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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피지 못한 농촌사랑, 우리 가슴서 피어날 것”

■참사 농식품부 직원 ‘오열의 영결식’

[축산신문 김영란 기자]
 
- 교통사고로 참변을 당한 허훈 서기관이 근무한 지역개발과 사무실에서 남편의 영정을 보며 아내가 오열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 지역개발과 직원 7명이 ‘과의 날’ 지방 현장농정에 나섰다가 교통사고로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어이없는 일이 생겨 주위를 오열하게 만들었다. 지난달 26, 27일 1박2일 일정으로 충남 태안 ‘별주부마을’을 찾은 이들은 26일 밤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기 때문이다.

‘과의 날’ 행사로 지방 현장농정 갔다 교통사고 참변
과 여성직원 3인 모두 사고차량 동승…안타까움 더 해
합동분양소 애도 물결…장 장관 “큰뜻 영원히 기릴 것”

◆별주부 마을 왜 갔나
농식품부에 따르면 26일 지역개발과 직원들이 충남 태안의 ‘별주부마을"을 찾은 것은 수년 전부터 해오던 ‘과의 날" 행사의 일환이었다. 소속기관이 많다 보니 서로 업무 특성을 이해하고 직원끼리 얼굴도 익힌다는 차원에서 해오던 행사다.
여기에 부서의 업무상 관련된 현장을 방문하는 일정을 묶어 국립식물검역원 평택출장소를 들르고서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 별주부권역을 찾았다가 변을 당했다.
지역개발과 직원 16명 가운데 사무실을 지키기 위해 남은 3명을 뺀 13명이 현장 방문에 나섰다. 이들은 저녁 식사 뒤 차량 3대에 나눠 타고 숙소로 돌아오던 중 차량 1대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이다. 먼저 도착한 직원들은 다른 차량이 도착하지 않고 연락도 두절되자 마을 주민들과 함께 일행을 찾아나섰으나 싸늘한 주검으로 변한 동료를 발견했다.
사고 현장은 ‘자라바위"와 ‘별주부바위", ‘별주부 기념탑" 등이 있는 곳으로 이 마을의 이름이 유래된 곳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사고 차량이 운행한 길은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아 마을 주민들만 이용하는 지름길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참변을 당한 김영준(47) 지역개발과장은 장태평 장관의 비서관 출신으로 장관의 신임이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숨진 황은정(37) 실무관은 6살, 3살짜리 아들과 딸을 두고 있으며, 남편인 이기풍 주무관은 축산정책과에서 근무하고 있다. 배선자(40) 실무관 역시 채 돌도 지나지 않은 딸의 엄마였다. 한희경(38) 사무관도 각각 7살, 1살배기 딸이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지역개발과에는 여직원이 모두 3명인데 공교롭게도 모두 사고 차량에 탑승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합동 분향소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정운찬 국무총리 등 각계에서 고인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조화가 배달됐다. 또 정운찬 국무총리와 윤진식 청와대 정책실장, 임태희 노동부 장관, 최상철 지역발전위원회 위원장, 남양호 청와대 농림수산식품 비서관 등이 빈소를 찾았다.

◆영결식·노제…애도 속 엄수
교통사고로 숨진 김영준 지역개발과장 등 농림수산식품부 직원 7명에 대한 합동 영결식이 지난달 29일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엄수됐다.
장 장관은 영결사에서 “농어민을 위해, 농어촌을 위해 떠난 길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라며 “농어촌에 대한 사랑을 채 피우지 못한 님들의 꿈은 이제 우리의 마음 속에서 피어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님들의 몸은 우리 곁을 떠나가지만, 그래서 다시 볼 수 없지만, 님들이 꿈꾸던 미래와 큰 뜻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할 것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고인들과 절친했던 동료 직원들이 추도사와 헌화, 발인을 거쳐 마무리됐다.
고인들의 영정과 시신은 정부과천청사로 운구돼 노제가 진행됐다. 이들의 영정은 생전에 일했던 지역개발과 사무실을 마지막으로 들른 뒤 각자 장지로 옮겨졌다.
유가족들은 오랫동안 고인들이 평소 일하던 책상에서 떠나지 못한 채 오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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