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간27주년 제1특집
현장에서 축산 농가를 가장 힘들고 외롭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주위 사람들의 민원제기, 그리고 끊임없이 강화되는 각종 규제일 것이다. 지금 축산 농가들은 축사 신축은 고사하고 증개축을 하기 위해 행정이 요구하는 온갖 복잡한 절차를 적법하게 다 밟아 놓고도 주민들의 민원 하나에 발목이 잡히기 일쑤다. 여기에 법률이나 제도, 그리고 정책까지 가축사육을 규제하는 방향으로 길목을 틀어 축산 농가들의 설 자리는 이래저래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축산 농가들을 힘들게 하는 규제와 민원. 대책은 무엇일까.
사회지도층 축산 중요성 인식…식량주권 확보 로드맵 마련
축산인, 안전축산물 생산 물론 사회·환경적 책임 다해야
‘축산식품은 식량’ 의식부터 가져야
축산에 대한 규제는 왜 자꾸 강해지는 걸까. 민원은 왜 계속 발목을 잡을까. 사실 한국축산은 몇 번의 악성가축질병 발생으로 국민들에게 좋지 못한 인상을 준 적이 있다. 특히 작년 FMD 때는 수조원의 혈세를 가축 매몰에 왜 쏟아야 하냐는 곱지 못한 시각도 적지 않았다.
여기에 수십 년 텃밭으로 알고 가축을 키워온 농장 인근이 도시개발 등을 이유로 주택과 가까워지면서 악취 등을 이유로 민원의 주요 타깃이 되어 왔다.
민원이 빈발한 배경에는 축산 농가들의 정예화와 한국축산의 성장세에 힘입어 농촌지역에서 가장 고소득을 올리는 직종이 되면서 주위에서 쏠리는 시기와 질투가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마을 한 복판에서 냄새를 풍기면서 불편을 주는 축산 농가들이 좋은 승용차를 타고 들락거리며 주변의 어려운 이웃은 잘 돌아보지 않는다는 식으로 서운함을 표시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서운함과 부러움이 민원제기 배경에는 깔려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식량주권, 식량안보의 중요성이 전 세계적인 화두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축산 농가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되면 어떻게 될까. 돈만 있으면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식량(축산물)을 사올 수 있을까.
지난해 FMD로 많은 가축이 매몰될 당시 축산물을 수입하려고 해도 제대로 물량을 확보하지 못했던 기억까지 거슬러 갈 것도 없다. 당장 작황에 따라 일부 국가에선 툭하면 곡물 수출금지 조치를 해댄다. 축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꼭 필요한 원료 확보가 갈수록 어려워 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지난 8일과 9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서는 식량안보가 주요 의제로 다루어졌다. 이 때 APEC 정상들은 최근 일부 국가들의 곡물 수출금지 조치와 이에 따른 곡물가격의 급등에 대해 국제적인 공조체제를 구축하기로 했다. 지난 2010년 애그플레이션 때도 러시아가 곡물 수출을 중단하면서 곡물가격이 폭등을 했었다. 최근 옥수수와 같은 곡물을 바이오 연료로 활용함에 따라 곡물수급이 더욱 불안정해지고 있다. 특히 앞으로 예상되는 기후변화가 전 세계의 식량안보를 위협할 수도 있다는 관점에서 APEC 정상들은 식량안보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시작한 것이다.
양식 있는 학자들은 그동안 입을 모아 농업이 발전하지 못하면 절대 선진국이 될 수 없다고 수시로 강조해왔다. 북미나 유럽의 선진국치고 농업, 축산이 발전하지 못한 나라가 없다는 것을 실례로 들기도 한다. 식량주권이 확보되지 못하면 다른 경제가 아무리 성장해도 결코 선진국 행세를 할 수 없는 것이 식량 확보 전쟁이 가시화되고 있는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그 흔한 로드맵조차 축산분야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축산물(단백질식품)이 식량이라는 인식조차 부족하다. 정치권이나 대기업, 언론까지, 일각에선 꼭 가축을 키워야 하냐, 수입해다 먹으면 좋지 않냐는 말이 서슴없이 나돈다.
