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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남성우 박사의 산티아고 순례길<7>

계곡 따라 내리막길 걷다 게르니카에서 여장 풀어

  • 등록 2020.10.14 10:10:45


(전 농협대학교 총장)


전쟁의 참상 그린 피카소 걸작, 모작으로나마 감상


▶ 게르니카에서 피카소를 만나다. ( 5월 27일, 5일차)

지난 밤 묵은 데바(Deba)는 비스케이만으로 흘러가는 데바강(Deba River)을 끼고 발달한 작은 포구 마을로 예로부터 순례자들이 많이 거쳐 가는 곳이다. 강에는 오래된 다리가 하나 있는데 보수공사를 위해서 공사 중이었다. 우리 같으면 헐고 새로 지을 것 같은데 이들은 옛 다리를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서 보수공사를 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오래된 유적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자세다. 

강가에 있는 데바의 알베르게는 원래 수도원이었는데 더 이상 수도원의 기능을 못하게 되자 순례자들의 숙소로 바꾼 공공 알베르게로서 도네이션으로 운영된다고 했다. 재미있는 것은 접수대에 ‘이곳은 여러분들의 의무적인 기부금(mandatory donation)으로 운영됩니다.’라고 써놓은 알림장이 묘한 뉘앙스를 풍긴다. 기부금이 의무라고? 기부금을 내지 않는 사람도 있으니 그렇게 써놓은 게 아닐까.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둘이 합해서 20유로를 기부했다.

아침식사는 6시부터 제공됐다. 토스트, 버터, 잼, 우유, 커피가 전부다. 계란도 과일도 없다. 이곳 사람들의 아침은 간단하다. 커피한잔에 빵 한 덩이가 전부다. 적게 먹는다. 그러나 순례자에게는 아침을 든든하게 먹는 게 최고다. 나는 토스트에 버터를 많이 바르고 다른 한쪽에는 딸기잼을 잔뜩 발라서 포개서 먹었다. ‘토스트는 두 쪽 씩’이라고 주의를 주는 봉사자의 말을 못 들은 체하고 네 쪽을 먹었다. 어제 도중에 배가 고팠었기 때문이다.

첫날 빼고는 나흘째 비가 온다. 강한 비는 아니고 오락가락하는 가는 비, 때로는 이슬비라서 많이 젖는 건 아니지만 비옷을 입고 판초우의로 배낭까지 덮어씌우고 걸어야 하므로 힘이 더 든다. 산속 목장지대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걷는 길인데 어제보다는 훨씬 수월하다. 오늘 코스는 처음에 고도 300m 정도까지 올라간 이후 골짜기를 오르내리는 전체적으로는 내리막길이었다. 길을 따라 계곡이 이어지고 물이 흐르는 곳이 많아서 꼭 무주 구천동계곡을 따라 걷는 기분이 났다. 스페인에 무주구천동 계곡이라, 멋지지 않은가.              

게르니카(Guernica)에 도착해서는 공립이 아닌 사설 게르니카 인터내셔널 호스텔에 들어갔다. 1인당 18유로, 아침식사가 제공되는 가격이다. 샤워하고 세탁하고 슈퍼마켓에 갔더니 문이 닫혔다. 오후 2시부터 5시까지는 가계가 쉰다는 설명이다. 또 5시부터 8시까지만 열고 문을 닫는다고 한다. 참 많이도 쉰다. 돈은 언제 벌려는가. 슈퍼가 문을 여는 시간에 다시 가서 내일 점심 먹을 것 까지 샀다. 

저녁 후 해가 질 때까지 시간이 충분하므로, 피카소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게르니카’의 모작(模作)이 있다는 벽(壁)을 찾아 나섰다. 걸어서 5~6분 거리란다. 이곳에 피카소의 그림을 소장한 박물관도 있다고 들었는데 늦은 시간이라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왜 피카소의 ‘게르니카’인가? 스페인의 장기 독재자 프랑코 총통은 히틀러와 절친했다. 스페인 내전 중 1937년 4월 26일 히틀러가 프랑코를 지원하기 위해 게르니카에 대규모 공습을 감행했단다. 당시 주민 3천 명 중 약 2천 명이 사망하는 비극적인 대폭격이었다고 한다. 

이에 분노한 피카소(Picaso)가 포격의 참상을 그렸다. 가로 7.8m 세로 3.5m의 대형 그림에는 불난 집, 아이의 시체를 안고 절규하는 여인, 멍한 황소의 머리, 부러진 칼을 쥐고 쓰러진 병사, 광기에 울부짖는 말, 여자들의 절규, 분해된 시신 등 전쟁터에서 볼 수 있는 모습들이 뒤엉켜 있는 흑백 톤의 유화그림이다. 이 그림의 원본은 마드리드의 소피아국립미술관에 있는데 게르니카에서 달라고 해도 주지 않는단다. 그래서 게르니카 사람들이 이 피카소 그림을 타일로 구워내어 모자이크 벽화를 꼭 실물크기로 1998년에 설치했다고 한다. 세기의 천재화가 피카소의 그림을 모작이나마 못보고 갔더라면 후회할 뻔 했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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