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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AI 바이러스 자유자재한 변이, 지능의 조화일까

  • 등록 2014.11.19 10:20:23

 

김재홍 서울대 교수(인수공통전염병학회장)

 

삼국지를 세 번 읽은 사람과는 상종하지 말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고 한다.
나도 조병화의 삼국지에서 이문열의 삼국지까지 세 번은 읽었으나 이렇게 빌빌거리는 걸 보면 우스개 소리임에 틀림없다.
중학교 때 처음 읽고, 제갈공명이 손에서 놓지 않는 부채 백우선인 양 허접한 부채를 손에 들고 폼을 잡고 다녔던 치기어린 추억이 생각난다.
제갈공명의 허허실실(虛虛實實) 전법은 흔히 조조나 사마의 중달이 애용하는 허즉실(虛則實), 실즉허(實則虛)의 전법과 대비된다.
그 유명한 적벽대전에서 대패한 조조가 도망가는 길목마다 공명이 매복을 배치해 두어 죽음으로 몰아넣는데, 공명은 도망갈 수 있는 여러 갈래 길 중에서 매복을 해 둔 길에는 일부러 희미한 연기를 피우고, 조조는 연기가 있는 곳이 군사가 있는 듯 하지만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 ‘실즉허’ 전법이라고 판단하고 오히려 그 길로 도망을 간다.
이와 같이 조조는 실은 실, 허는 허라는 공명의 ‘허허실실’ 전법에 걸핏하면 걸려든다. 공명의 수가 훨씬 높다는 뜻이다.
조조의 유명한 책사 사마의 중달 또한 20만 대군으로 촉나라의 양평관을 침공했을 때, 군사의 절대적 열세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공명은 아예 성을 비우고 성문을 무방비로 열어둔 채, 몇몇 장수들과 성마루에 앉아 한가히 거문고를 연주하였다.
이른 바, 공성계(空城計)이다. 중달은 무시무시한 계략이나 함정이 있을 것으로 알고 혼비백산하여 멀찌감치 후퇴함으로써 공명을 제거할 절호의 기회를 ‘허즉실’, ‘실즉허’의 관점에서 접근함으로써 무산시킨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이다.
이런 사실은 보는 관점의 차이에 따라 상황판단이 달라지며, 잘못된 상황판단은 대세를 그르치는 치명적 실수를 유발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가축질병 방역이나 축산물 안전에 대해서도 현재의 상황에 대한 판단은 대단히 중요하다 하겠다.
게다가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AIV)는 확산 상황에 따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이를 일으켜서 방역의 혼란을 가중시킨다.
AIV에는 144종의 혈청형 아형(subtype)이 있고, 국내 유입된 H5N1이나 올해 발생한 H5N8 바이러스는 그 중의 하나이다.
AIV 유전자는 다른 바이러스와 달리 한 선으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별개의 유전자 분절 8개로 구성되어 있고, 두 종류의 AIV가 한 개체에 동시감염되면 8개의 유전자끼리 섞여 이론적으로는 28(256)개의 서로 다른 유전자를 가진 바이러스가 출현할 수 있다.
그 중에서 환경에 적응하여 높게 증식하거나 닭과 같은 기존 숙주의 면역체계를 피해갈 수 있는 유전자 형태로 재조합이 이루어진 바이러스는 경쟁력이 절대적으로 우세하여 진화의 관점에서 자손을 번식시키고 대대적으로 확산되는 능력을 발휘하게 되며, 인류의 눈에 띄게 되면 이른바 ‘변이주’라고 불리게 된다.
병원체의 지능적 판단이나 의도된 설계에 의한 변이가 아니라 자연조건에 알맞게 변이된 개체가 우점하는 진화론적 입장에서 보는 해석이다. 동식물뿐만 아니라 미생물의 세계에서도 다윈의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자연선택설’이 적용되고 있다는 말이다. 자연 조건에서 이런 상황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런 진화는 인류의 대응을 매우 어렵게 하고 있다.
한편, 미생물의 진화나 변이는 인류가 파악하지 못한 기전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즉, 어떤 상황이나 조건에서의 변이 방향이 유전자 내에 이미 설정되어 있을 수도 있지만 인류가 아직 밝혀내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과거에는 비만 유전자 또는 마약이나 노름에 탐닉하게 하는 유전자가 있으리라고 상상도 못한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다 아는 사실이 되고 있지 않은가. 또한 성인 당뇨병, 뇌졸중, 고혈압 등 가족력이 관련된 질병도 가족끼리 그 발현요인을 공유하는 확률이 높기 때문에 다발할 수도 있지만, 특정 질병 유발 유전자가 환경에 따라 쉽게 발현되는 영향도 크다고 보아야 한다. 연구결과가 많아질수록 새로운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인류와 병원체 간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한 병원체의 변이나 신변종 질병의 출현은 비록 병원체가 의도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류와 병원체 간의 전쟁이라는 측면에서는 제갈공명과 사마의 중달의 전략적 사고를 닮았다.
이기고 싶은 존재들 간의 전쟁. 하지만 아직 인류는 새로운 병원체와의 싸움에서는 항상 뒤쫓아가는 입장이다. 환경 파괴와 무분별한 난개발은 밀림 속에서만 존재하던 새로운 병원체를 박쥐와 같은 각종 전염병 매개체를 통하여 인류의 주위로 내 보내는 역할을 하지만, 인류가 파악하고 있는 미생물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전혀 예측할 수 없다.
따라서 병원체가 만연할 수 없도록 환경을 통제하는 작업이 그만큼 중요하다.
일본은 매번 고병원성 AI 피해가 미미하고, 이것은 유명무실한 일본의 오리산업 규모와 일치하고 있다. 고병원성 AI 확산 방지를 위하여는 AI 바이러스의 온상이 되고 있는 육용오리 사육체계의 현대화는 물론, 오리 계열화사업 등 오리산업의 시급한 재정비가 방역 측면에서 필수적이며, 이것이 AI 조기종식을 위하여 조성해야 할 기본적 환경이라는 인식으로 접근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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