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은 음력 1월 1일로 새해의 첫머리며 ‘설날’은 새해의 첫날이다. 해가 바뀌면서 상서롭고 복된 한 해가 되기를 빌고, 조상이나 어른 또는 이웃끼리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의미에서 여러가지 행사와 놀이가 진행되며 몸과 마음을 차분하게 가지고 조심한다는 뜻이다. 설은 묵은 해에서 분리되어 새해에 통합되어가는 과정으로서, 새해에 통합 되기에는 익숙하지 못한 단계로 ‘설다’는 의미를 내재하고 있다. ■도소주 차례가 끝난 다음에 ‘음복’이라 하여 제사에 쓴 술이나 다른 음식을 제관들이 그 자리에서 나누어 먹는다. 이렇게 돌아가신 조상과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는 것은 훌륭한 조상의 덕을 이어받는 것이며, 평소에 흩어졌던 마음을 제사를 통해서 자손들이 다 한마음으로 통하게 했던 것이다. 특히 정월 차례 뒤에는 ‘도소주’를 마신다. 도소주는 술에 산초, 방풍, 백출, 밀감피, 육계피 등을 조합하여 만드는데, 이것을 마시면 일년 동안의 사기를 없애고 오래 산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풍속이다. 이 풍속에서 나중에는 보통의 술도 ‘도소주’라 하여 모두 둘러 앉아서 마셨는데, 특이한 것은 ‘송곳은 끝부터 들어 간다’고 하여 나이 어린 사람부터 마시기 시작하여 차차 나이가 많은 노인의 순서대로 마셨다. ■머리카락 사르기 정월 초하룻날 밤에 지방에 따라서는 섣달 그믐날 밤에 일년 동안 머리를 빗을 때에 빠진 머리카락을 빗접에 차곡차곡 모아 두었다가 불에 사르는 풍속이 있다. 현재는 남자는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깎고, 여자는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다듬으므로 이런 풍속이 있었는지 조차 모르고 있다. 그러나 지난 날에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은 머리카락 하나라도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는 생각과 이렇게 모아 두었던 머리를 사르면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전설에서 이렇게 했던 것이다. 옛날 여자들이 모두 머리를 빗을 때에는 얼레빗으로 긴 머리를 대강 빗고 참빗으로 곱게 빗는데 머리를 빗을 때 빠지는 머리털을 그때 그때 버리지 않고 모아둔다. 요즈음은 쪽진 머리를 한 할머니나 나이든 여인들이 머리를 빗을 때 빠지는 머리를 쉽게 쓰레기통에 버리는 경우도 있으나. 그것을 모았다가 헝겊으로 싸서 바늘꽂이를 만들기도 한다. ■세화 이날은 대문에 갑옷을 입고 한 손에 도끼를 들고 서 있는 장군의 모습을 그려서 붙였는데 이를 문배라고 부른다. 민가에서 붙이는 문배는 궁중에서 붙이는 문배에서 유래했으며, 궁중에서는 한 길이 넘는 문배를 대궐문에 붙였었다. 그림은 선동이 불로초를 짊어진 것이나, 태상로군을 그렸는데 이는 역신, 사신, 화난, 재앙 등 상서롭지 않은 일을 쫓으려는 목적에서 행하였던 것이다. 또 옛날 궁중용 그림을 그리는 도화서에서는 수성선녀와 직일신장의 그림을 그려 임금에세 드리고 관아에 나누어 주거나 선물로 주기도 했다. 그것으로 송축하는 뜻을 나타낸다. 또 금갑의 두 장군상을 그리는데, 길이가 한 길이 넘는다. 한 장군은 도끼를 들고 또 한 장군은 절을 들었는데, 이 그림을 모두 대궐문 양쪽에 붙인다. 또 붉은 도포와 검은 사모를 쓴 상을 그려 궁전의 겹대문에 붙이기도 한다. 또 종규가 귀신을 잡는 상을 그려 문에 붙인다. 또 귀신이 머리를 그려 문설주에 붙이기도 한다. ■ 세찬과 세주 설날 차례를 지내거나, 세배를 오는 사람을 대접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여러 가지 음식을 세찬이라 한다. 부유한 집에서는 맛있는 음식을 많이 들지만, 가난한 집에서는 그렇지도 못하다. 