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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본지·농협 주최 가업승계·축산창업 우수사례 공모전 ‘우수상’>축산창업 / 전북 부안 윤호농장 정윤호 대표

실습농장서 만난 한우에 매료돼 `인생 궤도’ 수정

[축산신문 신정훈 기자] 대규모 논농사를 짓는 쌀 전업농의 후계자로 대학에서 식량작물학을 전공하던 정윤호 대표(26)는 실습농장에서 만난 한우에 매료돼 인생의 목표를 바꿨다. 우사를 신축하고 한우 사육 외길을 시작한 전북 부안 윤호농장 정윤호 대표의 한우 입문과정과 농장 정착기, 미래 희망을 따라가 봤다.


논농사 7만평이 가업…식량작물학과 재학 중

한농대 2학년 실습기간 동안 한우 기초 입문

우사 신축해 송아지 입식…`배우고 또 배우고’


정윤호 대표의 부모님 정재균(62)·방순심(58) 부부는 논 농사 7만평을 경작한다. 정윤호 대표는 한국농수산대학에 지원했다가 원광대 경제학과를 2년 다니고 군 제대 후에 재수해 농수산대학 식량작물학과에 입학했다. 아버지를 이어 논농사를 짓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선택이었다.

대학 2학년 때인 2017년 정윤호 대표는 장기현장실습에서 한우를 만나게 된다. “졸업 후에 쌀농사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한우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던 청년이었다. 그런데 수도작과 한우 번식우, 비육을 함께 복합 영농하는 농장으로 실습을 가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축산을 접하게 됐다.”

당진의 실습농장에서 10개월을 지내는 동안 정윤호 대표는 한우에 대해 알게 될수록 그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됐다고 한다. 그가 축산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계기이다. “실습과정에서 농업과 축산전문지를 틈틈이 구독했다. 축산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을 시점부터 무허가 축사 문제가 큰 이슈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대학을 졸업하는 시기에 부안에 축사를 신축할 수 있는지 정보를 찾아보니 허가가 나오기 쉽지 않을 상황으로 판단됐다. 실습과정 중이라도 축사 신축 허가를 받아놔야 축산에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 학생 신분이었던 정윤호 대표는 젊은 패기를 바탕으로 과감하게 축사 신축에 도전한다. “2011년 소 파동 때 동물을 좋아하던 아버지가 한우 번식우 10두를 들여 놓았다. 집 옆에 작은 축사에서 번식우를 길렀는데 무허가축사 적법화 추진과정이 원활하지 않아 한우사육을 포기하려고 했다.”

정윤호 대표는 한우사육을 결심하면서 휴일을 이용해 귀가한 날 아버지에게 자신의 의지를 알렸다. 그러나 마침 무허가 축사 문제로 한우를 처분하려는 아버지는 정윤호 대표를 쉽사리 신뢰하거나 믿음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한우 연도별 가격자료 조사표와 다양한 자료를 만들어 설명했다. 특히 실습기간 동안 어떻게 한우를 잘 키워야 하는지, 번식우 사양관리, 송아지 사양관리, 어떠한 약을 써야 좋은지 등등 확실하게 배워오고 이를 증명할 수 있도록 실습을 열심히 한 학생에게 학교에서 주는 상장을 받아 오겠다고 약속했다.”

정윤호 대표의 굳은 의지와 다짐을 확인한 아버지는 믿음을 주었고, 큰 빚을 내서 소유하고 있는 논에 축사 허가를 받아 신축을 하게 된다.

“아버지 명의로 2017년에 논 가운데 허가를 받아 우사 550평을 신축했다. 아버지 논을 담보로 3억5천만원을 투자했다. 대학을 졸업하면 후계농자금 3억원까지 신청이 가능하다. 그 것도 우사 신축에 쓸 계획이다.” 정윤호 대표는 아버지 명의로 지어진 우사 옆에 본인 명의로 우사 750평을 새로 신축하기 위해 허가를 받아 놓았다. 졸업을 하게 되는 올해, 봄 착공한다. 대출은 모두 정윤호 대표가 끌어안는 것으로 아버지와 약속했다.

“후계농인 제가 빚을 안고 가야했기에 축산에 실패할 경우에 대한 큰 두려움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감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윤호농장의 한우사육 목표두수는 일관사육 300두이다. 이 목표는 40~50세까지 장기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이뤄간다는 생각이다. “2017년 고창과 부안 가축경매시장에서 암소 번식우 40두를 구입해 입식했다. 선도농가에게 부탁해 추천을 받고, 체형보다 발굽 상태를 보면서 구입했다.”

한우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던 정윤호 대표는 2학년 때 실습농장의 현장교수를 스승으로 삼아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낮에는 현장교수님을 따라 가장 기초인 소밥을 제대로 주는 방법부터 배웠다. 소의 상태에 따라 사료량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우고 가장 중요한 물통청소를 매일 같이 하면서 몸에 습관화 시켰다. 약품의 종류와 근육주사, 피하주사, 혈관주사로 수액 놓는 것도 이 때 배웠다. 항상 메모장을 갖고 다니면서 보고, 듣는 모든 것을 메모했다. 밤에는 한우서적으로 공부하고, 실습일지를 만들어 당일 메모한 내용을 정리해 숙지했다.”

