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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축산물 섭취, 인간 DNA의 요구에 따른 것

■이야기로 풀어보는 육식과 건강

[축산신문 관리자 기자]


수렵생활 원시인 신장 178cm…현대인 보다 커 



인류의 역사는 간단히 ‘먹고 살기 위한 역사’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다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짓’ 그것이 만들어낸 역사란 말이다. 그런 점에서 먹거리 중심의 역사는 수렵시대, 농경시대, 산업화 시대 등으로 분리해 볼 수 있다. 여기서는 특히 동물성 단백질 중심의 수렵시대와 탄수화물 중심의 농경시대에 산 인류의 모습, 그리고 육류 소비 변화에 따른 체력등  세 가지 이야기로 풀어 본다. 


#스토리 1 / 원시인, 맹수와 싸운 체력 어디서 나왔나


육류·곡류 골고루 먹은 잡식성의 ‘힘’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전, 그 보다 훨씬 전일지도 모르겠다. 원시 시대를 살았던 원시인은 산에서 온갖 짐승, 사냥하는 것이 일이라면 일이었다. 원시인들이 사냥한 짐승 중에는 물론 호랑이 같은 맹수도 있었다. 그렇게 맹수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냥에 나서야만 생존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원시인들은 또 강에서 물고기를 잡아 먹는가 하면 산과 들에서 자란 식물의 열매를 따 먹기도 했다. 동물과 식물을 가리지 않고 먹는 잡식성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원시인들이 어떻게 호랑이와 같은 맹수와 맞서 싸울 수 있었는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그 당시에는 오늘과 같은 무기를 갖고 있지도 않았다. 기껏해야 활과 화살일텐데, 원시 시대의 화살촉이 나무 아니면 돌이나 조개껍질 정도 였을 것임을 생각하면 그런 무기로 호랑이 같은 맹수를 당적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떻게 맹수와 맞설 수 있었을까.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은 고고학자나 해부학자들이 밝힌 원인(原人)의 신장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원인들의 신장은 178cm 정도 됐다는 것이다. 이 같은 신장은 최근의 우리나라 남자 평균키인 174cm보다 크다.


#스토리 2 / 탄수화물 중심 식습관 정착 농경인 신장은


160㎝로 되레 작아져…18세기엔 165㎝


기원 후 인류는 석기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를 거치며 화려한 농경시대를 맞이했다. 그동안 원시인들이 산으로 강으로 뛰어 다니면서 먹거리를 해결하던 것과는 달리 발달된 농기구를 이용, 농업 생산


그러면 원시시대에 178cm나 됐던 사람의 신장은 어떻게 변했을까. 더 커졌을까, 아니면 더 작아졌을까. 먹거리를 쉽게 해결한 만큼 키가 커졌을 것 같지만 결과는 그 반대다. 농경시대 사람의 키는 160cm 정도로 추정된다. 이후 인류가 5cm 정도 크는데 1000년이 걸렸다. 실제 1700년대 중반 유럽인의 신장은 미국이 171cm이며 영국과 독일이 165cm 내외로 기록되고 있다.성을 향상시키면서 쉽게 먹거리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인류는 사나운 맹수와 맞서지 않아도 식물에서 생산되는 곡물로 편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원시시대에 육류와 곡류를 가리지 않고 먹던 식습관이 곡류 중심으로 바뀌면서 인류의 신체는 더 작아졌던 것이다.


#스토리 3 / 뒷심 부족 한국축구 ‘월드컵 4강’ 신화 동력은


육류 소비 4배 증가…강한 근력 뒷받침


세 번째 이야기는 우리나라 축구 이야기다. 지금으로부터 30년쯤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예선에서 이란에 발목이 잡혔던 우리나라 축구는 1982년 스페인 월드컵 예선에서 쿠웨이트를 이기지 못해 본선 진출의 꿈을 접어야 했다. 당시 우리나라 축구는 뒷심 부족이 늘 문제였다. 전반전에 잘 뛰다가도 후반에 들어서면 골을 먹히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체력이 월등한 유럽 선수와 경기할 때면 더욱 그랬다. 당시 유럽 선수와 경기를 직접 뛰어 본 선수들은 “유럽 선수들과 몸이 부딪히면 무쇠 덩어리와 부딪히는 것 같았다.”고 회고할 정도였다.

우리 선수들의 체력이 왜 이렇게 약했을까. 당시 우리 국민들의 먹거리를 보면 그 원인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1981년 주요 국별 1인당 고기 소비량을 보면 한국은 12.8kg에 불과한 반면 미국은 108kg, 프랑스 98.8kg, 독일 95.9kg였다. 당시는 북한도 우리보다 많은 13.9kg이었다.

그러면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나라 축구는 어떻게 변했을까.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을 차지한 이후 지난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는 사상 첫 원정 16강이라는 경기력을 보여줬다. 20년 전 유럽 선수들과 부딪히는 것을 두려워했던 우리 선수들이 이제는 당당히 맞서 부딪히며 소위 압박축구로 세계 무대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우리나라 축구가 이렇게 발전한데는 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축구 선수들의 근력을 강하게 한 먹거리 영향도 적지 않을 것이다. 81년 12.8kg에 불과하던 1인당 육류 소비량이 2009년 기준 43.28kg으로 20년 만에 4배나 늘어났다. 


#후기 / DNA 요구 무시한채 채식 권장 안될 말


세 가지 이야기, 즉 원시 시대 이야기, 농경시대 이야기, 그리고 최근 우리나라 축구 이야기에서 우리는 사람이 무엇을 먹느냐가 매우 중요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원시 시대 사람들의 식습관은 이미 교과서 등을 통해 학습된 것으로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러나 그 당시 사람들의 신장이 180cm에 가까웠다는 것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는 신장, 이것이 말해주는 것은 역시 인간이 원래 잡식성 동물로서 육류나 곡류를 가리지 않고 먹음으로써 모든 신체가 제대로 발육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키가 컸던 우리 인류가 수렵이 아닌 농경시대로 접어들면서 작아졌다. 잡식성인 인류가 육류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고 에너지의 대부분을 곡류를 통해 충당한, 탄수화물 중심의 식생활이 가져다 준 결과라는데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는 우리나라 축구 이야기에서도 다시 한 번 확인된다. 축구에서 이길 수 있는 강한 근력은 육류, 즉 동물성 단백질 공급 증대를 통해 키워졌던 것이다. 

다만 사람의 건강이 전적으로 육류만으로 지탱되는 것은 아니다. 원시 시대에 원시인이 먹던 고기와 현대인이 먹는 고기는 그 질이 다를 수 있다. 또 원시인의 활동량과 현대인의 활동량을 감안할 때 원시시대의 동물성 단백질 중심의 식습관과 현대인의 식습관과 비교하는 것이 무리일 수 있다. 그럼에도 식단에서 동물성 단백질의 중요성은 백번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인류의 DNA가 그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간과한 채 무조건 채식이 건강에 좋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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