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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발효유와 헬리코박테리아

  • 등록 2015.07.08 10:23:37

 

윤성식 교수(연세대 생명과학기술학부)

 

해외에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가 국내로 입국한 이후 지난 한 달여 동안 우리는 과거 경험하지 못했던 신종 바이러스가 병원을 중심으로 빠르게 전파되는 바람에 모든 사회활동이 거의 마비되는 진통을 겪었다. 그것도 국내 최고의 병원으로 손을 꼽는 대형 병원에서 주요한 감염이 발생하였으니 국민들의 충격과 걱정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이제 우리도 경제적으로 웬만큼 먹고살만한 국가로 성장하였으니 생물테러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국가 방역시스템을 새롭게 혁신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통상적으로 바이러스는 유전물질이 DNA 또는 RNA인가에 따라서 구분하기도 하지만, 숙주로서 고등생명체인 동식물을 이용하는가 아니면 하등생명체인 세균을 이용하는가에 따라서 구분하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 유산균과 같은 세균을 공격하는 바이러스를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라고 부른다. 독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박테리오파지라는 미생물은 필자가 오랫동안 연구주제로 삼았던 세균성 바이러스이기에 이번 사태를 접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첫째 궁금증은 왜 이런 바이러스들이 인간을 치명적으로 공격하는가라는 물음이다. 원래 바이러스는 숙주를 적당히 이용하여 자신의 자손을 번식시키는 도구로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숙주를 죽이면 결국 자신도 멸종하기 때문에 아주 교활한 바이러스들은 자신들의 숙주를 결코 죽이지 않는다. 숙주를 조금 불편하게 할 정도로 이용만 하면 그만이다.
둘째로 왜 한반도에서 해당 바이러스가 창궐하였는가라는 물음이다. 원래 바이러스의 소굴(reservoir)은 철새와 같은 조류로 알려져 있다. 조류들은 집단 서식하는 특징이 있고 빠르게 이동하기 때문에 약삭빠른 바이러스들이 후손을 전파하는 이상적인 숙주로 선택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신종 바이러스 창궐과 관련하여 필자가 언급하고 싶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 지나친 항균제, 항바이러스제의 남용이다. 각종 감염증 치료를 위해 또는 동·식물을 경제적으로 생산하기 위해서 엄청난 양의 항균제를 사용함으로써 생태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체를 위협하는 것이다. 이러한 항생물학제재의 오·남용은 우리와 공존하는 미생물의 입장에서 보면 멸종으로 내몰리는 긴급상황이다. 자칫하면 자체 종의 개체수가 줄어들다가 결국에는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 실제로 지구상에서 생물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과학저널 네이처는 지난해 “2200년이면 양서류의 41%, 조류의 13%, 포유류의 25%가 멸종할 것”이라며 “6천만 년 전에 비해 무려 1천배나 빠른 속도로 수많은 생물 종이 멸종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하기 전 포유류 한 종이 멸종하는데 평균 50만 년이 걸렸다. 하지만 인류가 등장한 이후 한 달에 한 종 꼴로 포유류가 멸종했다”(중앙선데이 2014년 12월 28일). 향후 500년 안에 지구상의 생물 종 중에서 50%가 사라질 것이란 어두운 전망도 나온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인간의 위에는 헬리코박터 파이로리(Heliocobacter pylori)라는 미생물이 서식한다. 위산이 끊임없이 분비되는 지독한 산성 환경 하에서 살아가는 미생물이 있으리라고 짐작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호주의 학자 로빈 워런 박사와 베리 마샬 박사는 무균상태로 믿었던 위내에서 서식하는 완만한 곡선 모양의 특이한 세균을 발견하였고, 더 나아가 이들이 위궤양, 위암의 원인이 된다고 주장하여 노벨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현재 헬리코박터는 상기의 질병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의학계가 인정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데리고 사는 헬리코박테리아를 관리하면서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면 곤란하다.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은 미생물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데, 어떤 미생물과 관계를 맺느냐는 숙주 종마다 개체마다 다르다.
생태학적 입장에서 이러한 세균들을 재검토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발효유 중에는 이들을 제어하는 항헬리코박터 물질을 첨가하여 위장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제품들이 시장에서 팔리고 있다. 헬리코박터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의 위가 그들이 생존하는 유일한 서식처이기 때문에 항헬리코박터 물질이 첨가된 발효유의 음용은 자신들의 멸종을 위한 시도로 간주된다. 인간을 숙주로 적당히 이용하여 자손을 번식시켜야 하는 그들에게는 보통 큰일이 아니다. 생존을 위해서 어쩌면 변이가 필연일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의 체내에서 그들을 제거하면 인간은 더 건강해질 수 있는가. 헬리코박터는 숙주인 인간에게 해롭기만 한 세균인가. 헬리코박터에 감염되지 않은 약 50% 인간은 감염자들보다 더 건강한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그런데 그 답들을 들어보면 속 시원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 어떤 환경의 압력이 가해질 때 미생물의 단순한 유전정보는 숙주의 유전 정보보다 훨씬 더 빠르고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다. 그러니 숙주 몸에 사는 어떤 미생물이 숙주 자손에게도 안정적으로 전달된다면, 유용한 유전 정보를 유산으로 물려준다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로젠버그 박사의 주장처럼 전생물체의 관점에서 생물학적 다양성을 바라보아야 한다.
요컨대, 학계에 보고된 내용을 간추리자면 대부분의 헬리코박터 파이로리 균종들은 인체에 무해하며 오히려 그들을 위장 내에 보유함으로써 건강상 유익하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 최근 연구를 통하여 세포독성결합유전자(cagA: cytotoxin-associated gene)을 가지고 있는 파이로리 변종이 문제가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찮은 미생물이라 하더라도 멸종 환경으로 몰리게 되면 메르스바이러스와 같은 무서운 변종이 출현하여 인간을 위협하는 것이 문제다. 밤잠을 설치게 하는 벼룩을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울 것인가. 발효유에 항헬리코박터 인자를 첨가하는 것이 올바른 일인지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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