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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남성우 박사의 ‘相生畜産’ / 48. 미국산 육우 480두 ‘보잉 747기 공수작전’

도입육우 입식 신청 쇄도…기간 단축 위해 항공편 수송
소들 스트레스 극심…무모한 도전 수행에 `진땀’

  • 등록 2018.11.09 14:39:52

[축산신문 기자]


(전 농협대학교 총장)


▶ 한여름 美 공항서 김포까지…“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1983년 8월 27일, 한여름의 미국 중부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St. Louis)공항 화물터미널. 태극마크가 선명한 대한항공 보잉747 화물전세기와 육우를 실은 10여 대의 소 운송 전용트럭이 그 옆에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활주로가 복사열을 뿜어 대는 터미널 주위의 온도는 무려 104F(40℃). 미주리 주 평원지역의 도입육우 검수목장에서 트럭에 실려 두 시간 동안 운송되어 온 육우 480마리가 차 안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다. 이 소들을 한국으로 운송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는 엔지니어들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다. 도입육우를 항공기에 선적할 당시의 공항 화물터미널 풍경이다.

▶ 1982년부터 정부는 농가소득 증대를 목적으로 외국산 육우를 수입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농가들은 소 사육 열기에 편승해 도입육우 입식을 신청했고, 너도나도 빨리 입식해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도입육우를 배정받으면 한 마리에 수십만 원이 남느니 해서 농가의 신청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외국에서 소를 검수해서 선박으로 운송하고, 국내에서 검역을 마치는 데는 많은 기간이 걸렸다. 그러다 보니 소를 더 빨리 들여오기 위해서 수송기간을 단축하기 위한 방법으로 선박보다 빠른 항공기 운송을 병행하게 되었다. 생우(生牛: 살아있는 소)를 항공기로 운송하는 일은 한 마리에 수억 원씩 가는 종모우(種牡牛: 씨수소)의 경우라면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한다. 그러나 일반 가축의 경우에는 운송비가 적게 드는 선박 운송수단을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 어쨌든 국내의 다급한 사정에 의해서 육우의 항공기 운송이 결정되었고, 이날 마침내 검수를 마친 소가 세인트 루이스공항까지 실려 온 것이다. 넓은 화물칸에 소를 풀어서 실으면 이착륙 시에 한 곳으로 쏠려 항공기의 안전에 문제가 있고 소가 압사하는 사고도 날 수 있기 때문에, 한 칸에 7~8마리씩 들어가는 나무우리(wood pen)를 특별히 제조해서 이용했다. 소를 트럭으로부터 나무우리에 분승시켜서 하나씩 리프트로 들어 올려 항공기에 적재했다. 안쪽에서부터 2층으로 적재해야만 480마리를 실을 수 있었고, 2층의 우리와 항공기 천장 사이에는 아주 좁은 공간만 남았다. 장장 4시간에 걸쳐 소를 싣는 작업을 마쳤을 때는 해가 뉘엿뉘엿 서쪽에 넘어가고 있었다. 검수원인 나는 소들의 고온스트레스(heat stress)가 크게 걱정이 되어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일일이 체크를 하면서 무더위와 싸워야 했다. 소는 원래 추위에는 강하지만 더위에는 약한 가축이다. 그러므로 고온스트레스는 기력을 약화시키고 면역력을 떨어뜨림으로 주의해야 한다.  

▶ 항공기 내에 소를 적재하고 나니, 가장자리에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정도의 공간과 천장 위 1.5m도 안 되는 공간이 전부였다. 소의 건강유지와 스트레스 감소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환기와 온도다. 밀폐된 공간에서 신선한 공기가 공급되지 않으면 소들의 트림과 분뇨에서 발생하는 가스로 인해 소들의 호흡이 곤란해지고 호흡기질환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환기가 매우 중요하다. 또 생우 자체가 발산하는 열로 인해 실온이 상승하면 고온스트레스로 시달리게 된다. 나는 기장과 탑승 책임자에게 항공기내 공기조절시스템을 확실히 점검해줄 것을 요청했다. 소 우리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소는 앉지도 못하고 비행 내내 서서 가야만 했다. 더구나 항공기라서 물조차 공급이 안 되니 소들이 과연 안전하게 한국까지 도착할 수 있을는지 너무 걱정이 됐다. 그래서 사전에 공급자와 대한항공 측에 소를 실은 화물기를 타고 소와 함께 귀국하기로 준비를 해 놓은 터였다. 이륙 후 쏠림현상으로 혹시 쓰러진 소가 있으면 바로 일으켜 세워야만 다른 소에 밟히지 않을 거란 생각으로 전기자극봉(electric shock stick)도 준비했다.

▶ 비행기가 이륙하고 고도를 잡은 뒤, 나는 기장의 허락을 받고 서둘러 소가 실린 화물칸으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각 우리마다 소가 한두 마리씩 주저앉았고, 옆의 소가 넘어진 소의 배를 딛고 있는 경우도 발견되었다. 모든 우리를 하나하나 점검하며 주저앉은 소를 일으켜 세우고 나니 한 시간 반 이상이 걸렸다. 그 뒤로도 나는 3시간 간격으로 소들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서 화물칸으로 내려갔다. 그럴 때마다 땀은 비 오듯 흘러내렸다. 이렇게 흘린 땀과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소들이 무사히 한국 땅을 밟을 수 있기만을 간절히 기원했다. 

▶ 1년 전 나는 호주산 육우를 배에 싣고 태평양을 건너온 경험이 있다. 이번에는 항공기로 반대편의 태평양을 건너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선박보다는 훨씬 짧은 여정이었지만 그 이상으로 기진맥진해 있었다. 그 먼 거리를 계속 서서 온 소들에 대한 걱정이 잠시도 떠나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누군가 비행기를 타고 소와 함께 여행한 소감이 어떠냐고 물었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살아있는 소를 이렇게 운송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이건 너무 잔인한 일이다.”라고. 나는 앞으로 이렇게 비과학적이고 무모한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검수귀국보고서에서 미국 공항에서의 상황, 비행기 이륙 후의 상황, 그리고 비행 중의 상황 등을 빠짐없이 기술했다. 물론 이에 대한 시정을 건의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나와 함께 태평양을 건넌 소들이 농가에 입식돼서 잘 자라주기를 간절하게 기원했던 기억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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