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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남성우 박사의 산티아고 순례길<4>

불편함 감수하고 옛 거리 그대로 보존
스페인 인들의 세심한 노력…‘관광 대국’ 원동력

  • 등록 2020.09.16 10:09:02


▶ 빗속에 걷다. ( 5월 24일, 2일차 )

어제와 같이 5시 반에 기상해서 출발준비를 마쳤는데 비가 온다. 그러나 비가 온다고 걷지 않을 수 없는 일. 비옷을 입고 판초우의를 배낭 위까지 덮어쓰고 출발했다. 오늘도 산을 하나 넘어야하는 코스이지만 정상이 해발 약 300m 정도니까 어제보다는 덜 힘들 것 같다.  

바닷가 초지를 끼고 있는 목장지대다. 비육우와 양들이 풀을 뜯고 있다. 바람은 세게 불지만 다행히 비가 그친다. 어느 작은 마을을 지나는데 주민들이 마련한 순례자를 위한 쉼터가 있다. 대나무로 만든 긴 소파를 놓아주고 쉬고 가란다. 마른 목을 축이라고 물도 준비해 놓았다. 아름다운 마음씨다.  

산등성이를 타고 가는 코스라 그리 힘들지 않아서 3시간을 쉬지 않고 걸었다. 다다른 곳은 오리오(Orio)라는 작은 마을인데, 마을 초입 언덕 꼭대기에 우뚝 서 있는 세인트 마르틴(St. Martin)성당은 작지만 아주 오래된 성당으로 순례자들이 꼭 들르는 곳이다. 오리오는 좁은 해협 안쪽에 있는 아주 아담한 바닷가 마을이다. 달콤하기로 이름난 ‘오레오’라는 쿠키가 생각났다. 배가 출출했던 게다. 빗속을 걸었으므로 몸도 녹일 겸 커피를 한잔 하려고 카페에 들어갔다. 아메리카노 커피 두 잔과 케익 두 개 모두 8 유로, 먹는 내용과 장소로 볼 때 싸다. 구수한 커피에 맛있는 케익이다. 이번 여행에서 확실히 알게 된 것은 커피와 케익은 서로 맛의 상승효과를 가져오는 찰떡궁합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곳 카페에서는 커피와 함께 반드시 케익을 함께 파는가 보다. 

오리오는 바닷가 포구마을인데 반대편으로 다리를 건너서 조금 걸어 올라가니 식당이 하나 나왔다. 거리 식당에서 둘이 10유로를 주고 스페인 음식인 ‘또르띠야’로 점심을 때웠다. 지나는 주민이 알려 준대로 거리를 따라 계속 걸어가니 해변과 해수욕장이 있는 작은 해변도시 싸라우츠(Zarautz)에 당도했다. 휴양지답게 아담하고 말끔하고 아름답다. 바닷가라서 해변 휴양지가 연달아 나온다. 

스페인은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와 비슷한 OECD 회원국인데 사는 수준은 서유럽 선진국에 온 느낌이다. 스페인 땅을 처음 밟아본 내게 비쳐진 첫 인상이다. 도로 등 인프라와 도시의 짜임새, 주택의 규모나 모습, 농촌지역의 초지나 농촌주택 등 내 눈에 비친 모습들이 중서유럽을 빼 닮았다. 사람들은 친절하고 순박하고 여유가 있어  보인다. 옛날 스페인제국의 후예다운 품격을 이어받았나 보다. 

친구의 경험담이 흥미롭다. 전번 왔을 때 시골길을 걷다가 나이든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조그만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게 못 미더워서 다시 확인하려 했더니 물건을 안 팔겠다고 하더란다. 자존심을 건드렸던 게다.

싸라우츠해변 식당에서 스테이크를 시켰다. 하나만 시켰더니 둘이 하나냐고 반문한다. 대신 커피는 두 잔을 시켰다. 그런데 스테이크를 하나만 시키길 참 잘 했다. 쇠고기가 고무를 씹는 것 같이 질겨서 먹기가 힘들었다. 아무리 휴양지라고 해도 너무했다. 뜨내기손님들이 많아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건 우리하고 닮았다. 식사 후 백사장을 가로질러 이동했는데 모래 위를 걷는 게 힘들었다. 

백사장 끝에서 부터는 해변을 따라 블록을 깐 보도와 나무판으로 만든 데크로 이어진 산책로를 만들어 놨는데 여기는 걷기가 너무 좋았다. 그 길이가 무려 2km나 됐다. 데크가 끝나는 곳에서 게따리아(Guetaria)라는 오래된 포구마을에 닿았다. 숙소를 예약하지 않아서 걱정을 했는데 교차로를 건너자마자 호스텔 간판을 보고 반가워서 들어가니 마침 침대가 있단다. 한 방에 침대가 10개가 있는 방인데 우리는 창가 쪽으로 2층 침대 하나를 배정받았다. 1인당 20유로, 호스텔이라 좀 비싸다. 관광지라서 그렇기도 하다. 

중세의 오래된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해변휴양지 게따리아의 거리는 아담하고 고풍스럽다. 마을 가운데 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그 마을에서 가장 큰 건축물이다. 스페인은 어디를 가든 올드타운 중앙에는 대개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옛 거리를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그들의 노력에 경탄한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옛것을 지킨다는 그 정신이 바로 오늘날 스페인을 연간 8천3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세계 제 2위의 관광대국으로 만든 원동력이 아닐까.    

호스텔 매니저는 바스크사람인데 매우 쾌활하고 친절했다. 자연히 바스크(Basque) 자치지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바스크지방은 스페인의 서북쪽에 대서양을 끼고 프랑스와 인접해 있는 지역으로 인구는 약 150만 명, 스페인 전체 인구 4천700만 명에 비하면 인구비중이 낮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철강과 기계산업이 발달해 있고, 지방 특산물인 차콜리(Txakoli)와인의 주산지로서 연간 2~300만 병의 와인을 생산한다고 한다. 소득이 스페인에서 가장 높으며 스페인어와는 전혀 다른 자신들만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학교에서 스페인어 외에 바스크어를 가르친단다. 바스크지방 다음으로 소득이 높은 곳은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Catalonia)지방이라고 했다.   

순례길 여행을 매년 온다는 대만 여성 까미노 매니아를 만나 여럿이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매년 산티아고 까미노에 오는 게 제일 좋다고 하면서, 우리에게 내일 가는 코스 중 해안코스를 택할 것을 강력 추천했다. 자기가 본 자연경관 중에 최고란다. 판타스틱(fantastic)하고 그로테스크(grotesque)하다고 표현했다. 그냥 뷰티풀이나 원더풀이 아닌 훨씬 강도가 높은 찬사들이다. 다만 길이 오르막과 내리막이 심해서 힘들단다. 우리는 그녀의 추천대로 해변길(coastal route)을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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