설날의 세찬 중에서 어느 집에서나 만드는 것은 ‘흰떡’이다. ‘흰떡’은 맵쌀 가루를 쪄서 안반에 올려 놓고 자루 달린 떡메로 무수리 처서 손으로 길고 둥글게 만드는데, 이것을 얄팍하게 돈같이 썰어 장국에다 넣고 쇠고기나 꿩고기를 넣고 끓인 다음 후춧가루를 친 것을 ‘떡국’이라 한다. 그러나 꿩고기는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닭을 많이 사용하는데, 그래서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여기서 생겼다. 끓이고 남은 흰떡은 썰어 물에 담가 두었다가 손님이 오면 떡국을 끓여 대접하는 것이 예의로 되어 있다. 이 떡국은 제사에도 쓰고 손님 접대에도 사용하므로 세찬에는 없어서는 안 될 음식이다. 국에 넣어 끓였으므로 ‘습면’이라고도 불렀다. 시장에서는 시절 음식으로 이것을 판다. 속담에 나이 먹는 것을 떡국을 몇 그릇째 먹었느냐고 부를 정도이다. :::즐겨했던 설날 민속놀이 ■ 투 호 삼국 시대 때부터 유행되었으며 이조 초기에는 궁중에서 투호를 한 기록이 보임. 여자들도 즐겨하던 놀이임. 투호는 본래 중국의 놀이로 당나라 때에 성행 되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놀이가 일찍부터 전해져 행해진 것은 당나라 때의 학자 이연수의 ‘북사’ 백제전에 투호·저포·농주와 악삭 등 잡회가 있다 하였고 ‘신당서’ 고구려전에도 고구려인은 바둑과 투호놀이를 좋아한다고 하였음을 보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주로 궁중과 조정의 고관들이 기로연 잔치 때에 여흥으로 많이 하였다. 이 놀이는 오늘날 민간에 전승되어 오지 않는 놀이 중 하나이다. ■ 윷놀이 온가족이 둘러앉아 윷판을 만들고 윷을 던지는 풍경처럼 정겨운 모습도 없다. 도가 나오면 풀이 죽어 있다가도 누가 모라도 던지면 환호성을 지르는 놀이. 남녀노소에 관계없이 누구나 즐기는 윷놀이는 전래놀이 중 가장 오래된 놀이로 그 기원에 대해 정설은 없다. 다만, 중국의 저포란 놀이가 윷놀이와 흡사하다는 연구가 있다. 또 다른 설은 윷놀이판의 도·개·걸·윷·모 등이 부여의 관직명인 마가·우가·저가·구가등과 유사한 점을 들어 삼국시대의 오랜 옛날을 기원으로 삼기도 한다. 또 윷의 도·개·걸·윷·모는 짐승의 이름으로 크기나 뛰는 거리를 나타낸다. 도는 돼지, 개는 개, 걸은 양, 윷은 소, 모는 말을 의미한다. 윷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장작윷 외에 밤윷, 콩윷, 팥윷 등이 있다. 밤윷은 남부지방에서 많이 하는 것으로 작은 밤알크기의 나무 조각을 넷 갖추어 이것들을 밥공기 등의 그릇에 담고 내젓다가 바닥에 던져 논다. 북부지방에서 많이 노는 콩윷, 팥윷은 큰 콩알이나 팥알을 반으로 쪼개 윷을 삼아 밤윷 처럼 논다. 던진 윷이 윷판을 벗어나면 낙이라하여 한칸도 갈 수 없고 다음 사람에게 기회가 넘어간다. 또한 평안도, 함경도에 분포되어 있는 놀이로 윷판과 말이 없이 노는 것이 특징이다. 산가지나 콩, 팥 등을 늘어놓고 윷을 던져 나온 수대로 산가지나 콩, 팥을 거두어 많이 차지하는 편이 이기는 놀이다. ■ 팽이 치기 겨울에 사내 아이들이 얼음판 위에서 많이 하는 놀이로 도래기치기라고도 한다. 팽이에는 아랫쪽은 뾰족하게 깎고 위는 평평하게 깎아 만든 보통 팽이 와 위 아래 모두 뾰족하게 깎아 만든 불팽이가 있다 얼음판이나 땅바닥에 손으로 팽이를 돌린 다음 가는 막대기에 헝겊 또는 삼실을달아 만든 팽이 채로 쳐서세게 돌리는데 여러 아이들이 저마다 팽이를 힘껏 친 다음 일제히 팽이채를 거두고 가장 오래 가는 팽이를 장원으로 뽑는다. 먼 옛날 도토리나 상수리처럼 둥글고 길쭉한 물체를 돌리기 시작한데서 유래됐을 것이라고도 하고, 또 다른 설은 당나라때 놀이가 시작되어 삼국시대때 우리 나라에 전해지고 다시 일본에 건너가서 ‘고마’라는 이름으로 성행, 발전하여 우리 나라에 역으로 전해졌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