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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내가 걸은 60 성상(星霜)의 목장길><85> 축산시험장 체제 개편으로 연구 분위기 조성

  • 등록 2016.08.31 10:42:53
[축산신문 기자]

 

김 강 식 고문((사)한국육류유통수출협회)

 

예산·인력, 타 기관보다 월등히 확대…재임기간 성과
연구직 단일호봉제 건의…연구 연속성 확보

 

1979년 8월 축산시험장장으로 부임한 본인은 농림수산부의 축산시책과 농촌진흥청의 농가 지도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기술 개발 연구 방향과 목표를 전 연구직과 협의, 연구과제를 설정했다.
장장인 본인이 서울에서 출퇴근 하다 보니 업무에 집중력이 떨어져 중앙 농사시험장 화산 지장 사무실로 사용하던 건물의 일부를 장장 숙소로 보수하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이곳에서 기거하면서, 전 직원 퇴근 후에도 본인 스스로가 각 과에서 추진하는 시험연구 중간 진행사항 및 그 결과를 분석했다.
그 분석 결과를 토대로 앞으로의 시험연구 방향을 수정 보완하면서 연구 인력 증원 및 연구 예산 증액을 위하여 총무처 경제기획원 예산 당국에 열심히 찾아 다녔다.
1979년 7억2천900만원에 불과한 예산을 1981년 11억2천600만원(154%) 농촌진흥청 차장으로 전출하던 1988년까지 연평균 45%의 연구 예산을 확보 지원하고, 1979년 연구직 43명, 기능직 19명을 1988년까지 연구직 65명, 기능직 84명 총 149명(229%)으로 증원, 농촌진흥청의 타 시험장 연구소 보다 월등히 예산과 연구 인력을 확대하여 연구 분위기를 활성화 시키는데 총력을 다했다.
우선 연구 예산은 1962~1967년 농촌진흥청 시험국 연구조정과 기획계장 당시 경제기획원 예산국 투자예산과 총무처 조직관리과 담당과장 사무관이 20여년 후인 1980년대에 와서 장관 및 국장으로 승진되어 있었으며, 농림수산부 축산국장 시절 물가 안정을 위해 너무나 고생하고 있는 것을 봐온 그들이 축산시험장장인 본인을 도와줬다.
한 가지 일화는 1982년 7월경 1983년 예산 확보를 위하여 경제기획원 예산국에 사업설명을 하고, 오후 2시경 경제기획원 현관을 나오면서 당시 서석준 경제기획원 차관님과 다른 차관님, 예산실장이 들어오다가 본인을 보고 김 국장 오랜만이라 하시면서 차 한잔 같이 하자고 해 차 마시고 나오면서 예산실장님께서 예산을 얼마 지원해 주면 되겠냐고 하기에 6천만원 증액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랬더니 농촌진흥청 기획관리관실 이종석 과장에게 예산 1억원을 추가로 주겠으니 그 중 축산시험장 예산에 6천만원을 추가하라고 하는 전화통화 내용을 듣고 농촌진흥청에 들어가니까 몇 억을 요구하지 겨우 6천만원을 요구했냐고 핀잔을 들은 바 있다.
총무처의 연구직 공무원 증원에 대해서는 별도 로비하지는 않았으나 농촌진흥청 TO 조정시 배려를 받았으며, 전국 연구공무원 직급 및 처우 개선에 본인이 역할을 한 사연을 밝히고자 한다.
본인은 광산(光山) 김씨로 1981년도 전국 종친회 신년하례식에 참석했다. 그 당시 총무처 김용휘 장관님이 참석하게 되었으며, 동 모임 도중에 감사원의 김영수 과장이 강식 족장(종친회 부회장)은 농림수산부 축산국장으로 있다가 3차 관서인 축산시험장에 쫒겨가 있다고 청탁성 소개를 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본인이 좌천된 것이 아니고 축산국장 자리는 외도이고 축산시험장은 내 본연의 자리로 돌아간 것이니 염려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라고 이야기하던 중, 장관님이 나에게 맥주잔을 권하는 모습을 사진 찍은 것을 후에 총무처에서 나에게 전해 줬다. 당시 총무처를 방문할 기회가 있어 그 사진을 손관호 기획관리실장과 황병인 조직관리국장 앞에 내보이니까 어떤 사이냐고 묻기에 본인을 무시하지 말라고 농담으로 넘기고 말았다.
연초 종친회 신년하례식에서 김용휘 총무처 장관님께 다음과 같은 사항을 건의한 바 있다.
내용인 즉, 농촌진흥청은 아무 힘과 권한도 없이 오로지 농촌, 농민을 위한 농사 시험 연구로서 식량을 자급 할 수 있는 통일벼 등 농업기술 개발에 묵묵히 연구만 하는 기관이다. 연초에 대통령께서 각 부처 연두 순시가 끝나면 총무처 장관님이 농촌진흥청을 방문하셔서 격려 한 번하여 주시면 사기가 올라갈 수 있을꺼 같다고 건의 드렸다.
그 후 손모 기획관리실장에게 지시하여 3월초에 장관님이 농촌진흥청을 내방하겠으며, 시찰 코스에 따라 축산시험장을 방문하셨기에 두 가지 건의사항을 드렸다.
하나는, 연구직 공무원은 자기 전공 분야에만 종사하다가 승진자리가 나면 전공분야 관계없이 보직을 바꾸어 이동하여 연구의 연속성이 단절되니 연구사급에서 사무관급 연구관 승진시험 합격 후 보직을 받도록 하고, 그 이후 서기관, 부이사관, 이사관급 연구직으로 자동승진 함으로써 자기 전공을 바꾸는 일이 없도록 연구 공무원 단일 호봉 제도를 건의했다.
그 건의를 받아들여 1981년 12월 18일 연구직 공무원의 계급 구분과 임용 등의 관한 규정(대통령령 제10644호)으로 총무처가 각 부처의 시험장 연구소의 단일 호봉제 연구직 공무원 승진제도를 제정하여 주셨다.
5급직(기사)으로 시험장 연구소에 채용 5~10년 연구사로 근무하다가 4급(사무관급) 연구관 자리가 비면 연구사끼리 경쟁시험 후 연구관(4급)으로 일단 승급하면 연차에 따라 3급, 2급, 1급까지 자동 승진되어 60년 정년 퇴임시에는 대부분이 1급 공무원(차관보급) 봉급액으로 퇴직하게 되니 연금 370~400만원을 받도록 제도화한 것이다.
당시 연구 공무원 단일 호봉제를 마련하여주신 당시 총무처 김용휘 장관님과 관계관에게 전 연구 공무원 퇴임자를 대표해서 감사를 드린다. 다만 4급 연구직 승급 후 나태한 퇴직 연구관도 동일한 혜택을 받고 있다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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