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현장 / 하동축협의 창조축산 스토리
축산과 교육, 별로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이 두 분야가 만나면서 축산업의 가치가 재조명받고 있다. 지금 경남 하동에는 발상의 전환으로 지역사회에서 축산의 존재 가치를 한껏 끌어올리고 학생들의 인생(관)을 바꿔주는 현장이 있다. 바로 하동축협이 나눔축산운동의 일환으로 운영 중인 ‘왕따 닭’ 교육프로그램이 그 것이다.
닭 무리서 공격받은 약한 닭 보며 자연스레 감정 이입
하동교육청 “축협의 재능기부” 호평…체험 요청 쇄도
하동축협의 ‘왕따 닭’ 교육프로그램은 단순한 축산체험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교육계(학교)의 뜨거운 감자인 ‘왕따’와 ‘닭’을 묶어 ‘왕따닭’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 낸 하동축협은 지역사회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으면서 연일 화제를 낳고 있다. ‘왕따 닭’은 이제 학교에서 가장 먼저 선택하는 교육프로그램이 됐다. 축산의 가치도 그에 비례해 상승했다. 축산이 교육을 만나면서 창조축산이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왕따 닭’ 프로그램은 간단하다. 항상 주변 개체로부터 공격받아 헐벗은 닭은 어느 농장이나 존재한다. “이게 왕따 닭이다. 닭들에게 공격 당해 이렇게 됐다. 사람도 왕따를 당하면 겉은 멀쩡해도 속마음은 이처럼 고통스럽다.” 이 말 한마디는 하동교육계에서 격언이 됐다. 학교에서 아무리 교사들이 얘기해도 건성으로 듣던 학생들도 왕따의 심각성을 순식간에 깨닫는다.
하동축협이 ‘왕따 닭’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된 동기는 의외로 단순하다. 발상의 전환이다. 2010년부터 다양한 축산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온 하동축협은 지난해 7월, 한 고등학교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사회봉사명령이란 처벌을 받은 학생들의 관리로 골치를 앓자 “축협에서 책임지겠다. 보내 달라”고 요청한다. 이 때 박학규 조합장과 조철수 상무는 뭔가 가슴에 와 닿는 체험을 시켜보자는 고민 끝에 양계장의 약추를 보여주자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른 개체에게 받은 공격의 고통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닭을 보면서, 많은 설명도 필요 없이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왕따’를 떠올리고 충격을 받았다. 왕따의 참혹성을 스스로 깨우친 것이다. 이 때의 성공적인 경험으로 하동축협은 올해 보다 체계화된 ‘왕따 닭’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교육계가 들썩였다. 하동교육지원청(교육장 강대룡)과 교육협약도 맺었다. 강대룡 교육장은 “왕따닭 프로그램은 축협의 재능기부”라고 말했다. 강 교육장은 “축협과 교육계가 융화돼 너무 좋은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학교마다 요청이 빗발친다”고 칭찬했다.
하동축협은 ‘왕따닭’ 프로그램의 올해 참여 학생 숫자는 벌써 450여명을 넘어간다. 지난 13일에는 부산 혜광고교 학생 70여명이 나눔축산운동본부 경남지부(지부장 이현호·함안축협)에 요청해 우리나라 동물복지 1호 농장 청솔원(대표 정진후)에서 ‘왕따닭’ 체험교육을 받았다. 지난달 7일에는 하동관내 4개 학교 초등학생 30여명이 체험했었다. 이날 체험에 참가한 김회준 학생(악양초 5년)은 “무리에 어울리지 못하고 괴롭힘을 당하는 닭을 보며 슬펐다. 친구의 소중함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 전에 체험에 참여했던 백태희 학생(하동초 5년)은 감상문에서 “친구를 왕따시키지 말아야겠다. 왕따닭아 너도 힘을 길러 왕따를 극복해봐”라고, 김평섭 학생(하동초 5년)은 “사람도 힘이 약해 존재감이 사라지는 친구도 있다. 왕따에서 벗어나길 바래”라는 글을 남겼다.
하동축협 ‘왕따닭’ 프로그램은 단순하게 양계장에서 닭만 보여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생축장, 가축시장, 축산농장 등 다양한 장소에서 직접 몸으로 느끼고 체험하는 프로그램으로 축산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하동축협은 2011년 자체적으로 나눔축산운동본부를 구성하고, 문화계, 교육계, 체육계, 의료계 인사들로 심의위원회를 만들어 지역사회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나눔재원을 지원하고 있다. 왕따닭 프로그램에도 학생 1인당 2만원씩 나눔재원이 들어간다.
축산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한 박학규 조합장은 “큰 재원 들이지 않고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친구의 소중함을 알려주고, 축산의 중요성도 한껏 알릴 수 있어 기쁘다. 앞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눔축산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만드는데 앞장 설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