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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착유가 말해주는 순리

  • 등록 2019.05.17 10:10:10


김 동 균 이사장(前 상지대교수, 강원도농산어촌미래연구소)


우리말에 ‘놔둬라’는 말이 있다. 이 말에는 참 묘한 뜻이 담겨 있다. 굳이 덧붙인다면 흘러가는 대로 건드리지 말라는 말이다. 오죽하면 ‘긁어 부스럼’이라는 말도 있을까?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이래야한다. 저래야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하고, ‘저것은 이렇게 하면 쉽게 해결될 일인데 왜 그렇게 하지 않을까?’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일주일에도 여러 차례 배달되는 축산신문에 홍수처럼 쏟아지는 문제들과 해법을 보면서 필자도 이러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니 어떠한 해법도 순간적인 방편일 뿐 해결해 놓고 나면, 그와 관련된 또 다른 문제들이 솟아나와 온 세상을 순식간에 뒤덮는 것을 본다. 그렇다고 그냥 놔두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가? 그렇지는 않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궁리하고 시도하며 살고 있다.
며칠 전에는 우리 업계의 저명인사 한 분이 ‘한독목장’이 설립되는 배경과 당시의 시대상을 소개한 것을 읽고 그 일이 벌써 반세기를 훌쩍 넘긴 사건임을 상기하고는 세월의 흐름이 무섭다는 점을 실감했다. 그리고 그 짧은(?) 세월 중에 한독목장은 수많은 변신을 거듭하여 오늘날에도 축산진흥을 위한 연수원과 행사장, 그리고 홍보의 장소로 그 자리에 있다. 또 한편에서는 더 유서 깊던 국립종축장 자리가 도시 확장의 조류에 밀려 지금의 자리에서 진행하던 일을 접고, 멀리 옮겨야 할 때가 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렇게 세월은 변화무쌍하게 흐르고 있다.
그런데 문득 젖소의 젖꼭지를 빠져 나오는 유즙으로 보고 순리(順理)라 떠오르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 현상은 비유생리학의 책장을 넘겨 본 사람이라면 결코 간단한 사건이 아님을 눈치 챌 것이다. 단순히 겉으로 보면 소의 젖꼭지에서 흰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는 장면이지만, 그 속에는 유즙이 만들어지기까지 매우 복잡한 우여곡절이 숨어 있다. 즉, 가죽에 덥혀있는 유방 속에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우유공장(직경이 불과 0.1~0,3밀리미터의 꽈리 형태)이 존재하며, 이 꽈리 거죽을 에워싸고 있는 상피세포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여러 권의 책으로 설명될 만큼 복잡하고, 그 표면에 번개가 치면, 둥근 주머니가 움츠러들면서 유즙이 밀려나와 지구상의 하천보다 더 세밀한 통로를 파도치며 흐르고 흘러 바깥세상으로 빠져나오는 현상이 착유인 것이다. 이 사건에 개입하는 여러 내분비선의 상호작용까지 연상하면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여기에 더하여, 소의 연령, 분만 후 경과일수, 사료의 특성, 사육장의 온도, 그리고 착유기가 빨아내는 압력의 수준에 따라 우유가 흘러나오는 속도는 개체마다 차이가 많다. 우유가 사람의 입에 들어오기 까지 이렇게 엄청난 사연과 수고로움이 동원되며, 축산물이 인류에게 주고 있는 혜택이 상상을 초월할 수준으로 많지만 축산물 반대론자들의 목소리에 현혹된 소비자의 선택이 업계의 당면 과제로 떠올라 있다. 이 점이 안타까워 ‘축산 바로 알리기 운동’도 부지런히 전개되고 있다.
그러면, 이쯤에서 우리의 현실에 유즙배출현상이 어떤 의미를 지녔길래 필자가 호들갑을 떠는지를 변명해보고자 한다. 모든 현상은 일정한 범위 내에서 실체를 드러낸다. 건전한 사회는 양심, 도덕, 윤리, 상식 이런 것들이 주류로 작용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로 믿으며 편한 마음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 사는 곳에는 언제나 사기, 폭력, 탐욕, 갑질 등 상식의 범위를 넘어서는 사건들이 상존한다. 이 현상은 고대사회의 기록에는 물론 구석기 인류가 남긴 벽화에서도 발견될 만큼 인류라는 존재가 지닌 지울 수 없는 특성이다. 이 덕분(?)에 경찰, 검찰, 법원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고상한 대접을 받으며 밥 잘 얻어먹고 있으며, 정죄가 끝난 죄수를 관리하기 위한 교도소도 인류문화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되었다. 명분만 보면 얼마나 당연하고 지엄한가? 그러나 여기에도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말할 수 없을 만큼의 비합리적 요소들이 버글대고 있고, 스스로 잘난 줄 아는 정치인들마저 우스갯거리로 인구에 회자해 온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낙농분야에서는 젖소마다 서로 다른 속도로 유즙을 낸다는 진리를 일찍이 간파하여 한꺼번에 젖 나오는 속도를 맞추려는 꿈을 접은 지 오래이며, 만일 무리를 해서라도 빨리 끝내려고 강한 압력으로 착유기를 가동하면 유방 속 우유공장이 모두 파괴되어 우유도 못 만들고, 더 무리를 가하면 소까지 잃게 된다는 점도 이미 알고 있다. 그러므로 소 젖 짜기 속에는 순리(順理)의 중요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순리란 무엇인가? 머무는 것인가 아니면 행하는 것인가? 엄정히 말하면, 서둘러도 안 되고, 주저해도 안 된다. 갈 때 가야 하고 설 때 서는 것이다. 문제는 그 때가 언제인지 정확히 깨닫기가 쉽지 않은 데에 있다. 그래서 무엇을 결정할 때에는 철저히 알아보고 정해야하는데 대부분 불거져 있는 문제들은 이 원칙을 무시한 채 ‘잘 모르면서’ 정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섣불리 파악한 근거를 기준삼아 세운 대책은 무리한 결과를 가져온다. 그리고 검은 마음을 품은 관계자들이 잔꾀를 부리거나 사익에 집착하면, 애꿎은 민초들이 피해를 입는다. 방향을 정해야 할 사람이 현명하고 슬기롭지 못하면 사회나 국가가 병들다 못해 패망한다. 역사는 큰 틀에서 이 점을 교훈으로 여실하게 보여 왔다. 그러므로 잘 모를 때에는 굴러 온 방향대로 놔두는 것이 오히려 안전하다.   
나라를 운영하거나 산업체를 유지하는 일에도 절대로 필요한 것이 순리이다. 때로는 지도자의 강력한 도전 정신이 그 단체나 국가에게 밝은 미래를 주는 일도 있지만 그것에도 한계가 있음을 충분히 예측하고 실행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원로들의 말씀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금년도 축산학회가 ‘통섭적 시각’을 화두로 내세워 개최되는 것은 시의 적절하지만, 올해에는 진정 ‘행사를 위한 행사’로 끝내지 말고, 핵심을 제대로 짚어내어 민초들에게 풍성한 식탁을 차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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