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논단>유럽산 치즈, 원조 표시만으로 안심할 수 있나?

  • 등록 2015.01.14 10:56:54

 

윤성식  교수(연세대학교)

 

원조(元祖)란 어떤 사물이나 물건의 최초 시작으로 인정되는 사물이나 물건을 일컫는 말이다. 만약 한국인들이 우리의 고유한 원조식품이 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김치와 막걸리”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에게 김치가 없는 한식을 생각할 수 없듯이 막걸리 또한 한국인의 애환을 달래주는 술로서 우리의 정서가 깊숙이 담겨있다고 하겠다. 이 두 식품은 모두 조상 대대로 이 땅에서 한국인들이 만들어 먹었던 토착식품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음식이 전통식품으로 자리 잡는 데는 장구한 세월과 여러 조건들이 부합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요즘 국내로 수입되는 식품 중에서 특별히 눈길을 끄는 원조 표시 유제품이 있다. 다름 아닌 이탈리아산 치즈들이다. 치즈는 동물의 유즙을 이용한 여러 유제품 중에서 가장 대중성이 높은 글로벌 식품이고, 대학의 유가공학 교재에서도 “유가공의 꽃”으로 기술될 정도로 그 가공기술에 관한 한 과학성 돋보이는 제품이다.
통상 치즈로 불리는 자연치즈는 유백색 액체인 동물의 유즙을 덩어리로 만든 다음 일정기간 발효과정을 거쳐 맛있는 식품으로 만드는 제조법이 타 유제품과 비교할 때 매우 독특하다. 어찌 보면 우리가 콩물에 간수를 쳐 두부를 만드는 작업과 비슷한 과정이다.
 치즈는 간수 대신 응고제로서 렌넷(rennet)을 사용하는데, 어린 포유동물의 위에 존재하는 단백질 분해효소가 바로 렌넷이다. 치즈는 마치 가을철에 대량 생산되는 배추를 이용하여 김장하듯이 남아도는 여분의 우유를 농축·발효시켜 만든 유제품으로서 우유를 저장하는 창고와 같은 기능이 있다. 통상 우유를 커다란 뱃(vat)이라 불리는 통 안에 주입한 다음 렌넷을 넣으면 우유가 응고(이것을 커드라 함)된다. 이 응고물에서 남아 있는 유청을 제거한 다음 식염을 처리하여 지하실이나 동굴 같은 서늘한 곳에서 발효시키면 다양한 종류의 자연치즈가 만들어진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치즈의 종류만 하더라도 2천여 종에 이른다니 각 지방마다 치즈를 만들어 먹었던 방법들이 다소 차이가 있었고 그러한 비법들이 후손들에게 전수되어 내려왔다고 생각된다. 치즈 종주국이라 주장하는 프랑스만 하더라도 600~1천여 종이 있다하니 참으로 놀랍지 아니한가. 그런데 요즘 이탈리아산 치즈들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그들은 유럽연합에서 인증한 PDO(Protected Designation of Origin)라는 꼬리표를 달고 세계 시장에서 판매 공세를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세상에 이탈리아산 치즈를 모방한 짝퉁들이 많아서 일까? 옛날부터 알프스산록에서 방목을 하던 사람들과 이탈리아인들은 원료유를 살균하지 않고 치즈를 제조하는 관행이 있었으니 비살균유로 만드는 자기네 전통적 제조방법을 우리에게 인정해 달란다. 그런데 이것이 국내법을 위반한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즉, ‘비살균유’를 사용한다는 제조 방법이 국내 식품공전의 규정을 위반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비살균 치즈제품이 우리 국민들에게 미생물학적으로 안전할까라는 의구심이 생긴다. 도대체 이탈리아산 자연치즈가 뭐 길래 그런 주장을 펼치는 걸까?
앞에서 언급한 이탈리아산 치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탈리아의 지정학적 특징과 기후 등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북쪽으로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와 접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산지와 구릉이 풍부한 반면 평야지대는 20%정도로 협소한 편이다. 우리와 반대로 겨울은 비가 잣고 상당히 온화한 반면, 여름에는 강수량은 적은 것이 특색이다. 산지와 구릉이 많아 옛날부터 산지를 이용하여 양을 방목하였고 자연스럽게 양젖(sheep milk)을 이용한 유제품들이 많았다. 그러므로 이탈리아산 치즈의 대부분은 원래 양젖을 이용한 비살균 치즈들이었다. 그들은 옛날부터 관행적으로 착유한 원유를 살균하지 않고 치즈를 만들어 먹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형이라서 마을이 외부와 고립되는 바람에 한 지방에서 고안된 제조방법이 타 지역의 방법들과 융합되지 못하고 전통방식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자연치즈의 이름 역시 그 지방 명칭이 붙여진 것이 많다.
캄파니아 지방 들소 젖을 이용한 모짜렐라 치즈는 모짜렐라 디 부팔라 캄파나(Mozzarella di Bufala Campana)라는 이름으로, 젖소 젖으로 만든 것은 피오르 디 라테(Fior di Latte, Fiordilatte)라는 이름으로 구분하고, 국내에 잘 알려진 파르메산, 프로볼론, 고르곤졸라, 아시아고 치즈 등은 모두 양젖을 이용하여 전통적으로 만들어 먹었던 지방 유제품들이다.
현행 국내 식품위생법에 자연치즈 원료유는 저온살균법과 그와 동등한 살균법으로 살균된 원유를 사용하도록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탈리아산 비살균 치즈가 국내에서 판매되려면 국내법이 허용하는 제조공정으로 바꾸거나 그것에 상응하는 안전한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탈리아산 비살균 치즈가 미생물학적으로 안전하다면 해당 수입관청에겐 번거로운 일이지만 제조국가 별로 개별인정 등의 방식으로 그 원조표시를 인증하는 방안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점은 치즈소비의 주체가 이탈리아인들이 아니고 한국인이기 때문에 원조표시보다는 객관적 안전성 확보가 관건이다. 당연히 이탈리아는 수출하는 비살균치즈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철저한 품질관리와 학계에서 인정될 수 있는 실험결과들을 제시해야 한다.
역지사지로 냄새가 진동하는 삭힌 홍어를 한국산 원조상품 표시를 부쳐 이탈리아 측에 수입을 요구한다면 과연 그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대중을 상대로 판매하는 가공식품은 뭐니 뭐니 해도 위생과 안전성 확보가 최우선이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