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는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우리 민족이 먼 옛날부터 쌀 다음의 주식으로 이용해 온 것이 이들 가축의 고기와 부산물이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국인의 식단에서 이들을 제외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또 그래서도 안될 일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구조가 최근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기존 축종 중심의 축산업 한계를 공공연히 거론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특히 축산업 내에서의 문제제기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왜 이같은 논란이 발생하는 것이며 그렇다면 어떻게 하자는 것일까. 나름대로 분석하자면 가축사육의 산업화에 따른 인간식량의 가축사료 이용, 성인병을 의식한 육류위주 식단 개선, 무엇보다도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인식됨으로써 가해지는 각종 규제를 축산업 한계논란의 핵심으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하여는 특단의 묘안이 없다. 특히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로서는 더욱 선택의 폭이 제한적이다. 그간 우리 축산업의 근간을 이루어 온 축종들이 안고 있는 이같은 한계는 우리축산의 장래를 고려할 때 매우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다각적인 대안이 마련되고 있고, 또 섣불리 논란을 확산시키는 것도 옳지 않다. 그만큼 소, 돼지, 닭은 우리에게 있어서 여전히 중요한 단백질원이고, 80만 축산농가의 생존수단이기 때문이다. 다만 축산문제를 기존의 테두리 안에서만 풀어나가려 하는, 이로인해 오히려 한국축산의 생명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아닌가에 대해 한번쯤 사려 깊게 고민해 볼 시기가 되었다는 생각이다. 다시 말하자면 소위 주요축종의 변두리에서 어렵사리 성장해온 기타가축 분야의 가능성을 이제는 냉정하게 점검해 볼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이는 반드시 정부차원의 의지로 이루어져야 한다. 난공불락(難攻不落)으로 인식되는 기존 축산정책 범위에 기타가축 분야 스스로의 힘으로 뚫고 들어가 가능성을 인정받는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울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사슴을 사육하여 중요 한약재인 녹용을 생산하는 양록업은 최근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대표적 차세대 축산업이다. 사육농가수도 젖소, 양돈에 크게 뒤지지 않는 1만5천여호에 달하며, 사육두수는 25만마리에 이른다. 녹용과 자록을 통한 국내 생산액이 연간 5백95억원에 달하며, 녹용·녹각 수입량도 연 6백50억원어치나 된다. 소비시장 기준으로는 5천2백70억원에 달하는 만만치 않은 규모이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의 10%만이 녹용을 먹는 것을 감안할 때 잠재시장 규모는 기존 축종들을 훨씬 능가한다. 또 우리나라와 같이 한방문화권인 중국의 급격한 경제성장 또한 양록산업의 무한한 시장성을 보장해 주고 있다. 현재 국내 녹용생산량이 총 소비량의 20%만을 충족시키는 수준이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해 주는 것이다. 양록업의 가능성은 기존 주요 축종들이 안고 있는 한계와 비교할 때 더욱 설득력을 가진다. 사슴은 가축화가 덜 이루어진 생리구조를 가진 초식가축으로 주로 나뭇잎과 거친 산야초를 섭취한다. 따라서 최소한의 곡류사료만이 필요하며 국토의 67%에 달하는 산지활용으로 얼마든지 사육이 가능하다. 사슴에서 얻어지는 녹용은 의약품 원료 및 건강보조식품 원료로 사용된다. 기존 육류중심 축산과는 성격이 매우 다르며, 사슴고기는 고단백 저지방, 저콜레스테롤 육류로서 현대인들의 선호도와 일치한다. 환경오염 문제도 사슴에 있어서는 얼마든지 극복 가능한 부분으로 인정받고 있다. 따라서 양록업은 이제 축산업의 변두리에 더 이상 방치되어서는 안된다. 업계 스스로 축산업의 중심에 진입하도록 요구하기에는 기존 축산구도의 벽이 너무 두텁다. 정부도 양록업의 잠재성을 면밀히 검토해볼 때가 됐다. 한국축산의 장래는 보다 다양한 가능성을 토대로 과감한 변화를 꾀하는 가운데서 보장받을 수 있는 시점에 이르렀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