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백5일 보정 1만2천kg 이상 고능력우 다수 목장과 살림집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곳이 있다. 특히 이 목장은 11년전 남편을 잃은 여성낙농가가 실의를 딛고 일어서 아들 둘에게 축산학을 공부시키고, 3代째 가업을 이어주고 있다. 경기도 여주군 가남면 연대리 42-3번지 장호원목장(대표 신재칠·50세)이 바로 그곳이다. 공원묘지가 목장에 바로 인접해 있어 목장 외부의 청결상태는 보통 수준이지만 목장내부는 ‘서울우유 우수목장’이라는 입간판이 말해 주듯이 청결한 편이다. 매주 수요일 우사 주위를 소독하는 것을 잊지 않아 악성질병은 없다. 특히 우사 바닥은 톱밥을 자주 갈아주어 젖소 체표에 우분이 별로 묻지 않고 우사 둘레는 오색 장미넝쿨과 갖가지 꽃들이 적당한 간격으로 심어져 있다. 우사와 살림집 사이는 5백여평에 달하는 정원이 있는데 잘 정돈된 잔디와 꽃 사과나무·소나무·계수나무가 아주 인상적이다. 조사료는 목장과 붙어 있는 밭 2만6천평에 옥수수와 후작으로 연맥을 심어 사일리지를 담그어 젖소에게 급여를 하는데 다소 부족하여 올해도 랩핑된 볏짚 30톤을 구입했다. 장호원목장은 신재칠 대표의 시아버지(故 최은영)가 1967년 젖소 1두를 입식하면서 시작하여 서울우유 조합원번호(928)는 빠른 편이다. 신재칠 대표는“당시에는 짠 우유를 우유통에 넣고 버스를 타고 이천읍에까지 가서 납유를 했었다”고 전했다. 신재칠대표는 이어 “그 후 사육두수는 늘고 특히 남편(故 최성도)이 목장을 인수하면서부터 젖소두수는 60두까지 증가했다”한다. 그러나 서울우유 감사일을 맡았던 故최성도씨는 1996년 서울 상봉동 소재 본 조합으로 감사를 보러 가는 도중 중부고속국도에서 짙은 안개로 인하여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여 고인이 되었다. 당시 신재칠대표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지금은 고인이 된 시아버지와 남편의 뜻을 저버리지 않고 낙농에 전념했다. 현재 기르는 젖소 1백40두. 이 가운데 착유우 58두가 생산하는 원유는 하루 평균 1천8백kg. 지난 3월 검정성적 결과,‘장호원 202호(1만2천9백76kg·2산)’ ‘장호원 170호(1만2천6백64kg·3산)’ ‘장호원 1백33호(1만2천5백7kg·4산)’ ‘장호원 1백83호(1만2천2백61kg·2산)’ ‘장호원 2백호(1만2천63kg·2산)’등 3백5일 보정 1만2천kg을 상회하는 고능력우가 즐비하다. 목장우군 검정성적은 두당평균 9천4백69kg이다. 이처럼 고능력우가 많은데도 평균성적이 다소 낮은 것은 3백5일 보정 4천7백51kg인‘장호원 2백19호’등 일부 개체의 능력이 아주 낮은데 기인된다. 이들 젖소는 황우석교수팀이 추진한 E·T사업의 일환으로 태어난 개체로 신재칠 대표는 “능력이 아주 낮더라도 처분하는 것이 안쓰러워 사육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호원목장의 일부 개체는 체세포수가 많지만 유량이 1만1천kg을 상회하여 도태를 하지 못하는 관계로 2등급을 받는 것이 단점이다. 따라서 신재칠대표는 “내주부터 체세포수를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동시에 젖소를 강건하게 하는데 도움을 주는 ‘진-메치’를 급여하겠다”고 말했다. “아들 둘<(충희·26세·연암축산대학졸), 익희(24세·한경대 동물자원학과 3년재학)>이 모두 일찍부터 代물림을 희망하고 축산학을 공부하고 있는 효자들”이라면서 환하게 웃는 신재칠 대표는 지난 3월부터 서울우유 대의원직을 맡는 등 지역 낙농발전에도 한몫을 하고 있다. 신재칠 대표를 아는 주위사람들은 그를 “일곱 번 쓰러져도 여덟 번째 일어나는 7전8기의 오뚝이 같고 억척스러운 여장부”라고 입을 모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