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위기를 맞았다고 모두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분명 아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위기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한눈팔지 않고 위기극복에 나선 결과 새로운 기회를 일궈낸 역사의 교훈은 얼마든지 있다. 모두가 위기라고 하는 작금에도 비록 소수지만 자신감을 피력하는 농가가 실제로 있다. 국내산 축산물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첩경은 안전성이 담보된 품질경쟁력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품질을 통해 가격경쟁력의 열세를 상쇄하는 한편으로 원가측면의 갭을 줄이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FTA가 눈앞에 닥쳐도 자신 있다는 농가가 많아야 하고 유통이나 사료등 축산업을 둘러싼 후방산업과 관련업계가 여기에 발을 맞추어야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한국축산업이 FTA의 파고를 넘어 새로운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축산인과 정부당국자들의 냉철한 현실인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중국이나 EU와의 FTA 협상마저 앞둔 현 상황에 대한 올바른 진단을 바탕으로 경쟁력제고에 매진하는 것만이 유일한 살 길인 것이다. 엄연한 현실을 눈앞에 두고 아우성을 치며 한탄만 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결코 아니다. 축산업이 처한 위기상황을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시간이 없다. 업계는 정부로부터 무엇을 얻어 내며,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지혜를 모아 이를 즉각 실천에 옮겨야 한다. 현실을 호도하지 않고,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지도자들의 희생적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시점이다. 정부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여론의 눈치나 보며 무슨 특별 대책이라도 있는 양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된다. 우리 축산업이 처한 현실과 가야할 길을 솔직하고도 분명히 제시하고 이에 맞는 맞춤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UR이후 축산정책은 만족할 수준은 아닐지라도 선별지원, 선별육성이라는 기조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그 정도의 강도로 지금의 난국을 타개하기는 역부족이다. 일정부분 누이도 좋고, 매부도 좋은 정책이 아니라 선택과 집중의 논리를 보다 강도 높게 적용한 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고령농가를 비롯한 한계농가에 대한 보상은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경쟁력제고대책과 한계농가대책을 혼동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것이다. 정책에 선택과 집중의 논리를 강도 높게 도입하는 데는 그야말로 일관된 정책과 용기가 필요하다. 경제의 글로벌화 속도로 미뤄볼 때 업계나 정책당국이 축산업을 둘러싼 여건이 호전되기를 기대할 수 없고 준비할 시간마저 없는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한 채 허둥댄다면 UR을 극복하며 성장해온 한국 축산업이 영원히 기회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정말이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축산업은 자가노동을 바탕으로 한 경쟁력있는 농가를 얼마나 확보하며, 어떻게 육성하느냐가 관건이다. 축산지도자들의 지혜와 희생적 노력도 필요하지만 정책당국의 솔직하고도 용기 있는 현실진단과 처방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38선이 무너져 서울외곽에 포탄이 떨어지는데도 적을 격퇴하고 있다는 정부발표가 서울시민들의 희생을 가중시켰던 역사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