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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내가 걸은 60 성상(星霜)의 목장길><75> 수정란 이식 연구 중단 조정과 연구원의 사기

  • 등록 2016.07.22 10:43:19
[축산신문 기자]

 

김 강 식 고문((사)한국육류유통수출협회)

 

수정란 이식 대신 냉동정액 수입 실용화 연구로 전환
연구원 속속 떠나…내 결정에 불만 있지 않았나 반성

 

본인이 1989년 8월 농림부 축산국장에서 3차 관서인 축산시험장 장장으로 부임시 축산정책 수행상 잘못 등으로 문책인사로 좌천된 것 아니냐는 동정하는 일부 동료 공무원 및 업계 인사도 있었다.
축산국장을 떠나게 된 사유는 내가 걸은 60성상의 목장길 ‘축산국장을 떠난 사연’에서  자세히 밝힌 바 있다. 또 ‘축산시험장장으로 금의환향’이란 기사로 나의 진실한 심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축산국장 재임시 축산정책을 수행하면서 우리 축산의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몸소 체험적으로 느꼈었다. 그 때 체험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이 축산시험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음속 깊이 장관님께 고마움을 느끼면서 축산시험장장에 부임했고, 1980년도 축산시험연구 방향을 전 연구직 공무원과 같이 방향을 새로 정리, 정립하면서 세계 선진 축산학계의 최첨단 연구 과제인 소 수정란 채취 및 이식기술에 대해 연구했다.
축산시험장의 가축 번식 연구실에서도 산양, 토끼를 실험동물로 한 다배란 수정란 채취를 가장 중요한 연구로 실시하고 있었다.
본인은 이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원과 같이 연구방향을 토의하면서 전 세계 선진 축산국가의 가축 번식학을 전공하는 대학 및 국가 축산연구소에서는 최신 기계장비를 갖추고, 막대한 예산을 투입, 1회에 10~20이상의 수정란을 채취하고 있으나 수정란 이식 정착율은 20~30%에 그칠 정도였다. 이런 내용의 농업 및 축산 생산의 학술 논문이 국제학회지에 발표되고 있었다. 이는 선진 외국 연구기관이 실용화 하였을 때 개발된 기술을 도입, 실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이들과 경쟁적으로 연구하는 것보다 막대한 외화를 들여 종돈을 도입하는 문제에 대해 방향을 돌렸다.
종돈을 들여오는 것보다 차라리 외국의 우량 원원종돈의 냉동 정액을 도입, 종돈개량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냉동정액의 제조 및 해동 수정시키는 방향으로 연구를 전환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불만은 있었지만 나의 제안 의견에는 아무런 반대하는 의견 없이 국내 종돈 개량에 필요한 돼지 냉동정액 제조 및 외국 냉동 정액 도입, 수정하는 방향으로 연구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신원집 연구관은 전북대학교로, 김희석 연구관은 제주대학교로 떠난 걸 보니, 본인이 수정란 이식 연구를 중지하라는 권유에 불만을 가지고 시험장을 떠나지 않았나 하는 반성도 한 바 있다.
본인이 수정란 이식기술이 실용화 되었을 때 이 기술을 도입하자고 기초연구를 일시 중지 조치한 2년 후 건국대학교 축산대학 정 모 교수가 충남 안면도에 있는 두산목장의 샤로레 육우에 수정란을 이식하는 실험과 강원도 평창에 있는 파스퇴르 유업의 목장에서 자기 목장의 수의사를 일본 북해도 대학의 번식학 연구실의 가내고(金子) 교수실에 1년간 수정란 이식 연수를 시켰다. 그 후 수정란 이식 송아지가 곧 분만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본인은 좀 당황했다.
실용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지만 본인이 수정란 이식 연구를 중단시켜 그 여력을 돼지 냉동 정액 수입 실용화 연구로 전환시켰으나 사립대학, 더군다나 민간 목장에서 수정란 이식 성공이란 언론보도가 될 때 국립축산시험장은 물론 이 사업을 일시 중지시킨 입장에서 처신이 난처하게 되고 말았다.
그래서 본인은 늦었지만 축산시험장이 수정란이식 송아지 생산을 하겠다는 각오로 당시 미 사료곡물협회 박영인 박사를 찾아가 1980년초부터 중국이 공산주의 체제에서 일부 개방 사회주의 체제로 정책 전환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비약적인 경제발전이 될 것이고, 당시 중국의 젖소 사육두수는 3천여두에 불과, 우유 소비가 늘어나면 젖소 도입이 불가피 할 것으로 예견되어 젖소 도입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젖소 도입시 호주, 뉴질랜드가 수송거리상 유리 할 것으로 판단했다.
미국은 한국의 한우암소가 100만두 이상 있으니 한국의 번식 암소에 젖소 수정란을 이식해서 분만한 3~6개월의 젖소 육성우를 중국에 수출하면 한국의 한우 사육농가에도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고, 중국을 상대로 한 젖소 수출경쟁력도 가질 수 있으니, 미국의 수정란 이식 연구 회사 소개를 박영인 회장에 부탁했다. 소개 받은 사람은 캔터키주에 있는 IGT 수정란 이식 회사 사장과 수정란 이식 사업 담당 수의사. 그가 1982년 9월경에 내한 시험장을 방문하였기에 한우에 젖소 수정란 이식 생산 송아지를 6개월령까지 육성, 중국 수출가능성 사업을 상대로 의견을 교환했다. 그 내용은 축산시험장이 보유하고 있는 한우 성빈우 80두를 제공하겠다고 구두 약속한 것이다.
국한 수정란 회사는 1개월후에 수정란 연구 수의사 2명이 축산시험장에 성빈우(비임신) 80두 중 20두를 선정, 발정 동기화를 위한 호르몬 주사 처리하고 귀국했다.
주사 처리 후 21일경 발정이 올 것을 예상한 일자에 맞추어 수정란을 지참한 이식 전문 수의사 3명이 시험장을 방문, 발정된 한우 성빈우에 미국에서 가져온 젖소 육우 앵거스 수정란 1개 및 2개를 헤어포드 등 다양한 수정란 이식 시술을 마쳤다. 그리고 10개월 후인 1983년 8월에 드디어 모 대학 및 파스퇴르 목장의 수정란 이식사업보다 빠른 국내에서 첫 번째의 수정란 이식 송아지가 생산되어 KBS에서는 한우에서 젖소송아지가 분만되는 현장을 촬영보도 한 바 있다.
그 이후 본인은 캔터키주에 있는 수정란 이식 연구소에 오성종 연구사(현 축산과학원장)를 수정란 기술체험 습득을 위하여 IGT연구소 부담으로 1년간 파견함으로써 오늘의 우리나라 수정란 이식 사업을 주도적으로 실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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