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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돈

윤희진 회장의 나의꿈,나의열정 브라보 양돈인생(3)

양돈사업소 이끌며 “산업 선진화에 일생 걸겠다”

[축산신문 윤희진 회장 기자]
 
- 용인자연농원 양돈부 초창기 멤버들. 뒷줄 왼쪽 두번째 필자, 일곱번째는 이병도 박사(부장).

세번째 이야기 “축산부국을 향해” 용인자연농원(하)

5개돈장 6만두 사육…인근 집집마다 F1 분양 ‘양돈 메카’ 계기
경영체제 바뀌며 사업 폐쇄…동료모임 ‘모교없는 졸업생’ 심정


이병철 회장께선 용인자연농원에서 돼지가 생산되자 마자 F1 거세돈 1마리씩을 동네 집집마다 나눠주라고 하셨다. 사료는 부산 공장에서 수원역을 거쳐 실어왔는데(CJ 인천공장 생기기 전), 이를 계기로 용인 포곡면 일대가 국내 최대의 양돈밀집지역이 됐다.
이 회장은 당시 전국 양돈장의 호당 사육두수가 평균 두마리도 안되던 시절(120만두/70만 호)에 5만두 사육계획을 세울 것을 지시했다. 돈사사이에 그늘이 지도록 아카시아 나무를 심으라고 하면 다음날엔 무슨 짓을 해서라도 심어 놓아야만 했고 돈사 한쪽에 야생 멧돼지를 키우라고 하시는데, 백신을 놓을라 치면 우영제 수의사와 전봉춘 조수는 목숨 걸고 달라붙을 수 밖에 없었다.
새끼가 자꾸 죽어서 고민도 적지 않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집돼지와 같이 키우면 안되는 것이었다. 또, 동물원 쇼에 나갈 돼지를 훈련시키라는 말씀도 하고, 일본 NHK 양돈 프로그램을 녹화해 공부까지 시키는 등 끊임없이 숙제를 내 놓았다. 두달에 한번 꼴로 일본에 가실 때 마다 현지의 각분야 최고 전문가에게 자문을 받아 밤나무나 사자 키우는 것부터 양돈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전문 지식을 갖고 계셨다. 일본 기업양돈장인 ‘소가노야’에서 1년 반이나 연수하고 온 윤석두(양돈부장 역임)씨에게 “그 집 사료 요구율이 얼마더냐”라고 묻자 “3.5”라는 윤씨의 대답에 “저 놈 엉터리로 배웠다”고 말할 정도였다(본인은 3.2로 알고 계시다고…).
초창기 용인 사업소에는 현장을 총괄하는 육군 중령출신 소장이 있었는데 웬일인지 별도의 조직으로 운영된 양돈사업소는 필자가 명색이 소장이었다. 직원 중에는 대학 동기, 심지어 1년 선배인 수의사도 있어서 통솔이 쉽지는 않았다. 만 28세도 안된 어린나이(?)에 책임자로서 벅찬 일이었지만, 이 때부터 “양돈을 나의 직업으로 삼겠다, 기업화/규모화 하는데 내가 앞장서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됐고, 평생 동안 이 생각은 한번도 바뀌지 않았다.
토요일엔 회장 주재 ‘한옥회의’에 불려 갔는데 부장이 공석일때는 과장인 필자가 참석해야했다. 2년여 동안 부장을 여섯분 모셨다. 제일제당 출신 유소열 부장(작고)이 오기 전까지 안양연구소 출신 수의학박사, 육사8기 대령 출신,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 출신 등이 거쳐 갔지만 모두 3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이 회장의 사위이면서 LG 구자경 회장의 동생인 구자학 자연농원 사장이 필자를 많이 아끼셨는데, 어느날 제일제당 부산공장으로 발령을 내 주면서 정도 들고, 한도 많은 용인을 떠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지금은 믿기지 않지만, 양돈장 초기에는 단지 앞을 흐르는 경안천 물을 그냥 퍼 올려서 상수도 물로 사용했는데 나중엔 재벌들 싸움속에서 양돈장 오폐수 사건이 큰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고, 그 후 주변 공장들 때문에 경안천이 영동고속도로에서도 화공약품 냄새가 진동할 정도로 오염되기도 했다. 유한양행에 지금도 농축부가 남아있는지 모르지만 약 거래 때문에 기업 이미지에 걸맞지 않게 ‘로열 패밀리’를 동원, 필자와 최명욱(CJ 전무 역임)씨를 힘들게 만들었던 불쾌한 기억도 남아있다.
한편 용인양돈장은 모두 5개의 돈장으로 나뉘어지고, 최고 6만두까지 사육됐다. 일본 이코마 고문에 따르면 동양 최고의 시설이라던 4돈장(종돈장)이 지금은 창고로, 나머지는 헐렸거나 자동차 전시장, 맹도견, 애완견 등의 사육장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한 때, 자연농원을 먹여살리고 엄청난 실적도 올렸으며 많은 인재를 배출했지만 이병철 회장이 돌아가시고 난 다음해 (1989년) 업계의 저항, 이건희 회장의 새로운 경영방침(21세기 초일류 기업으로…), 돼지 질병문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폐쇄되고 말았다. 지금 와서 보면 태국의 CP처럼 사료 축산분야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키울 수는 없었는지 큰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손자인 CJ 이재현 회장이 중국-동남아에서 사료양돈사업을 하는 것도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후 30주년이 되던 2003년 5월 초 147명의 옛 동지들과 일본 자문이던 이코마 히로오선생까지 모여 추억과 아쉬움을 나누었고 이후 1~2년마다 꾸준히 만나고 있지만 모교 없는 졸업생 같은 심정을 떨쳐버릴수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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