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중 환 농업연구사(농진청 국립축산과학원 동물복지연구팀) # 시작하며 얼마 전 책장을 정리하던 중 책장 깊숙한 곳에서 예전에 읽었던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 먼지가 쌓여진 채로 방치되어 온 책은 지나온 오랜 세월을 얘기하는 듯 표지의 군데군데 색이 바랬다. ‘The behaviour of domestic animals’, 그 책의 이름이다. 이 책의 저자는 Hafez 교수로 1962년에 처음 출판된 책인데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3차 개정판으로 1975년 출판본이다. 내가 태어난 해에 출판된 책이니 꽤 오래된 책이기도 하지만 한동안 펼쳐보지 못했던 시간들이 나로 하여금 더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만들었다. 마치 시간여행을 떠나는 것만 같은 설렘으로 책장을 넘기는데 파트별로 제목과 원고를 집필한 저자들을 살펴보면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대가들의 이름을 찾아보는 재미에 한껏 빠져들었다. 그 와중에 Wood-Gush 교수가 집필한 ‘농장동물들의 사회적 스트레스와 복지문제’라는 장(章)에서 책장을 넘기는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우드 거쉬 교수는 동물행동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마치 정신적인 스승으로 여겨지는데 국제응용행동학회에서는 우드 거쉬 교수의 업적을 기리기
전 중 환 농업연구사(농진청 국립축산과학원 동물복지연구팀) 1. 프롤로그 최근 전남 여수의 아쿠아리움(수조관)에서 관리하던 멸종위기의 흰돌고래 벨루가가 잇달아 폐사하는 일이 발생하여 많은 이슈가 되었다.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벨루가는 박람회 개최와 희귀종 보존 및 연구 등의 목적으로 2012년 러시아에서 들여온 개체로 3마리 중에서 2마리가 10개월 사이에 연이어 폐사한 것이다. 벨루가는 세계적으로 희귀종으로 분류되는 동물이며 짧은 기간 동안 연속해서 발생한 폐사라 더욱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서 벨루가를 관리하는 몇 몇 곳에 대해 환경단체와 동물보호단체들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와 더불어 방류를 요구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이러한 움직임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현재 이 사건을 두고 벨루가 운영권을 가진 전시관 측과 소유권을 가진 재단 측이 사인 규명 및 방류 등에 대해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벨루가 사육시설에 대해 부족한 사육공간과 좁은 수조로 인한 면역력 저하, 스트레스 축적 등의 문제들이 지적되었는데 결국 이런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사실 벨루가의 폐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다른 지역의 아쿠아리움에서도 여수의 상황과
전중환 농업연구사(농진청 국립축산과학원, 동물복지연구팀) 1. 프롤로그 2011년 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2012년부터 동물복지 인증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며 산란계부터 우선 적용할 예정인데 인증제도 운영을 위해 기준이 필요하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간의 사정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들은 바로는 구제역 발생과 국내 소비자들의 거센 요구에 의해 전격적으로 동물복지 인증제도 도입이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동물복지 인증기준 마련을 위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국내에서 동물복지와 관련한 연구가 수행된 경우도 많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동물복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부족했던 시기라 시작부터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인증기준이 마련되는 과정은 다음과 같았다. 우선 국내외 연구 자료들을 검색하고 해외의 인증기준들을 비교 분석했다. 자료 분석을 통하여 세계적으로 동물복지 인증기준들이 공통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조건들을 필수 항목으로 선별하고 이외의 조건들은 비(非)필수 항목으로 분류하였다. 비(非)필수 항목의 경우 국제적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국내 사육여건을 반영함으로써 수위를 조절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인증기준의 초안은 국립축산과학원 내부 전문가들의 검
전 중 환 농업연구사(농진청 국립축산과학원 동물복지연구팀) 1. 프롤로그 코로나19로 인하여 야외활동과 여행에 많은 제약이 따르는 요즘에는 비행기를 타고 해외출장을 나갔던 일들이 문뜩문뜩 떠오르곤 한다. 2년 전, 노르웨이에서 개최되는 동물행동학회 참석을 위해 출장을 떠났을 때였다. 동물행동학회는 ‘각인(刻印)’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콘라트 로렌츠 박사를 포함한 많은 동물행동학자들이 활동했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학회이다. 노르웨이로 직항하는 비행기가 없어 네덜란드를 경유해야 했는데 인천에서 암스테르담까지 네덜란드 항공기를 이용하여 이동하였다. 장거리 비행기를 탈 때면 기내음식에 대한 기대로 설레곤 했는데 당시 네덜란드 항공기에서 제공되었던 샌드위치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네덜란드의 동물복지 인증기준(Beter Leven)으로 생산된 계란이 들어간 샌드위치였는데 포장지 겉면에 동물복지와 계란이 생산되는 과정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적혀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많은 승객들이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포장지에 적혀 있는 내용들을 유심히 읽고 있었다. 아마도 다른 승객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지루할 수 있는 장거리 비행에서 재미있는 읽을거리와 더불어 신선한 맛을 느낄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