다르더라도 우유 값 인상이 원유가격연동제 때문이라는 시선이다. 문제는 소비자에게는 생소한 이 용어로 쓴 기사들이 대부분 낙농산업의 특성들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수요는 줄어드는데 가격이 왜 오르나’ - 수요가 주는데 공급이 그대로면 가격이 낮아져야 한다는 수요공급의 법칙을 위반하니 수요가 줄면 가격도 내려야 한다는 기사다. ‘우유 값 인상 도미노현상으로 줄줄이 물가 인상’ - 우유 값이 인상되어서 카페음료와 과자, 빵이 모두 오른다는 식의 기사도 많다. 정말 우유 값이 오르면 가격인상 요인에 직접적인 원인이 될 정도로 수입산이 아닌 국내산 원유를 많이 사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일반적인 가격체계에서는 절사해도 무방한 단위당 4원 오른 원유가격에 기대 여러 분야의 물가가 오르고 있다. 가격연동제를 들먹이니 영문 모르는 소비자들은 우유 값이 물가 인상의 원흉쯤 된다고 믿을 법도 하다. 원유가격연동제를 포털에서 치면 다음과 같은 친절한 설명이 나온다.
‘통계청의 우유 생산비 지표, 물가 상승률 등을 고려해 낙농가로부터 유가공업체가 사들이는 원유(原乳)가격을 결정하는 제도’로 농림축산식품부가 2013년 도입한 제도이다. 시행 첫해인 2013년에는 원유가격이 리터 당 834원에서 940원으로 인상되었으며 2014, 2015년에는 가격이 동결되었다. 2016년에는 우유 소비 감소에 따라 18원 내린 922원으로 결정되어 원유가격연동제가 시행된 이후 처음으로 인하한 바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원유가격연동제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모든 것은 다 오르는데 원유가격은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 올해 8월에 리터당 4원이 올랐으니 지난 5년간 단위당 14원이 내린 셈이다. 복잡한 수치를 동원해 똑똑하게 말하지 않더라도 물가는 정신없이 오르는데 말이다. 여기서 ‘우유소비 감소에 따라’라는 말은 무엇일까?  원유가격연동제란 ‘원유기준원가에 소비자물가상승률을 반영한 변동원가를 더해 책정되는 가격’이라는 정의에 비춰 볼 때 수요증감에 따라 가격의 등락이 일어난다고 믿게 하는 이 글은 사실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이용자가 제일 많은 포털에 올라 온 내용이라 더 우려가 된다. 관련 기관에서는 정정요청을 함이 마땅하다.
2016년에 옥스퍼드사전은 ‘포스트 투루스’를 올해의 국제적 단어로 선정한 바 있다. 진실보다는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대중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가는 현상으로 ‘탈진실’로 번역된다. 우유 값 인상을 다루는 기사들을 보며 이 단어를 새삼 떠올린다. 기사가 편파적으로 한 업체만 겨냥하거나 사실관계가 불분명한 글도 눈에 띈다. 이 지점서 생각해 보면 전혀 모르는 다른 분야의 기사, 그것도 기자 개인의 감정적 판단이 듬뿍 담긴 기사를 만나면 어떻게 믿어야 할지 좀 난감해 지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가짜 뉴스가 판을 치며 그른 정보가 넘치는 세상에서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무분별하게 맞닥뜨리는 정보를 지식으로 착각하기 일쑤다. 애초부터 정보의 팩트 체크를 위해 노동할 의지가 없기도 하려니와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름대로 견해를 형성하고 그 견해대로 지갑을 열게 된다. 여러 분야에서 포스트투루스가 영향을 미치는 시대라 팩트 체크도 그만큼 더 활발해 지고 있다. 우유도 팩트 체크를 하고 잘못된 글은 바로 잡아야할 시스템이 필요하다. 과학이나 객관적 사실을 감정적으로 판단하는 오류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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