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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돈

윤 희 진 회장의 나의꿈,나의열정 브라보 양돈인생(16)

협동조합 기능 충실…“UR시대 농가 등불되자” 출발

  • 1 1
  • 등록 2010.12.22 09:40:12
[축산신문 1 기자]
열여섯번째 이야기 도드람, 자생적 조합을 꿈꾸다(상)

필자 등 7명 사료공동구매 사업 시작…도드람 발기 모태
음성사료공장 감격적 가동…회원농가 큰 호응속 속속 합류


 
- ’92년 충북 음성에 도드람 사료공장 준공을 위한 상량식. 오른쪽부터 필자, 진길부 사장, 김대성 사장.

도드람의 태동
경기도 이천 소락 다방에서 무명회란 이름으로 모여 3년쯤 당시 현안을 고민하던 사람들과 함께 ’90년 7월, 무지개 사료 영업부장을 그만두고 이천으로 내려온 이범호씨에게 농장에만 있지 말고 빨리 전체가 살 방안을 강구하자고 재촉하여 진길부, 이명우, 윤희진, 김동식 등 7명이 사료공동구매를 시작한 것이 도드람 발기의 모태가 되었다. 이 당시의 정서는 양돈사료가격에 거품이 많이 끼어있다는 것과 UR 타결에 따른 위기의식 속에 협동조합이 제 역할을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나도 뭔가 돌파구를 찾고 싶어 중앙대 사회개발 대학원(대학원장 김성훈 교수) 협동조합 전공과정에 등록하였으나 기대하였던 것과는 달리 학위 받는 것 말고는 본질적인 문제에는 관심들이 적은 것 같아 도중에 그만두고 말았다.
나중에 김건호, 권순영 등이 합류하여 드디어 ’90년 10월 13명이 뜻을 같이하고 가칭 ‘이천양돈조합’ 간판을 달았으나 관에서는 뭐하러 따로 하느냐, 1도 1조합이 원칙이니 서울경기양돈조합으로 들어가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기존 조합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돈 장사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하는 수 없이 다음해 1월 자본금 5천만원으로 ㈜도드람을 설립하였다.
사료공동구매에 따른 수수료로 여직원 1명과 지금은 유명 컨설턴트가 된 안기홍씨가 일본 어학연수에서 돌아오자마자 합류시켜 수기(手記)로 성적집계를 해가며 서로 비교, 토론을 이어갔다.
최진호 박사를 통하여 사료공장을 하고 싶어하던 김대성씨를 소개받고 그의 서일산업과 합병하여 ㈜도드람 내에 사료사업부를 신설, ’92년 4월 사료공장 건설에 착수하였다.
이때까지도 사료공장은 허가제였으나 농림부에서 회원농장용으로 특별히 승인을 해 준 것이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당시 이인형 사료초지과장이 이 건으로 김주호 사료협회장(전 농림부장관)으로부터 30분간을 시달렸다니 보통 소신 갖고는 하기 어려운 결단이었다. 죄송스럽기도 하고 두고두고 감사할 따름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자금 사정이 넉넉치 않아 출자는 사료비 한달치 기준으로 돈을 모았으나 공장을 짓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였다.(자본금 20억8천만원 중, 농가 지분은 3억5천만원으로 17%에 불과하였음) 나머지는 김대성 사장이 한미창업투자에서 13억원(지금은 ‘수조원 거부’로 소문난 우리나라 12번째 부자 이민주 회장이 대표), 나중에 산업은행에서 5억원을 끌어왔다. 지분은 적었으나 어떻게 농가 위주로 끌고 나갈 것인가가 큰 숙제여서 나와 이범호씨는 변호사 사무실도 찾아 다니고(이때 진길부씨는 농어민후계자 경기도 회장일로 바빴음) 나름대로 애썼으나 뾰족한 방법을 찾지는 못하였다.

도드람 사료 준공
경기도내에는 공장허가가 어려워 제일 가까운 충북 음성에 부지를 마련하고 55억원을 투자하여 마침내 ’93년 3월 2일, 우리들의 투자로 결실을 맺은 공장이 준공되고 첫 출고는 감격적이었다. 공장 시설도 훌륭하고 오랫동안 품질에 대한 회원들의 평가는 아주 만족스러웠고 반면에 사료가격은 기대했던 대로 거품을 빼고도 꽤 이익을 낼 수 있었다. 김대성 사장이 관리를 잘 하고 배당도 적당히 해 주어 호응도를 높였다. 주변의 우량농장들이 계속 합류하니 다른 사료 쪽에서 불만이 클 수 밖에 없었다.
진길부(계열사업부), 김대성(사료), 이범호(유통), 윤희진(회장) 네사람은 매주 한차례 이천 미란다 호텔에서 아침밥 먹어가며 3~4시간씩 ‘UR 타결 이후 양돈농가 생존대책을 위한 자생적 농민조직’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끌고 갈 것인가 마라톤 회의를 거듭했다. 우리 회사 종돈판매를 담당하던 장성훈 부장(현 금보육종 대표)은 나에게 “제가 다비육종 직원입니까, 도드람 직원입니까?” 불평을 할 정도로 우리 직원들까지 독려해가면서 회원 확보에 총력을 기울였다.
도드람 회장 마지막해인 ’95년에는 벽시계 100개를 만들어 100개 회원 농장 방문계획을 하기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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