축산 규제와 민원이 끊임없이 힘을 얻어가는 배경에는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먹지 않을까. 누구든 먹어야 산다. 이왕 먹으려면 가장 가까운 곳에서 생산된 농산물과 축산물이 자기 몸에 가장 좋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 됐다. 일본의 지산지소운동과 미국의 로컬푸드운동, 공동체지원농업 등은 선진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을 정도로 확대되면서 자국의 식량 자급률을 높이는데 적극 이용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한국축산이 제대로 서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정책입안자나 일부 편협한 사고를 가진 사회 지도층의 축산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 축산물이 국민건강을 위해 가장 중요한 식량이라고 재인식해야 한다. 그 출발선 위에 정부가 궁극적인 로드맵을 마련하고 법률이나, 정책, 제도를 과감하게 축산육성에 초점을 맞춰 재구성해야 한다. 축산현실에 맞고, 농가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규제수위를 높여선 안 된다.
특히 요즘 축산현장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묻지마식 민원은 철저하게 막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적법하게 만들어진 개인의 사업장이 아니면 말고 식의 민원제기로 문을 내려선 법치국가라는 말이 부끄러워진다. 자치단체 공무원부터 축산을 보는 시각을 바꾸고 민원을 핑계 삼아 축산 농가를 힘들게 하는 일을 자제해야 한다.
물론 축산 농가들도 안전하고 품질 좋은 축산물 생산은 기본이고, 주위의 이웃을 돌아보며 누구에게 내보여도 부끄럽지 않는 환경에서 가축을 키워야 한다. 악성가축질병을 막는 노력도 게을리 해선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범 축산업계가 펼치고 있는 나눔축산운동에 모든 축산인이 동참해 사회적 책임, 환경적 책임을 다하는 것도 국민들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될 것이다.
축산인 죄인으로 모는 민원 대응 범업계 차원 제도적 장치 마련
국가 앞장서 축산가치·축분뇨자원화 필요성 국민에 적극 알려야
점점 강해지는 규제·민원…축산농가가 설 자리는
농림수산식품부의 축산업 등록제, 허가제, 의무교육, 심지어 차량등록제까지 가축을 키우기 위해 축산 농가가 지켜야 할 것들은 계속 늘어나고 강화되고 있다. 거기다 환경이라는 잣대로 축산을 규정하고 제한하는 환경부의 가축사육제한 조례 권고안이나 가축분뇨법 개정안까지 축산을 영위하기는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지금도 축사하나 지으려면 국토법이나 건축법, 농지법, 하천법, 소방법 등 일일이 꼽기 어려울 정도로 수십 개의 법률기준을 준수해야 겨우 허가를 얻을 수 있다. 환경영향 평가를 받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질 정도로 규제에 둘러싸인 한국축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러나 모든 기준을 지켜 허가를 받아도 민원 하나면 모두 허사가 되는 것이 우리나라 현실이다. 주민동의서를 받아도, 멀리 떨어진 또 다른 마을에서 민원을 제기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이제는 규제 못지않게 무서운 것이 민원이라고 할 정도로 만성화됐다. 가축을 키우는 축산인이 말 그대로 지역사회의 죄인처럼 되어 버린 셈이다. 하다못해 행정소송까지 불사하는 축산 농가들이 나올 정도가 됐다.
이런 정도가 되자 일각에선 범 축산업계 차원의 공동대응이 필요하다는 말이 계속 나온다. 농가들이 불필요한 민원으로 인해 입는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민원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보자는 것이다. 묻지마식 민원만 줄여도 선의의 농가피해는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축산 농가 스스로의 환경개선 노력은 당연히 전제된 얘기다.
한편에선 국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국민을 설득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럽의 선진국도 모두 가축을 키우고, 가축분뇨를 농지에 뿌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나라에선 민원이라는 말이나, 악취라는 말이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농한기에 일정기간을 정해 전국적으로 잘 발효된 가축분뇨를 일제히 살포하고, 국가가 나서 그 방법이나 내용을 충분히 국민들에게 설명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축산물을 먹기 위해선, 농지를 기름지게 하기 위해선 그 정도 냄새는 참아줄 정도로 인식이 높다는 얘기다.
따라서 우리도 축산식품의 중요성과 가축분뇨 자원화의 필요성을 국가 차원에서 국민들에게 충분히 알려 선순환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방법을 민원차단과 안정적인 식량 확보 등 몇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근본대책 중 하나로 꼽고 있다.