실습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와 3학년 때인 2018년에는 전공과목 외에도 대가축과 과목도 수강 신청해 들었다. 타 과 수강은 학기 당 제한이 있어 가장 필요할 것 같은 ‘질병’과 ‘대가축이슈’를 들었다. 이 과정에서 대가축과에 다니는 한우선도농가 후계자들과 친목도 쌓으면서 또 다른 정보를 축적해 나갔다.

“지금도 애로사항은 항상 생긴다. 실습농장에서 배운 것으로 기초로 하고 있는데 한계가 있다. 우선 수시로 주변 선도농가에서 배운 내용을 기록하고, 직접 농장에 찾아가 배우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한우사랑까페에 가입해 모르는 것은 컨설팅도 받고 있다.”

정윤호 대표는 전주에 있는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도 송아지를 낳는다면 부안의 집까지 달려가 일하며 학업을 마쳤다. 방학 때는 개체관리도 직접했다. 물론 학기 중에는 아버지가 농장 일을 조금씩 봐주기도 했지만 매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한우농장 일은 정윤호 대표의 몫이었다.

“이제 곧 대학 졸업식이다. 본격적인 한우인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셈이다. 축협에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제대로 한 번 해볼 생각이다.”

정윤호 대표는 한우를 시작하고 나서 일찍 일어나고 열심히 일을 하다 보니 아버지의 신뢰도 점점 쌓이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럼에도 한우사육에 있어선 아버지와 의견 차이가 날 때도 있다. “아버지도 들은 얘기가 있으시니까 한우사육에 대해 여러가지 얘기를 하신다. 그러다 보면 생각이 다른 경우가 생긴다. 우선 아버지 의견을 먼저 반영한 후 내 생각을 수정해서 반영시키는 방식으로 최대한 갈등을 자제하고 있다. 이것도 하나의 사회생활이라고 생각하고, 많이 참아야 한다고 믿는다.”

지난해 가을 윤호농장은 8개월령 수송아지를 출하했다. “아직 비육은 하지 않고 있다. 자본이 부족해 비육에 도전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해 번식우를 선택했다. 암송아지를 육성 중이다. 자가 수정을 해야 규모화가 가능하다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 농장에 출장 오는 수의사에게 교육도 받으면서 인공수정사 자격시험을 준비 중이다.”

정윤호 대표는 번식농장으로서 성공하기 위해선 송아지 폐사율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개체관찰에 특별히 공을 들이고 있다. “우방에 직접 들어가 송아지가 설사를 하는지 항문 주변과 바닥을 잘 관찰하고 있다. 만일 설사를 했으면 곧바로 약을 투입하고 상황에 따라 절식시켜 설사를 멈추게 하고 있다.” 개체별 상태와 투약내용 등은 보드 판에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기록해 놓는 것도 필수작업이다.

분만일이 다가오는 임신우 관리에도 공을 들인다. “실습농장에서 분만 일주일 전이나 심지어 보름 전에도 낳는 경우를 보았다. 분만일이 아직 여유가 있어도 긴장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암소의 상태를 유심히 관찰해 분만 실패율을 줄이고 있다.”

신축 우사에 필요한 장비는 정윤호 대표가 직접 만들기도 한다. “송아지방과 볏짚급여기가 필요한데 업체에 상의해보니 급여기만 해도 최소 수 백만 원 이상이 필요했다. 아버지와 용접기를 들고 직접 만들었다. 앞으로도 필요한 시설을 직접 제작하는 방법으로 경비를 줄일 생각이다.”

윤호농장은 현재 7만평 쌀농사는 아버지가 전담하고, 한우사육은 정윤호 대표가 전담하는 방식으로 일감을 나눴다. 아버지와 업무 영역이 겹치지 않는 정윤호 대표는 대부분의 후계자들이 겪는 갈등을 생략했을까. 대답은 그렇지 않았다. “초반에 아버지와 갈등이 있었다. 그 때마다 현장실습에서 아버지와 동년배인 현장교수의 조언을 들어서 어느 정도 해결 할 수 있었다.”

정윤호 대표는 아버지와 갈등을 줄이기 위해 두 가지 원칙을 정했다. 먼저 5분 일찍 출근하는 것이다. “바쁜 농번기에 농촌 일은 오전 4~5시경에 시작된다. 이 때 늦잠을 자면 시작부터 신뢰와 믿음을 잃고 갈등이 생기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농번기에는 자기관리를 철저히 해 일찍 일어나 아버지보다 5분 먼저 나오는 일이 반복되면서 신뢰와 믿음이 쌓이는 것을 느꼈다.” 두 번째는 아버지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다. “문제없이 농장을 운영해온 아버지에게 대학에서 이렇게 안 배웠다고 하던지 실습농장에선 이렇게 안 했다고 하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새로운 것을 접목시키기보다 아버지에게 우선 잘 배우는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아버지와 서로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사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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