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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성대에서>농협에 어른거리는 대마불사 신화

  • 등록 2020.04.03 11:39:00

[축산신문]

이상호 본지 발행인


‘대마불사’(大馬不死)는 바둑에서 쓰이는 말이지만 우리나라 재벌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키워드이기도 하다.
중화학공업 육성과 과감한 수출드라이브가 핵심인 정부의 경제개발정책이 빛을 발하면서 갑자기 덩치가 커진 대기업들이 속속 나타나고 이들은 정부로부터 유무형의 각종 지원을 받으며 기업집단(재벌)으로 부상했다. 대마불사 신화는 이들 대기업이 너도 나도 문어발식 확장을 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것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재벌들의 대마불사 신화는 IMF 환란을 거치면서 처참하게 무너졌다.
그런데 재벌도 아닌 농협중앙회에 빛바랜 대마불사 신화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이쯤에서 농협의 속을 한 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2019년 기준 농협의 자산규모는 137조원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협동조합의 면모를 자랑한다. 글로벌 협동조합 순위는 전 세계 2위이며 농업분야에선 부동의 1위다. 정부와의 밀월관계가 금이 간 일본농협을 감안하면 농협의 이러한 위상에는 큰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이를 반영하듯 농협의 신용평가등급(한국기업평가기준)은 최고등급인 AAA다. AAA는 농협에 돈을 빌려 줄 경우 떼일 염려가 거의 없다는 의미인데 일반기업은 여간해선 받기 힘든 등급이다.
그렇다면 속 내용은 어떨까. 2018년 농협의 재무제표상 총자산은 124조원이지만 이중 75%가 회원조합의 상호금융자산이기 때문에 중앙회의 실질자산은 25조원에 불과하며 법인세, 이자 등의 차감 전 영업이익인 EBITDA는 자회사분을 제외하면 600억원이상 적자상태다. 예치금을 포함한 실질현금보유도 상호금융보유분 3조6천억원을 제외하면 70억원에 불과하다.
농협은 자체적인 영업이익으로는 차입금이자를 충당할 수 없으며 자기자본이익률은 늘 기준금리를 밑돌고 영업현금 흐름도 만성적자다. 농협은 만성적인 수지불균형으로 인한 차입금과 이자부담 증가라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지난해 농협의 차입금은 13조4천억원으로 2012년 대비 44%가 증가했으며 이 기간 동안 이자부담액도 무려 49%나 늘어났다. 실질재무지표만으로는 한계기업 수준이라는 게 재무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농협에 든든한 ‘뒷배’가 있기는 하다. 정부의 농업정책자금 집행대행과 1천100여개에 달하는 회원조합네트워크가 갖는 공공성, 농협은행을 축으로 하는 금융사업이 있기 때문에 적어도 현 상태에서는 급박한 경영위기가 온다고 보기는 어렵다. 신용등급이 AAA를 유지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농협이 뒷배로 여기는 공공성이란 게 영원한 걸까. 흑자를 내느냐, 적자를 내느냐가 전적으로 금융자회사의 경영성적에 좌우되는 상황은 심각한 리스크이기도 하다. 자생력이랄 수 있는 재무적 체력이 계속 곤두박질 쳐도 농정당국과의 밀월관계는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을까.
그러나 농협내에서 만성적인 수지불균형과 자생력 저하를 걱정하고 고민하는 모습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보기 어렵다. 농협은 지난 수년간 사흘이 멀다 하고 무슨 컨퍼런스를 한다는 등 난리법석을 떨었지만 이런 고민을 토론하는 건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연초에 있었던 회장 선거에는 무려 12명의 후보가 출마해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선거전이 펼쳐졌지만 이 문제는 선거의 이슈가 되지 않았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회장 선거의 최대쟁점이 됐어야 했다.
“설마 농협이…” 라는 식의 안이한 인식이 조직 전체에 퍼져 있지 않고서는 이렇게 평온한 모습일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 대마불사 신화는 어떤 조직에도 유효하지가 않은 요설(妖說)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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