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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소비자, 아는 것이 힘인지 모르는 게 약인지

  • 등록 2017.10.12 14:07:53


윤여임  대표(조란목장)


아흔이 내일모레인 친정엄마의 냉장고 안엔 늘 유통기한이 지난 여러가지 음료들이 들어있다.
아예 유통기한이란 개념이 없다. 맛만 변하지 않았으면 된다. 없어서 못 먹었던 결핍의 시대를 온몸으로 겪어낸 그 분의 ‘먹어도 안 죽는다’는 당당한 선언 앞에서는 할 말이 없다.
아이를 키우는 삼십대 중반인 두 딸은 다니러 와서, 냉장고에 하루라도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이 있으면 냉장고 주인 허락도 받지 않고 가차 없이 버린다.
베이버부머인 나는 유통기한과 나름대로 정한 소비기한을 탄력적으로 적용한다. 가족카톡방에 살충제 계란코드를 올리며 주의하라는 아이들의 당부에도 확인 없이 그냥 남은 계란을 몰래(?)먹어 버렸다.
이럴 땐 ‘모르는 게 약’이다. 가족일지라도 이렇게 동일한 위험에 대한 지각은 다르며 그 위험을 받아들이는 기준 또한 다르다. 즉 ‘위험수용(risk acceptance)’은 개인마다 다르다.
마트에서 만난 한 중년 여성이 계란 앞에 서서 이걸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 혼잣말을 하며 한숨을 쉬더니, 지금까지도 먹고 살았는데 죽기야 하겠냐며 계란 한판을 집어 들었다. ‘죽기야 하겠냐’라는 못미덥지만 치명적인 것은 아닐 것이라는 일말의 안심이 위험수용의 이유다.
그게 보통 사람들의 심경일 것이다. 계란만이 아니다. 알고는 먹을 게 없다는 자조 섞인 말들이 난무하고 있으니 어쩌면 좋은가. 식품안전관련 사고만 터지면 그 수습을 한다며 뒷북치느라 바쁜 정부, 그럴 줄 알았다며 정부의 무능을 질책하고 자극적인 기사를 써대느라 바쁜 언론. 그 틈에서 소비자는 과학적인 지식 없이, 제한 된 정보처리 능력에 기대어 나름대로 안심의 기준을 정하여 먹고살아야 하는 처지다.
울리히 벡(U.Beck)은 산업화와 근대화가 가져온 물질적 풍요이면에 각종 위험성을 안게 된 현대를 위험사회(1997)로 불렀다.
이때의 위험이란 예외적인 것이 아닌 일상적 위험이란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원전사고, 대기오염, 수질오염 등 현대화의 산물인 위험들이 다 식품위험과 직결되는 위험의 시대, 위험을 다루고 국민과 소통하는 일은 국가의 중요한 책무가 되었지만 정치, 사회적인 상황에 따라 해법은 다르고 언론 또한 예외는 아니다.
계란사태를 겪으며 새삼 느낀 것은 언론이 정보전달자인지 불안 혹은 가격상승의 원인 제공자인지 분간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계란이 부족하다는 뉴스가 나오면 영락없이 계란 값이 춤추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위험분석 연구자인 폴 슬로빅(P.Slovic)은 위험이 통제가능한지, 얼마나 익숙한지, 두려운지, 자발적인지, 위험 수용의 편익은 어느 정도인지 등 여러 요인에 따라 위험수용의 정도가 정해진다고 보았다.
객관적인 위험정도가 동일하더라도 그 불안감의 크기는 각자 위험을 해석하여 받아들이는 정도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계란에 대한 반응도 제각각이다. 안 먹으면 그만이지만, 계란을 아주 안 먹고 살기는 말처럼 쉽지 않은데 문제가 있다.
AI가 창궐해 가금관련 식품산업이 뿌리 채 흔들릴 때 치킨 먹고 조류독감 걸리면 1억원을 보상한다는 광고 덕분에, 이후로 되풀이 되는 파동에도 소비자들은 가금육 섭취로는 AI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이 해법이 효과적이었던 것은 가금육 섭취시 AI의 인체 발병 여부가 즉각적으로 드러난다는 점에서였다. 그러나 살충제계란의 경우, 만성적으로 진행 될 인체의 부정적 요소를 예단할 수 없어 사람들은 더욱 불안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십여 년 전, 읍내에 사는 그녀는 어린 자녀들과 집에서 병아리 부화실험을 하기 위해 B사의 유정란을 산 적이 있다. 계란 10개에서 병아리 9마리가 나온 놀라운 경험을 한 뒤로 그녀는 B사가 종종 콩 원산지를 속였다는 기사가 나와도 무조건 지지를 보냈던 것이 기억난다.
아는 건 힘이다. 모든 식품이 이렇게 믿음직스러우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놀랍다는 말은 가당치 않다. 웃돈을 얹어주고 산 유정란이니 병아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데 우린 모두 그 사실을 놀라워하고 감탄을 해야 할 정도로 식품에 대한 신뢰는 허술하다. 이것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위험커뮤니케이션의 과제이기도 하다.
식품을 앞에 놓고 ‘모르는 게 약’이라는 체념이 들지 않도록 하는 데는, 신뢰를 기반으로 한 생산자, 정부, 소비자 간의 끊임없는 위험의 소통과 합의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여기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불신의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큰지 우리는 자주 경험한다.
소비자는 너무 싼 식품을 원하지 말자. 너무 싼 식품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산자는 인류를 먹여 살린다는 자부심을 갖자. 생명을 담보하는 식품이(과학적으로) 안전해야 함은 조건이 필요 없는 정언명령인 것을 어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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