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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논단> 인드라의 그물 속에서 생각하는 당신

  • 등록 2017.09.01 10:30:44


윤 여 임 대표(조란목장)


여름을 보내며 모든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왜 이렇게 덥냐고, 더워서 못살겠다고 아우성이었다. 정말 더웠다. 미용실에 갔더니 손놀림이 유연하고 감각이 뛰어난 원장도 능숙하게 가위질을 하며 더워서 못살겠다고 하소연이었다. 에어컨의 온도는 22℃. 하마터면 이렇게 시원한 곳에서 하루 종일 일하며 뭐가 덥냐고 한마디 할 뻔 했다. 수십 대의 선풍기 밑에서도 침을 흘리며 죽어도 젖을 만들어내야만 하는 본능으로 고생하는 우리 소들과, 그 가축을 돌보느라 땀에 전 옷으로 이 혹서를 견디는 목장사람들을 생각해 보라고 말이다. 목장의 여름은 길고 혹독하다. 분만이라도 하면 고온다습의 악조건을 딛고 무사히 비유기에 안착하도록 하기 위해 그 애로는 몇 배 더해지기 마련이다.
그뿐이 아니다. 비가 안 와도 걱정, 많이 와도 걱정, 풀은 왜 그렇게 쉬이 자라는지 정신이 없다. 시원할 때 해야 하니까 젖 짜고 아침 먹기 전에 풀이라도 한바탕 뽑고 나면 진이 다 빠져 밥맛도 없는데다 날벌레는 왜 그렇게 덤비는지 못 견딜 지경이다. 누가 목장 하라고, 촌에서 살라고 등 떠민 사람은 없건만 이건 뭐지 싶을 때도 있어 여름나기는 그야말로 고달픈 투쟁의 연속인데 말이다. 그러나 그 순간 그 말을 꼭 삼켰다. 경중의 차이는 분명 존재하지만 이 더위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어디 목장사람들 뿐이겠는가. 사람들은 누구나 생업에서 자신만의 남모를 애로를 지니고 있을 터였다. 미용실에서 나오니 바로 옆집이 떡볶이와 튀김을 파는 집이었다. 찜통더위에 기름 솥 앞에서 종일 서 있는 젊은 부부가 예사로 뵈질 않아 예정에도 없이 튀김 몇 조각과 떡볶이로 점심을 먹었다.
여름이면 동병상련으로 항상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숯불에서 지글지글 익으며 사람들의 구미를 한껏 돋우는 고기를 생각해 보자. 정성들여 가축을 키워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다 자란 가축은 도축장으로 옮겨야 한다. 이후 보통사람이면 엄두도 내기 어려운 힘들고 험한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의 노고는 얼마나 크겠는가. 사실 일일이 그 과정을 다 알 필요는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내 앞에 놓인 우유 한잔, 맛나게 먹는 고기 한 접시가 정녕 어떻게 우리 앞에 왔는지 수고로운 손길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의 근본을 생각하게 만드는 시작일 것이다. 비록 돈으로 대가를 치르지만 그 가치보다 훨씬 더 궂은일을 견디는 이름 모를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로 삶을 영위한다는 사실을 되새겨 볼 일이다.
삶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것이 현대인들의 운명이다. 세계화는 국경너머까지 그 의존성을 더욱 심화시키고 원하던 원치 않던 식재료의 다국적화는 밥상에서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어디 밥상뿐인가. 몇 년 전,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소지품의 원산지를 조사해 보라고 한 적이 있다. 한 학생이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어머나, 제 재킷이 메이드인 미얀마예요.” 놀란 학생들이 다가와 재킷라벨을 재차 확인했고 그 학생은 몇 년을 입어온 옷의 원산지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미얀마에서 만든 옷까지 입고 있을 줄이야.
이 더위 속에서 한번쯤은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를 왕 대접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농부시인 서정홍은 도서관강연을 마친 후 밥을 먹고 나오면서, 밥값을 해야겠다 싶어서 아이들이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신발을 가지런히 놓았다고 쓰고 있다(시, [밥값]). 무더위에 공장에서 신발을 만들고 있을 노동자들을 생각하니 어쩐지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였다고 한다. 고대 인도신화에 따르면 인드라신이 사는 궁전에는 보석이 꿰어진 그물이 있는데 그 보석은 서로 비추고 있어 하나의 빛깔이 변하면 다른 모든 보석의 빛깔도 변한다고 한다. 궁극적으로 세상만물은 서로에게 의존한다는 것이다. 베트남의 불교 승려이며 명상가인 틱낫한은 시인이라면 종이 한 장 속에서도 구름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구름이 없으면 비가 내리지 않고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나무가 자랄 수가 없어 종이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유 한잔 속에서 구름을 볼 수는 없을 지라도 소를 키우는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해 보는 것은 멋진 일이 아닐까. 오늘도 우리가 일용할 수많은 물건을 위해 세상 어디에선가 궂은 일 마다않고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는 이름 모를 당신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단란한 밥상을 마주하고 그 속에 담긴 수고와 인연을 기억해 줄 따뜻한 가슴을 지닌 또 다른 당신을 기대한다. 이 순간만큼은 물건을 사이에 두고 주고받는 돈은 잠시 잊어버리자. 우리는 21세기 인드라의 그물 속에서 촘촘히 맺어진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