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육종 고문 유병현 박사
지난 9월초 일산 킨텍스에서 축산물 브랜드 페스티벌이 열렸을 때 일이다. 돼지고기 브랜드 부스를 찾은 한 방문객으로 부터 ‘지방이 많지 않은 돼지고기가 좋은데 어떤 등급을 골라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지만 쉽게 답변하기 어려웠다. 일단 1+등급보다 등지방이 얇으면 1등급이 되지만, 1등급에는 1+등급보다 등지방이 더 두꺼운 도체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 이하 등급에서 도체의 등지방두께가 균일하지 못한 것은 대부분 현행 등급제도의 영향이다.
현행 돼지도체 등급제도는 어떤 도체가 우수한지 판정해서 소비자에게 최고등급인 1+등급을 구매하도록 권장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도체등급을 결정하는 요인은 우열이 분명한 것만은 아니다. 등급을 결정하는 요인은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 째는 어느 경우에나 만족시켜야 하는 요인으로서 위생, 조직감, 비정상 육색, PSE, 이상육 등이 이에 해당한다. 둘째는 등지방두께나 육색처럼 일정 범위 내에서는 소비자의 선호가 다를 수 있는 요인이다. 마지막으로, 도체중의 경우 주로 도축, 가공 및 유통 과정에서 요구되는 요인이다.
그러므로 도체등급규정을 소비자의 선택에 초점을 맞춰 설정할 경우 등지방두께와 육색에 있어서는 소비자 선호에 따라 어떤 고기가 좋고, 어떤 고기가 좋지 않은지 다를 수 있는 만큼 등급을 부여해주는 대신 도체의 규격을 알려줌으로써 소비자 스스로 원하는 도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어떨까. 이는 곧 다양한 소비자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1+, 1 및 2 등급 대신 등지방두께에 따라 도체를 분류해주는 방법이다. 등지방두께에 따라 10mm, 15mm, 20mm 등으로 소비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규격을 나타내면 소비자는 자신이 원하는 규격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육색을 적색 (R), 분홍색 (P) 등으로 구분해서 선택이 가능케 할 수도 있다. 물론 이 경우엔 ‘등급’이란 용어 대신 ‘규격’을 사용하는 게 적합할 것이다. 예를 들어, 20R, 15P, 20P 등으로 표시하는 방법이다. 당연히 기본적인 조건 (첫 번째 요인)을 만족시킨 도체만 이러한 규격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온라인 거래가 활성화되면 이와 같은 ‘규격’은 매장에서 고기를 보지 않고 구매하는 소비자에게 보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호주의 AUSMEAT처럼 온라인 경매가 도입된다면 그 기초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소비자가 이해하기 쉬운 규격을 나타냄으로써, 소비자가 스스로 원하는 규격을 선택할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면 소비자의 품질 불만을 줄이고 합리적인 소비를 돕는 효과도 기대할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