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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두려움과 호기심의 효과

  • 등록 2019.02.13 10:24:27


김 동 균 이사장(강원도농산어촌미래연구소)


진화론자들은 인류가 오늘날 살아남은 원동력은 생존을 위한 끊임없는 투쟁과 적응의 결과라고 보고 있다. 말 자체에는 모순이 없지만 우리의 눈앞에 전개되는 모든 현상들은 무척 다양한 요인들이 얽히고설켜서 나타나기 때문에 그 결과를 간단히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다. 어느 생리학자는 엄청난 과거의 회오리를 뚫고 우리의 조상들이 살아남은 이유를 ‘아드레날린 효과’라고 단정하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맹수의 습격으로부터 목숨을 건지려면 순간적으로 괴력을 발휘하여 도망쳐야 하는데 그러자면 근육에 빠르게 많은 에너지를 공급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몸은 그것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이것은 소위 ‘폭포효과’라는 대사기전을 작동시켜 근육이 순간적으로 엄청난 힘을 내게 하는 장치이다. 여기에 아드레날린이라는 호르몬이 개입한다. 그러므로 그 생리학자의 표현은 참으로 절묘하다. 이 현상은 오늘날 우리의 눈으로도 자주 목격한다. 대부분의 스포츠경기나 격투기 선수들이 열심히 싸울 때에도 이 도구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결코 원하지 않았던 재앙이 또 찾아왔다. 최근 찾아 온 구제역은 또 한 차례 축산인들에게 두려움을 주고 있다. 두려움이라는 느낌은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누구든 새로운 것을 만나면 호기심과 함께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이 반복되면 ‘면역효과’가 생겨 대응도 빨라지고 두려움도 적어진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에 찾아 온 구제역에 대응하기 위하여 전국에 산재해 있는 수의사들의 협력으로 수백만 두의 소와 돼지에 대한 백신처리를 신속히 진행하였고, 규범에 따라 확진 되는대로 살처분도 실시하고 있다. 과연 이번에는 처음 당했던 수준보다 얼마나 적은 희생으로 이 재앙을 넘어갈 수 있을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중세 유럽에 만연했던 흑사병은, 하마터면 유럽 인종의 멸종을 초래할 지도 모를 대재앙이었다. 감염되면 거의 모두 죽었고, 전 유럽이 이 재앙으로 말미암아 치열했던 전투마저 자연스럽게 중단했던 사건이었다. 세계 인구증가추세의 그래프는 이 지점에서 폭락하여 요즘의 표현으로 말하면 바닥세를 기록하다 못해 소멸될 지경에 이르렀었다. 그런데 참으로 묘한 것이 현실이다. 흑사병으로 죽은 시체를 처리하기에 바빴던 와중에서도 일부 사람들은 살아남아 생명의 맥을 이었는데 그 이유를 수세기가 지난 요즘에서야 밝혔다. 당시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흑사병 내성유전자를 보유했다는 사실을 유전공학이 알아냈던 것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우리의 사랑하는 가축 중에서 아무리 강력한 구제역이 와도 살아남을 특수한 인자를 지니고 있는 개체도 존재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봄직하다. 그런데 현재의 매뉴얼은 이 병의 확산을 차단하기 위하여 발견되거나 가능성이 의심되기만 해도 몰살시키는 구조이므로 애꿎은 생명이 날아갈 개연성이 충분하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점에도 호기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같은 사료를 주어도 누구는 잘 먹고 왕성한 반응을 내지만 누구는 잘 적응하지 못해 비실거리다가 도태되는 것이 축산현장의 실태이다. 아무리 유능한 컨설턴트도 만나는 농장마다 기사회생시켜주는 백발백중의 명사수는 없다. 큰 흐름으로 본다면, 사양표준을 잘 이해하여 양질의 사료자원을 적절한 시간과 방식으로 제공하기만 하면 가축들은 해피하게 지내면서 최선의 능력을 발휘한다는 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여기에 또 그 짐승들이 각자 적응해 온 ‘내력’이라는 요인이 작용한다. 그래서 어느 집에는 아주 효과가 좋았던 처방이 다른 집에는 잘 듣지 않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므로 재앙적 질병으로 고통 받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그 인연을 만나지 않는 상황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마음먹은 대로 잘 되어지지 않는다. 자고 깨면, 생각하지 못했던 사연들이 찾아오고, 꼼짝없이 대응해야만 할 일들이 생기며, 이에 몰두하다가 다른 일을 처리할 기회를 놓쳐 그 대가를 단단히 치루기도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만일 누군가가 실수와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초인이거나 거짓말쟁이다.
과학이란 쪼개고 쪼개서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그러니까 과학자는 전체를 보기보다는 아주 미세하게 보는 일을 전문적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이다. 진리의 실상은 무수한 파편을 엮어서 큰 틀을 다시 해석해야 얻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학이 밝혀낸 큰 가닥은 믿을 만해 보인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항상 ‘예외 같은 것’들이 발견된다. 이한 의문이 종결되지 않는 한 과학행위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 속성은 자연과학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문과학 분야에도 상존함으로써 늘 첨단을 탐구하는 두뇌들은 필요한 세상이다. 첨단이라고 불리는 동네로 가 보면 ‘발상의 전환’이라는 요소가 넘실댄다. 그런데 기발해 보이는 것조차 깊이 들여다보면 ‘그것이 그것이다’라는 결론을 얻을 때가 많다. 말하자면 말장난으로 같은 물건을 다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재주로 ‘돈 되는 물건’을 만들어 제도의 틀에 넣어 돌려서 공금을 빼 먹는 무리들이 자주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것은 처음부터 남을 등치려고 시작하는 사기보다는 양심적인 편이다. 냉정히 둘러보면,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내재한 호기심과 두려움을 자극하여 돈 버는 일로 가득 찬 세상이 아닌가?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이 두 가지 속성은 인류사회를 이끌어 온 또 다른 힘이었다.
지금 우리는 구제역이라는 낯익은 손님을 맞아 고심 중이다. 과연 이 손님이 우리의 접대방법에 동의하고 순순히 떠나주실지 그것도 의문이다. 다음에 이놈이 또 온다면, 우리에게 내재된 호기심을 발동하여 더 효과가 좋은 방법을 찾아 손쉽게 쫓아내는 때가 오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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