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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남성우 박사의 산티아고 순례길<23>


(전 농협대학교 총장)


거대 산맥 큰 봉우리 넘고 넘어 해발 1천210m 고지에

‘우보천리’ 자세로 정상 향해 매진…우리 삶도 같은 이치


▶ 해발 1천200m 산맥을 넘다.(6윌 12일, 21일차) 

당초 이틀 전 일기 예보는 오늘 비가 온다고 해서 걱정을 했으나 아침에 비는 오지 않았다. 대신 안개가 짙게 끼었다. 오늘이 가장 어려운 산행이라 각오를 단단히 하고 출발했다. 한 시간정도 가니 본격적으로 산길로 접어들었다. 보레스(Borres) 마을을 지나 20분정도를 더 가니 두 갈래 길이 나왔다. 왼쪽은 원래의 프리미티브(Primitive) 코스, 오른쪽은 오스피탈레스(Hospitales) 코스라는 이정표가 알아서 선택하란다.

파악한 정보에 의하면 원래코스는 중도에 마을도 있고 카페도 있으나 오스피탈레스 코스는 1천200고지를 넘을 때까지 편의시설이 아무것도 없는 완전 산중 코스라고 했다. 그래서 물, 점심, 비상식품 등을 준비했다. 어제 우리가 잔 마을이 해발 400m 쯤 되므로 오늘은 고도 800m를 더 올라채야 하는 루트였다. 우리는 어렵다는 오스피탈레스 코스를 택해서 발길을 재촉했다.

작은 마을의 성소에 여성 순례자들이 기도를 하고 있었다. 우리도 배낭을 벗고 경건한 마음으로 오늘의 산행이 무사히 끝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사고 기도했다. 기도 후 배낭을 메고 출발, 얼마 안가니 이내 오르막이다. 이제 시작인가 보다. 한발 한발 힘을 주어 천천히 내디뎠다. 이럴 때는 우보(牛步)가 제격이다. 

이번 순례길을 걸으며 터득한 것 중 하나는 먼 길을 가려면 서둘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느려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걸음이 어느새 나를 정상으로 올려놓는 걸 경험했다. 나보다 빨리 가는 자를 따라잡으려 하다가는 지쳐서 중도에 주저앉게 된다. 체력보다 과하게 서둘다 보면 빨리 지치기 때문이다. 그의 걸음은 빠른 것이고 나의 걸음은 느린 것 일 뿐 나중에 보면 끝이 같았다. 먼저 앞서 간 사람이나 나중 뒤에 간 사람이나 알베르게에서 다시 만나게 되더라는 말이다. 실제로 빨리 걷는 사람과 천천히 걷는 사람이 산티아고 광장에 도착하는 날짜는 불과 이틀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살아가는 것 또한 이와 같지 아니할까. 그의 사는 방법과 나의 사는 방법이 다를 뿐, 모두 같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을, 또 그 끝은 똑 같이 죽음인 것을, 왜 우리는 그렇게 서둘고 있는가. 

해발 900m쯤 갔을 때 구름이 짙게 끼기 시작하더니 바람이 세차다. 이 높은 초원에서 소들이 방목을 하고 있었다. 암소와 송아지들이 보이고 가끔 황소도 보였다. 소들은 마음껏 풀을 뜯어 먹어서인지 살이 잘 쪄 있었다. 

산지초지에 방목하다 보니 자연교미를 위해서 황소를 암소무리에 함께 넣어 준 것 같다. 자연대로 방목하니 짝짓기도 할 테고 소답게 사는 거다. 우권(牛權)이 확보된 나라다. 우리 한우는 거의 전부 인공수정을 하는데 여기서는 자연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렇듯 사육환경에 따라 사양관리나 번식방법이 달라진다. 여기서는 비육우는 방목을 하므로 초지에 소가 먹을 물만 주면 된다. 실제로 방목지에는 물을 실은 물탱크나 웅덩이가 반드시 준비돼 있다. 그러므로 이 높은 산까지 물탱크를 옮길 수 있는 길을 내거나 웅덩이를 파서 빗물을 가두어 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계속 오르막에 점점 더 경사가 급해진다. 올라갈수록 바람 또한 더욱 거세진다. 이미 여기 기온은 아래 마을 보다 훨씬 떨어진 듯, 땀을 흘리며 올라가는데도 춥다. 손이 시리다. 목장갑이라도 끼고 온 게 여간 잘 한 게 아니다. 마지막 막바지 오르막은 정말 가파랐다. 게다가 뾰족한 돌들이 잔뜩 깔려 있는 길이라서 힘이 많이 들었다. 찬바람 영향인지 콧물도 흘렀다. 도저히 추워서 견딜 수 없었던 나는 판초우의를 꺼내서 뒤집어썼다. 바람을 막아주니 훨씬 좋았다. 정상에는 돌로 지은 목동들의 대피소가 있었다. 아마도 방목지에 왔다가 기상이 악화되면 대피하기 위해서 만든 조그만 돌담움막이라고 하는 게 맞다. 아닌 게 아니라 이 길은 여름이 아니면 넘기 어려운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큰 산을 넘으니 또 다른 봉우리가 기다리고 있다. 하늘이 가깝게 보여서 이제 다 왔나 했더니 또 봉우리가 앞을 막는다.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한 다음 정상에 올라 뒤를 바라보니 거대한 산맥과 봉우리 몇 개를 돌고 돌아 올라온 거였다. 겨우 그걸 오는데 그렇게도 힘들었단 말인가. 뒤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인생 또한 그런 것을.

오늘 산행은 단순하게 해발 1천200m고지인 큰 산 하나를 넘는 게 아니라, 거대한 산맥의 큰 봉우리들을 연이어서 넘는 길이었다. 최고봉 1천210m고지에 올라보니 거대한 산을 오르고 또 올라온 거였다. 

그렇게 6km정도를 더 가서야 마을이 나오고 카페도 있었다. 6시에 출발한지 꼭 7시간 반 만에 만나는 카페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커피 한잔 하면서 논의하기를 우리는 4km 정도 더 가서 머물기로 했다. 슈퍼에서 식료품을 사서 배낭에 넣고 다시 출발, 한 시간을 더 걸어서 당도한 곳이 라메사(La Mesa), 해발 900m가 되는 고지대다. 한국 강원도 정선군의 태백산 고개마을 정도 되는 산골 지역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인지 기온이 낮고 바람이 차다. 전처럼 밖에 있을 수가 없다.

공립 알베르게에 등록 1인당 5유로. 여기서 한국인 부부를 만났다. 60대 중반 쯤으로 보이는데 이번이 세 번째란다. 대단한 분들이다. 우리는 쌀과 닭다리를 함께 넣고 백숙을 만들어서 나누어 먹었다. 맛이 일품이다. 영국 잉글랜드에서 왔다는 젊은 학생들이 활달하다. 일곱 명이 단체로 왔는데 너무 재미있단다. 자기들끼리 당번을 정했는지 둘이는 요리를 하느라 정신없이 바쁘다. 추운 것은 아랑 곳 없이 밖에 놓인 야외식탁에서 저녁을 먹는다. 젊음이 좋다. 걱정했던 오늘산행을 잘 마쳤다. 그 어려운 코스를 28km나 걷고 총 600km를 넘어선 날이었다. 모두에게 감사드리며 이제 눈을 붙여야겠다.


축산신문, CHUKSA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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