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원 명예교수 (건국대학교)
1980년대 초 필자가 미국에서 유학 중 어느 미국인 가정에 식사 초대를 받았을 때 일이다. 주인 부부께서 한국에서 온 필자를 보더니 앞뜰에 있는 정원수를 가리키며 그 나무 이름이 ‘미스 킴 라일락’ 인데 예쁜 별명이 붙은 꽃나무의 사연을 아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사실의 진위를 알 수 없었지만 진지한 그들의 설명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요약하면 정원수에 관심이 많았던 한국 근무 미국인이 귀국하면서 서울 근교에서 나무를 가지고 들어가 미국의 어느 한 대학에서 육종개량을 했다고 한다.
그 별명은 한국에서 같이 근무했던 마음씨 착한 한국인 여비서의 호칭이란다. 그 후 ‘미스 킴 라일락’은 다른 나무에 비해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원수가 되었다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종자의 중요성과 육종 개량의 경제적 효과를 간파 했던 것 같다. 제주도 구상나무가 미국에 들어가 개량되어 세계적인 크리스마스트리가 되었고 새끼 많이 낳기로 유명한 중국의 매산돈과 육질이 좋은 북경오리는 유럽에 건너가 양돈과 오리 육종의 기초 유전자를 제공하였다.
뉴질랜드에서는 야생 다래를 개량시켜 ‘키위’ 라는 이름으로 연간 3억 달라 이상을 수출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그동안 우리의 소중한 생물자원인 종자 보존에 너무나도 인색하였다.
단적인 사례가 1997년 말 IMF 금융위기 발생 후 우리나라에서 규모를 갖춘 종자회사들이 모두 외국회사에 팔려버렸고 당시 규모가 비교적 작았던 ‘농우종묘’ 만이 위기를 면해 살아남았다. 식물 육종의 전문가가 아닌 필자로서도 오래전 ‘미스 킴 라일락’을 통해서 각인된 종자의 중요성이 생각이 나서 우리종자 회사들의 매각이 너무 가슴 아팠고 당시 정부나 농민 조직인 농협에서도 그러한 사태를 수수방관 했던 것 같아서 몹시도 안타까웠다. 그 후 다시 경영상 어려움에 처한 농우 바이오(종묘)를 우리나라 농협이 인수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우리나라에서 종자에 대해 소홀히 취급받기는 동물도 마찬가지이다. 그나마 정부나 단체에서 보존과 육종 개량에 관심을 보여준 것이 있다면 이는 한우, 제주마, 진돗개, 연산 오골계 정도가 아닌가 싶다.
개별적인 노력도 극소수 있었는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경산의 삽살개’는 경북대학교 교수 몇 분에 의해서 그리고 우리 재래 닭을 활용한 토종닭 종자 보존과 보급은 3대에 걸친 가업으로 이어져 온 한협축산에 의해서 이루어져오고 있다.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으로 서양 여러 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다른 나라 토종 종자와 종축을 들여와 보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을 활용하여 시장 수요에 적합한 품종으로 육종 개발함으로써 세계시장을 장악해오고 있다.
종자 확보를 위한 노력은 세계적인 추세가 되어 더욱 치열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으며 이에 따른 국제적 조정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식물 신품종 특허권자의 권리보호를 위한 국제 식물 신품종 보호동맹(UPOV)에 이어서 금년도 10월12일 ‘나고야 의정서’가 발효 되었다.
유전자원에 대한 접근 및 그 이용에서 발생하는 이익 공유를 규정하는 ‘나고야 의정서’가 발효됨에 따라 야생종, 재래종, 고유종까지 모든 생물 유전자원의 활용에서 얻어진 이익의 배분은 물론 연구개발을 위한 표본 채취 마져도 사전에 사용목적을 승인 받아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치열한 종자전쟁이 시작됨에 따라 유전자원에 대한 주권의 주장과 국익의 확보를 위한 국가 간의 갈등이 점차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대적인 변화속에서 그동안 보존과 관리에 소홀해온 우리나라 동물 유전자원은 외국에 비해 매우 빈약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남아있는 유전자원의 보존과 활용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로 가축은 물론 야생동물에 이르기까지 각종 동물 유전자원의 보존, 관리, 평가와 보급이 좀 더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한 책임기관의 지정과 기술개발을 위한 예산이 증액 되어야 할 것이다. 그간 우리는 경제적 가치가 높지 않다는 이유로 재래 가축이나 토종동물들을 외면해 왔으나 앞으로는 이들의 보존가치는 갈수록 높아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멸종 단계에 있거나 멸종위기 상태에 놓인 칡소, 제주흑우, 재래닭, 재래돼지, 흑염소 등 재래가축은 물론 희귀동물들의 복원과 확보에 더욱 힘써야 하겠다.
이들은 유전자 보존가치 뿐만 아니라 활용에 따른 효용가치가 더욱 높아 질 수 있다.
세 번째는 이들 동물 유전자원의 활용가치 증진을 위해서는 육종개량과 생명공학적 기술은 물론 식품공학과 인문사회과학의 통합노력이 있어야 하겠다. 오래전에 세계 종축시장을 장악한 서양의 거대 육종회사들은 대부분 생산성을 목표로 개량된 품종으로서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다. 따라서 국내 종축 사업은 지역적 문화적 특성에 따른 종자의 개발로서 틈새시장을 선도하는 것이 유리하다.
외국의 예를 들어보면 생산성과 가격 면에서 경쟁력이 낮은 토종닭이 닭고기 시장의 40~50%를 차지하는 불란서와 대만을 들 수 있다.
이들의 성공적인 보급은 이지역의 전통이나 음식문화에 적합한 계육을 얻기 위한 토종닭의 육종개량과 함께 요리법 그리고 문화 행사까지 마케팅에 동원되고 인근 국가들의 수요도 유발 시켰다.
우리나라 삼계탕에 사용되는 닭들 즉 토종닭, 삼계 및 산란종 수평아리들도 일반 육용전용계인 브로일러에 비하여 증체가 느린 것을 잘 활용한 결과이다.
끝으로 동물유전자원인 재래종축의 보존, 관리는 정부는 물론 개별적인 노력에 의해서도 이루어지도록 재래가축이나 동물을 보존, 관리하는 개인에게는 특별 포상이나 인센티브가 제공되어 유전자원 보존과 관리주체의 다양화가 필요하다.
이처럼 가축 및 동물 유전자원인 재래종축의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보존과 관리 및 보급은 지속가능한 축산을 위해 더없이 중요한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