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봉 중<본지 회장>
농협 개혁할수록 개혁대상이 되는 지독한 역설에 봉착
농협, 주인에게 돌려줘야 진정한 개혁
정부 일방통행 멈추고 경제지주를
전문화된 연합회로 개편할 때
정권마다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개혁과제가 있기 마련인데 그 중에서도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농협개혁이다. 그러나 농협개혁은 역대 정권마다 ‘조자룡 헌 칼 쓰듯’ 칼을 휘둘렀지만 성공한 사례가 없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농협을 필요로 하는 일선조합이나 농민조합원의 뜻과 관계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개혁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농협의 위상은 갈수록 정부의 ‘하부기관’으로 변질되고 이로 인해 농협은 주기적으로 개혁의 도마에 오르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개혁을 하면 할수록 개혁의 대상이 돼버리고 마는 이 지독한 역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세월을 거슬러 2000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정부는 피까지 흘린 축협의 반대를 물리치고 농·축협을 강제로 통합했다. IMF 관리체제에서 유행처럼 번진 통폐합으로 개혁을 마무리했지만 성공이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농축협통합은 축산부문을 경종농업위주의 농협 속에 묶어 둠으로써 1차산업 중 성장가능성이 가장 큰 축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축협인들이 농축협의 강제통합을 두고 “농구장에서 축구를 하고, 농구심판의 주관하에 축구경기를 하는 것”이라며 반발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농축협통합은 통합농협이란 ‘공룡’을 낳았고 이렇게 해서 생긴 거대농협은 2012년의 신경분리에 이어 경제사업부문마저 지주회사체제로의 전환을 앞두고 있다. 또 다른 개혁인 셈인데 중앙회의 경제사업마저 상법상의 지주회사로 완전 탈바꿈시킨다는 것이다. 상법의 적용대상이며 이윤추구가 목적인 주식회사더러 농협법 적용대상인 일선조합을 지원하라는 의미인데 이는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기 어려운 조합(組合)일 수밖에 없다. 지주회사위에 중앙회가 별도로 존재하는 옥상옥은 또 어쩔 것인가.
농협을 필요로 하는 회원조합과 농민조합원 누구도 원치 않는 일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이는 관료들의 복안은 대체 뭘까. 비록 과거 정부에서 이뤄진 일이지만 법에 그렇게 하기로 되어 있으니 법대로 할 수밖에 없다는 준법(遵法)의 발로인지 아니면 지주회사에 대한 특별한 소신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그도 아니라면 이제 와서 방향을 틀면 과거 자신들의 개혁추진을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믿는 자존심 차원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결론적으로 말해 농협의 수요자들이 어리둥절해 하는 작금의 농협개혁은 과거의 개혁이 그렇듯이 또 다른 개혁을 불러 농협을 끝없는 개혁의 윤회(輪廻) 속으로 빠져 들게 할 뿐이다.
정부가 농협개혁의 진정한 의지가 있다면 농협에 대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그것은 역사상 한 번도 명실상부한 주인이었던 적이 없는 일선조합과 농민조합원에게 농협을 돌려주는 것이지 정체불명의 지주회사를 만드는 게 아니다. 공룡과 같은 거대농협을 농업은 농업대로 축산은 축산대로 각각 전문성을 극대화한 연합회로 개편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개혁일 것이다. 왜 농협개혁을 해야 하는지, 무엇이 이름뿐 인 주인을 진정한 주인으로 만드는 것인지를 심사숙고하면 될 것이다. 정부는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위해 농협으로 하여금 수조원의 채권을 발행토록 하고 그 이자를 지원하고 있다. 이 정도의 의지와 능력이라면 연합회로의 개편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