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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돈

윤 희 진 회장의 나의꿈,나의열정 브라보 양돈인생(21)

‘비대본’ 구제역 종식 맹활약…민간방역 단체 필요성 각인

  • 1 1
  • 등록 2011.01.15 10:12:58
[축산신문 1 기자]
21번째 이야기 방역본부 전신 ‘HC 비대본’(하)

5대질병 근절 목표 (사)가축위생방역본부로 확대 개편
축산업계 방역의식 고취 계기…‘산업훈장’ 영광도 안아


 
- “방역은 제2의 국방” 현장에 투입된 ‘비대본’ 방역 요원들의 긴급방역 활동.

방역본부로 전환
전국에서 방역요원 50명을 차출하여 긴급 투입하였고, 주사기, 분무기, 약품, 방역복 등을 관급 나오기 전에 즉시 지원하였다. 여 수의사까지 포함, 요원들은 밤낮없이 정말 열심히 하여 방역 요원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꾸어주었고, 상황이 끝난 후에는 포천에서 전원 2박, 목욕 후 귀가시켜 만일의 위험에 대비하였다.
검역원 직원들이 밤 늦게까지 고생이 많았는데 간식도 조달하고 분위기가 너무 썰렁해 화분을 하나 사다 놓기도 하였다. 시군과 경기도의 역할분담도 어정쩡하고 보상기준도 그렇고 처음이다 보니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지지는 않았다.
화성을 거쳐 충남 홍성에서 또 발병신고가 들어왔다. 파주 신고자도 방역단의 성차현 수의사요, 홍성의 최초 신고자도 동물병원을 운영하던 박세종 방역요원으로 역시 방역단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4월 4일 사료회사까지 포함 최대 55명의 긴급방역단을 또 투입하고 홍성군청에 상근하기 시작하였다. 다음날 식목일에는 전국적으로 산불이 많이 났었는데, 우리 일죽농장 인근 야산에서 불이나 농장 시설 일부가 타기도 하였으나 나는 가보지도 못하고 걱정만 할 수 밖에 없었다.
4월 12일에는 충주 차례였다. 수의대생들까지 예방접종지원을 나왔는데 연속 주사기가 모자라 한밤중에 이천지역 가축병원 재고분을 싹쓸이 해온 일도 있다. 이렇게 해서 예방접종은 일단락됐다. 그동안 예방접종 두수는 152만3천두였다.
이러한 H.C. 비대본의 방역추진실적 및 구제역 긴급방역에서 보여준 요원들의 기여도가 평가되어 민간방역단체 운영의 필요성을 각계에서 인정하게 되었다.
이에 정부에서는 H.C. 비대본을 확대개편하여 2000년 6월 21일 ‘(사)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로 하고 H.C. 외에 ADV, FMD, A.I., 닭 뉴캣슬병 등 5대 질병의 근절을 목표로 8개 단체장을 공동 본부장으로, 이우재 수의사 회장을 상임본부장으로 선출하였고, 내 직책도 상임이사로 바뀌었다.
이제는 H.C. 한가지가 아니라 여러 질병, 여러 축종의 단체들과 일하다 보니 집중력이 떨어지는건 사실이었다. 구제역은 원래 비발성이 1년이 지나야 하는데 ’01년 8월 27일 청정 인증을 신청하여 조기청정화 인증을 받는데 성공했고(2001년 9월 19일, 가장 빠른 기간 내에 청정국 지위를 되찾아 다른 나라들이 한국 사례를 벤치마킹 할 정도) OIE에 출장 다녀온 안수환 박사가 인증 기념으로 OIE 로고가 찍힌 볼펜세트를 선물로 갖다 주었다.
이때의 H.C. 항체검사 면역 형성율 추이를 보면 ’98년 76.1%, ’99년 91.4%, ’00년 96.1%, ’01년 8월까지 97.2%였다. H.C. 전면 접종중단을 위해서는 떨이돼지 유통, 야생 멧돼지 채혈이 제일 큰 골치였다. 우선 울릉군, 강원도(’01년 1월 1일~)가 먼저 접종을 중단했고, 이어서 전국적으로 중단하기에 이르렀다.(2001년 12월 1일)
H.C. 비대본 발족에서부터 전 과정에 걸쳐 많은 분들이 수고했지만 특히 김창섭 사무관에게 고맙고 한여름에 청사 에어컨이 꺼지면 웃통 훌렁 벗고 일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다비육종 같은 조그만 회사에 사장이란 사람이 맨날 바깥으로만 돌아다니니 일도 문제이고 우선 직원들 볼 면목이 없었다. 그만 둘때가 된 것이다.(2001년 2월 14일 사임)
나중에 이 일로 산업훈장을 받아 고맙긴 했으나 처음부터 뭘 바라고 한 일은 아니고, 어떻게든 H.C.를 박멸하여 일본수출을 계속하고 더 큰 걱정거리인 중국에서 오는 걸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최종적으로는 네덜란드의 IQC제도처럼 수출농가의 위생, 품질문제까지 컨트롤 하는 조직으로 발전시켰으면 하는 구상을 했다. 그리고 우리 정부의 조직 예산도 생산지원보다는 방역, 검역, 위생, 안전, 환경 위주로 재편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1년도 못되어 애쓴 보람도 없이 재발되었지만 H.C. 박멸 가능성과 방역에 대한 인식을 획기적으로 높였고, 지금의 방역본부가 458명 직원에 연간 예산만 260억원의 방대한 조직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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