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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영국인 그리고 낙농산업 엿보기

  • 등록 2015.05.13 10:28:16

 

윤성식 교수(연세대 생명과학기술학부)

 

유럽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을 때다. 실험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 겸 주말이면 가끔 열차에 몸을 실었다. 벽안의 유럽인들은 내게 일본인이냐는 질문을 자주 던졌다. 내심 중국인이냐고 묻지 않을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면서도 잘사는 한국인이냐고 묻는 사람이 없어 그 이유가 궁금했다. 하루는 연구실 책상 앞에 죽치고 앉아서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을 영어로 써 놓고 영국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로 했다. 영어로 국가명 뒤에 접미사를 붙이는 국민이라는 단어를 써 보았다.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프랑스인, 스페인인, 네덜란드인, 덴마크인, 터키인, 포르투갈인, 베트남인, 호주인, 캐나다인, 미국인, 멕시코인, 인도인, 러시아인, 노르웨이인 등등… 그리고 근세 국가들을 당시 국력에 따라서 구분하였더니 흥미로운 관점이 포착되었다. 즉, 대영제국은 해외 강대국 백성들을 -sh/-ch를 붙여 표시하고, 자신들보다 약한 나라들은 -ese를, 그리고 자국의 식민지 국민이나 문명이 미개하다고 판단한 국가들은 어김없이 -an을 붙여서 사용한 것이 아닌가. 과거 영국인에게는 우리가 시쳇말로 별 볼 일 없는 나라의 국민이었을까? 필자의 엉뚱한 상상력이 세계 도처에 식민지를 건설한 영국인의 진짜 속내를 제대로 훔쳐봤는지 모르지만 말이다.
영국의 ‘우유 가격 폭락’ 기사를 보고 그들의 낙농현황이 궁금해 졌다. 영국으로부터 낙농산업을 배워간 사람들이 세계 최대의 낙농 강국으로 우뚝 선 호주와 뉴질랜드가 아니던가. 일단 2013년 낙농백서를 대충 읽었다. 영국의 낙농가는 1만4천500여 가구(holdings), 사육두수는 약 180만 두, 평균사육두수는 125두이다. 원유공급량은 년 간 대략 1천100만 톤 정도이니 우리보다 약 5배 큰 반면 농장의 원유 수취가격은 리터당 480원정도로 우리의 절반이 조금 안 된다. 아시다시피 영국에는 5개 대형 낙농업체가 있다. 3개의 협동조합 알라푸드, 유나이티드 데어리파머스, 퍼스트밀크, 그리고 주식회사 데어리크레스트, 뮐러-와이즈만 데어리 등이다. 낙농백서엔 동물복지를 최우선으로 기술하고 있다. 장기간 동물을 건강하고 생산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동물복지와 생산물 품질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낙농업계는 ‘빨간 트랙터(Red Tractor)’ 마크를 붙여주는 인증제를 실시 중이다. 국내 축산물 안전인증제인 해섭(HACCP) 표시와 유사한 제도로서 농장들은 18개월마다 검사를 받는다.
그 외에 원유가격의 결정구조가 필자의 눈길을 끌었다. 그들은 규제를 가급적 줄이되 낙농가, 낙농단체 그리고 우유 구매자들 간에 자유시장하에서 당사자 간 협상에 의해서 가격이 결정되도록 한다. 특별히 버터, 분유 등 생필품용 원유가 농가수취가격을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 제조용 원유가격이 타 제품용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2012년 낙농업계는 ‘자율실천규칙(Voluntary Code of Practice)’에 합의하였다. 수요자와 생산자간 분쟁을 막고 계약상 규제를 해소하기 위한 협약으로 현재 영국 우유 거래의 85%이상이 이 규칙을 따른다고 한다. 그 주요 내용을 잠깐 살펴보자. 생산농가는 어떠한 우유가격 변동에 대해 적어도 30일 전 통보해야 한다. 낙농가가 영업규모를 확대할 경우 해당 수요자가 늘어난 우유수취를 원하지 않으면 비배타적 계약이 가능하다. 수요자가 250호 이상 농가로부터 우유를 공급받을 때는 낙농가는 다양한 가격체계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과징금을 완납함으로써 수요자들과 계약을 조기 중단할 수 있다. 파산한 우유 수요자들부터는 자동 이탈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변동 유대의 소급 적용은 허용되지 아니함 등이다. 그 외에도 비조합체 수요자들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규정이 있다. 생산자들은 어떤 협정가격 변동, 가격조정 또는 그들의 영업에 영향을 미치는 계약상의 어떠한 변동에 대하여 3개월 통보를 하므로써 계약을 끝낼 수 있다. 어떠한 가격변동에 대하여 반드시 낙농가와 대화하거나 협의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낙농가들은 대형유통업체와 직접 원유공급 계약을 통하여 좀 비싼 유대를 받을 수는 있으나, 단 해당 업체가 요구하는 동물복지나 환경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요컨대 영국은 대부분이 협동조합체제이므로 우리와 낙농환경이 다르긴 하지만 생산자를 우선 보호하고 우유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상생의 정신이 여러 곳에 보였다.
한편, 유제품 소비 현황을 보니 우리와 비슷하게 원유의 70% 이상이 소비자용으로 포장, 판매된다. 대부분은 시유와 요구르트이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우유를 먹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평생을 좌우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학교우유 뿐만 아니라 유치원 급식에 관심이 많다. 유아원의 경우 5세 미만은 공짜로 우유를 준다. 학생들에게 액상 우유나 요구르트를 제공하는 EU 우유보조금계획이 활동하고 있으며, 2011/12 학년도 물량은 27,807톤이나 된다. 유럽연합의 우유 보조금 외에도 영국 정부로부터 추가적 지원을 받는다. 비만과 고열량 식품 섭취를 예방하기 위하여 다양한 저지방유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안티우유(anti-milk) 선동에 대한 대책과 우유홍보에도 극성스러울 정도로 열심이다. 영국낙농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우유마켓팅포럼’을 운영하면서 인기 있었던 희극영화 ‘make mine a million’을 패러디한 ‘make mine Milk)’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우유콧수염(milk mustache)을 홍보하는 유명 인사를 수시로 발굴하여 우유 명예의 전당에 헌액한다.
이처럼 많은 지원과 노력을 경주함에도 불구하고 세계 낙농시장의 전망은 어둡다. 1984년 제정된 유럽연합의 우유생산 쿼터제(할당제)는 유럽 낙농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일환으로 우여곡절 끝에 얼마 전 폐지되었다. 생산량 제한이 풀어진 만큼 공급량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을 비롯한 개도국의 우유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현실은 그 반대가 되고 있으니 어찌하랴. 중국에서 조차 우유 재고가 증가했고, 설상가상으로 러시아가 미국과 유럽산 식품의 수입을 금지하면서 유럽산 우유는 넘쳐날 정도다. 생수보다 싼 시유제품이 등장할 정도라니 보통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형국은 바다 건너 남의 나라 일로 구경할 일이 아니다. 다자간 FTA 체결로 국내 축산물 시장을 열어야 하는 현실에서 올해도 비싼 유대와 유제품 판매부진으로 국내 낙농업계의 시름이 깊어질 것이다. 우리는 이 난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정부는 물론 국내 낙농업계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섭고도 엄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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