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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새 시대, 새 기술, 새 생각

  • 등록 2019.10.03 19:45:16


김 동 균 이사장(前 상지대 교수, 강원도농산어촌미래연구소)


동아시아 지역 사람들은 쌀을 주식으로 삼기 때문에 ‘쌀’은 신성한 존재로 대접받아왔다. 쌀은 이들에게 평생을 먹어도 질리지 않는 안전하고 든든한 먹이의 지위를 누려왔으며, 다른 곡류들은 쌀이 지닌 지위를 범접하지 못하도록 ‘잡곡’으로 다루었다.
‘쌀’하면 떠오르는 역사적 인물이 있다. 중국 청나라 때 양곡 대신(大臣)으로 성씨조차 쌀인 ‘미(米)’ 대신이 있었다. 그는 평생을 청백리로 이름을 날렸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았던 집은 물론 식솔이나 하인들에게까지 근검절약의 모습만 보이면서 평생을 지낸 ‘모범 공무원’이었다. 그는 죽으면서 자기의 장례방법을 지밀한 심복에게만 일러주었는데, 청백리로 둘째가라면 서러울만한 자신의 아들에게 조차 일러주지 않았다. 그 당시 아들의 임무는 부패한 관료를 적발하는 것이었으니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 할 만한 존재였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은 참으로 얄궂었다. 아버지의 시신을 싣고 가던 배가 수상하여 적발해보니 소박하게 치장한 큰 관 속은 황금으로 가득했다. 이로써 쌀대감의 신화는 산산조각이 났다.
쌀농사는 우리나라에서도 농업의 중심자리를 차지해 온 사업이다. 학문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쌀은 늘 최우선 대상이었고, 농정에서도 미작보호정책은 최우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가 흘러 이제는 쌀의 존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쌀 한 톨도 소중히 하던 시대는 흘러가고, 다른 품목들이 성장하더니 급기야 단일품목 최정상의 자리에서 밀려나는 사태에 이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쌀의 유통가격 조절과 생산비 보조를 위하여 해마다 상당한 예산을 쓰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제는 부담의 한계에 이르고 있다. 2017년도 쌀농사에 대한 변동직불금으로 1조7천억원이 지출되었고, 쌀 저장 비용으로 6천500억원의 혈세가 쓰였다. 
한편으로, 국내 축산업은, 대부분의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해 왔고, 예전에는 금기시 되던 풀(조사료)마저 수입하여 ‘보세가공적 축산’으로 바뀐 지 오래되었으며, 이것으로도 모자라 완성품을 다량 수입하여 먹고 있으니 한 때 ‘축산입국’을 부르짖던 시절이 그립기까지 하다. 축산은 ‘밭을 기름지게 한다’는 뜻에서 나온 단어이지만, 요즘은 집약적 축산으로 인한 분뇨의 과잉생산으로 인해 정부 당국은 축분뇨 관리문제에 또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붓고 있다. 말하자면 양곡과 축산이 조화를 이루는 형국이 아니라 서로 마찰관계처럼 보일 때가 많아 이 두 거인을 화해시켜보려고 그 동안 많은 생각과 돈을 써왔다.
또한, 소비위축이 가져 온 ‘쌀 남는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이미 오래 된 이야기가 되었지만 일본은 남아도는 쌀 저장비용을 줄여보려고 이 귀한 쌀을 먼 바다에 내다 버리는 ‘해양투기’도 시도했다. 그 후, 경작면적 축소, 저장방법 개선 등을 통해 이 문제를 해소하고자 했지만 여전이 어려움은 지속되고 있다. 우리도 쌀 생산을 줄이고, 그 자리에 대체작목을 심을 때 발생하는 손실금을 여러 형태로 지원하는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국면에서 만일 국내 자원의 쓰임새를 크게 올림과 동시에 원자재 조달 비용을 줄이는 전혀 다른 방법이 있다면, 농정당국이나 종사자로서는 복음(福音)이 아닐 수 없다.
쌀을 비롯한 곡물은 알려진바 대로 적절한 수분을 함유한 상태로만 저장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곰팡이가 생겨 쓸 수 없게 된다. 논에서 잘 여문 벼를 수확할 때의 곡물 중 수분함량은 23~25% 내외이지만 저장하려면 수분을 13%로 낮추어야 한다. 이 과정에 막대한 건조에너지 비용이 발생한다. 또한 갓 베어낸 볏짚은 살아있는 풀이므로 수분이 70% 정도여서 고수분 사일리지로 저장하여 사용하거나 1,2일 방치했다가 롤로 말아서 저수분사일리지 형태로 쓰던지 아니면 아예 바싹 마른 볏짚으로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과정에서 잃어버리는 영양자원의 값어치도 엄청나다.   
모든 먹이는 수많은 손길을 거쳐 사람이나 가축의 입으로 들어가는데 그 과정을 몇 단계만 줄여도 물건의 값은 싸진다. 만일 들판의 작물이 가장 간단한 과정을 거쳐 입으로 연결되기만 한다면 그 보다 좋은 일은 없다. 자연이 축적했던 에너지를 거의 손실시키지 않고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길은 이른바 고수분곡류(high moisture grains)의 기술을 쓰는 일이다. 이 개념이 나온 지는  이미 반세기가 넘었으며, 북미대륙에서는 잘 쓰이고 있으나 아시아 지역에서는 거의 사례가 없다. 일본에서는 잉여미곡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쌀을 사료곡물로 이용하기 시작했는데, 이미 2015년에 산물 벼 65만톤을 배합사료 공장에 국제곡물가격으로 팔아 사료전분의 상당부분을 이용했다.
만일 우리가 반추동물용 곡물에너지를 고수분곡의 형태로 이용할 수 있다면, 국내 사료산업에는 큰 변화가 올 것이다. 특히 전국 180여개의 TMR공장들은, 지금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가동률을 보이지만 수입곡물보다 저렴하고 다루기 쉬우며 영양·생리적으로도 유리한 원료가 있다면 이를 활용하여 생산비를 크게 줄이면서 가동률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더 안전하고 품질 좋으며 저렴한 사료를 제공하면 우선 우리나라 소들이 행복해 지겠지만 양축가와 TMR업자들에게도 소득증대의 기회를 주개 되므로 일석 삼조가 아닌가? 
고수분곡류의 효용성에 대하여는 이미 수백 건의 사양시험에서 입증되었다. 그러나 국내에서도 사료용 옥수수, 벼, 묵은 쌀 등을 가지고 시도해 볼 충분한 가치가 있다. 그리고 고수분곡 이용시대가 온다면, 필자가 강조해왔던 통년 haylage 급여체제(=자연자본 이용효율의 극대화)가 완성되는 것은 물론, 우유 및 한우육 생산비 절감에도 획기적인 효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또 볏짚도 싱싱한 영양소를 거의 잃지 않고 써 먹을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도저히 사용하기 어려운 묵은 곡물조차 재가공(reconstitution)과정을 거쳐 재생시켜 이용한다면 일석 사조의 이득이 된다. 더구나 이 방법은 지금까지 쌀 문제와 조사료 문제에 투입해 오던 각종 지원 정책자금의 몇 분의 일만 투입하여도 전국적 기반조성이 가능할 것이므로 재정 운영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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