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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장님과 코끼리

  • 등록 2019.05.01 10:48:52


규 현 교수(강원대학교)


불교 경전인 열반경에 나오는 이야기 중에 많이 알려진 이야기로 장님과 코끼리가 있다. 그 이야기의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인도의 어떤 왕이 진리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코끼리 한 마리를 데려오도록 했다. 그리고 장님 여섯 명에게 각자 그 코끼리를 만진 후 설명하라고 했다. 상아를 만진 장님은 무처럼 생긴 동물이라고 했다. 귀를 만진 장님은 곡식을 고를 때 사용하는 키와 같다고 했다. 다리를 만진 장님은 커다란 절굿공이 같다고 했다. 등을 만진 장님은 평상 같다고 했다. 배를 만진 장님은 장독이라고 했다. 꼬리를 만진 장님은 밧줄 같다고 했다. 여섯 장님들은 서로가 자기가 코끼리를 제대로 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이야기는 일곱 생쥐와 코끼리, 여섯 장님과 코끼리, 여덟 장님과 코끼리 등 여러 내용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이야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요 내용은 모두 같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만을 코끼리라 생각하고 그것을 고집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고 한다. TV에서도 볼 수 있고 라디오에서도 들을 수 있고 신문에도 읽을 수 있고 정치인의 입에게서도 나온다. 이렇듯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은 이제 일상생활에서 흔히 듣는 용어가 되었다. 스스로 물어본다. 4차 산업혁명이 무엇이냐고.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듣는 매체의 수 만큼이나 다양한 정의가 나온다. 그래서 이해하기 어렵다. 그 중에서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에서 정의한 내용을 보자(국가가 정의했다고 볼 수 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디지털 기술로 촉발되는 초연결 기반의 지능화 혁명’. 국가에서 정의한 내용이지만 이해하기 쉽지 않다. 나와는 관계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사실은 ‘나’와 떼려야 뗄 수 없다. 위 문장을 간단히 풀어 써본다면? ‘무엇인가를 생산하는데 있어서 더 이상 ‘내’가 필요 없다’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간단할까? 우리는 첫 산업혁명을 알고 있다. 사람과 동물과 같은 생물학적 에너지, 바람과 물과 같은 자연에너지의 사용에서 화석에너지의 사용. 즉, 에너지원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2차 산업혁명은 전기의 이용으로 열렸다. 전기를 산업의 쌀이라고 할 만큼 언제 어디서든 전기를 이용해서 생산이 가능하고 기기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각 가정에서도 가전제품을 쉽게 사용하게 되었다. 3차 산업혁명은 컴퓨터/인터넷/통신으로 열렸다. ‘내’가 그 자리에 없어도 제어가 가능하다. 그렇다. 지금은 3차 산업혁명기를 지나고 있다. 1차, 2차, 3차 산업혁명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 사람, 즉 ‘나’였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에서는 ‘나’의 존재가 희미해지고 기계가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게 된다. 따라서 지금은 3차 산업혁명기의 중간이며, 4차 산업혁명의 초입이라고 할 수 있다.
‘나’를 기준으로 한다면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는 방법은 명확하다. 축산업을 이야기해보자. ‘내’ 농장에 ‘내’가 필요가 없도록 준비한다. ‘나’라는 존재가 농장에서 떨어져 있어도 관리를 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지금도 외부에서 축사 환경 관리를 할 수 있는 세상이다(컴퓨터, 인터넷, 통신을 이용하여… 이것은 3차 산업혁명의 내용이다). 이러한 것들이 지금은 익숙하기 때문에 이것을 4차 산업혁명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에서는 ‘나’라는 존재가 농장에 필요하지 않다. ‘내’ 농장이 어떠한 매뉴얼, 프로토콜, 더 발전하면 인공지능으로 관리되고, 농장장 등 전문 인력의 도움 없이 초심자라도 농장을 관리하고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앞으로는 지금과 같은 교육방식은 비효율적일 것이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이 농장에 반영되기 위해서는 ‘나’라는 존재가 필요 없을 정도로 고도화된 농장관리 프로그램/엔진/인공지능이 필요하다. 지금도 군사장치, 개체관리장치, 실내환경관리장치 등 컴퓨터/인터넷/통신으로 제어가 가능하고 점차 고도화되고 있지만 ‘나’라는 존재는 여전히 필요하다. ‘나’의 지식, 경험을 바탕으로 프로그램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수많이 생산되는 데이터들의 아주 일부분만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관심 없는 것은 단지 (컴퓨터의 용량을 채우기만 하는) 숫자일 뿐이다. 하지만 그러한 숫자들은 ‘내’ 농장의 데이터이고 ‘내’가 놓치고 있는 ‘내’ 농장의 발전가능성이다. 많은 데이터(빅데이터)들이 있다면, 그 데이터들을 모을 수 있는 플랫폼이 있다면, 그리고 그 플랫폼에 있는 데이터를 이용하여(머신런닝)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정도로 발달된 인공지능이 있다면, ‘내’ 농장을 위한 최적의 운영방법을 알 수 있다.
지금 ‘내’ 농장에서 사용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에 적합(?)하다는 기계들이 어떤 데이터를 생산하고 이후에 ‘내’가 그 데이터들을 이용할 수 있을까? 그 데이터들의 획득/사용 방법에 대해서 ‘내’가 제시할 수 있을까? 우선 그러한 기계들이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데이터로 사용될 수 있도록 설계되지 않았다면 인공지능이 제어하기도 어렵고, 그 기계에서 나온 데이터들을 인공지능을 위해 사용하기도 어렵다. 각 농장에서 생산되는 데이터들을 통합하여 분석할 수 없다면 빅데이터를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인공지능을 고도화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장님과 코끼리의 이야기에서 보듯, 각 분야에서 보는/이해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기계를 만든다면(지금 우리나라는 이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나중에는 무엇인지도 모를 괴물 코끼리를 만들 뿐이다. 즉, 현재 필요한 4차 산업혁명의 대비는 TV에서 보는 스마트폰으로 제어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3차 산업혁명이다). 지금 시급한 것은 농장을 운영할 수 있는 엔진/인공지능, 그 엔진/인공지능을 위한 데이터 플랫폼, 그리고 농장의 기계들에서 나오는 데이터들의 통합을 가능하도록 하여 빅데이터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로드맵을 만드는 것이다. 미래에 우리 축산업에 필요한 인재들은 앞 문장에서 이야기한 로드맵을 만들고 현실화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단순히 동물들을 키우는 방법은 지금까지 쌓아온 축산업의 지식을 이용하여 이제 인공지능이 알아서 해 줄 것이므로 더 이상 사람의 힘이 필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첫 문단의 내용과 달리 일곱 번째 장님이 나오는 이야기도 있다. 여섯 장님들의 이야기를 들은 일곱 번째 장님은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각자가 만진 것을 이용해서 코끼리라는 동물을 그려보자고…그래서 나온 동물은 과연 코끼리인가? 이렇게 4차 산업에 대해 글을 쓴 본인도 그 일곱 번째 장님일 수 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닌 더 멀리 보려고 노력한다는 점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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