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영 이사 <한국사료협회>
2006년 이후 급등하기 시작한 국제 곡물가격은 과거 삼십 여 년 동안 우리가 경험했던 곡물가격과는 전혀 다른 패턴을 보여 주고 있다. 과거 30여 년 동안 국제곡물시장이 농산물 잉여시대를 보여 오며 4~5년 주기로 기상이변과 곡물생산국들의 흉작을 통해 곡가의 등락을 보여 왔던데 반해 2006년부터 시작된 국제곡물가격의 급등은 전혀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 국제 곡물가격의 급등이 주로 선진 농업국의 흉작으로 인한 생산 감소로 공급측면의 변화에서 비롯되어졌던데 반하여 2006년부터 시작된 곡가 폭등의 주요인은 곡물수요의 변화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불과 십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곡물이나 유지작물을 이용한 실험적 대체에너지 정도로만 여겨지며 관심 밖에 놓여있던 에탄올과 바이오 디젤 등 바이오 연료가 세계적인 유가상승과 미국의 바이오연료 사용 장려 정책에 힘입어 세계 곡물을 먹어 치우는 가장 큰 괴물 같은 존재로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미국 에탄올용 옥수수 소비량은 수출량의 두 배
2006년 이후 세계 유가가 고유가를 지속해오며 수익성이 높아진 미국의 에탄올 공장들이 주별마다 정부 보조금을 받아가며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바이오연료 생산을 위한 에탄올용 옥수수 사용량도 급증하였다. 미산 옥수수 가격은 불과 1~2년 사이에 두 배 이상 치솟았고, 미국의 옥수수 가격의 급등은 타국의 옥수수 가격은 물론 별로 상관도 없어 보이던 다른 곡물의 동반상승까지 초래하였다. 또한 21세기에 들어 급속한 경제성장에 힘입어 동물성 단백질 수요가 급증하던 중국의 곡물 수요까지 증가하면서 곡물수요는 갈수록 커지며 곡가 폭등의 주요인이 되었다.
그 결과 오래 동안 곡물 및 유지작물 재고로 고민하던 선진 농업국들은 일거에 곡물재고 부담을 해소하기에 이르렀고, 미국의 경우 전체 옥수수 생산량의 30% 이상인 1억 톤 이상을 에탄올 생산을 위한 연료용으로 소비하기에 이르렀으며 이는 미국의 전체 옥수수 수출량의 두 배에 달하는 물량이었다.
그 후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다소 진정되는가 싶었던 국제 곡물가격은 지난 해 다시 미국의 기상이변으로 옥수수 생산량이 감소하자 옥수수 재고량은 역사적 최저 수준인 5% 이하까지 떨어졌고, 옥수수 가격은 투기적인 수요까지 가세하면서 역사적 고점을 갱신하면서 다른 곡물과 유지작물 가격까지 끌어 올리며 곡가 폭등을 선도하기에 이르렀다.
◆곡가 폭등은 경작지 확대와 삼림 훼손으로 이어져
최근 들어 국제 곡물 가격이 크게 상승하면서 미국 내 농민들은 옥수수와 콩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그 동안 휴경지로 되어 있던 한계 농경지까지 경작을 늘려 나가고 있고, 남미를 비롯한 동남아 지역의 경작농민들도 곡물 생산을 위해 삼림지역의 개간과 개발을 통해 경작지를 늘려 나가고 있는 추세이다.
이 때문에 과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청정 바이오 연료로 생각되던 에탄올과 바이오 디젤 은 이제 지구상의 식량난을 가중시키고, 지구의 삼림을 황폐화시키는 주범으로까지 지목되기에 이르렀다.
이미 유엔 FAO에서는 여러 차례 바이오 연료의 이용이 세계 식량난의 주요인이라고 지적하였고, 세계적인 환경단체인 월드워치의 래스터 부라운 박사도 이 같은 바이오연료의 이용을 계속 확대해 나갈 경우 인류는 식량과 환경재앙을 피할 수 없음을 여러 차례 경고하였다.
◆한국의 양축농민에겐 사료 값 부담 가중
이 같은 부작용으로 지금까지 청정연료처럼 포장돼 왔던 바이오연료가 온실가스 배출량의 감축여부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 내 축산 농민들이 사료곡물 가격폭등으로 인한 축산을 포기하는 사태에 까지 이르자 미국 양축농민단체들은 미국 농무성(USDA)과 미국 환경보호청(EPA)에 신재생연료 의무보급제도(RFS)에 대해 재고해 줄 것을 건의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미국의 곡물 수입국인 멕시코, 베네주엘라 등 남미 국가들도 미국의 신재생 연료 의무보급제도에 대해 강하게 비난하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